<이희용의 글로벌시대> ‘고요한 아침의 나라’저자 사후 100년

최초의 서양 사절단인 보빙사 일행. 앞줄 왼쪽부터 퍼시벌 로웰,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최초의 서양 사절단인 보빙사 일행. 앞줄 왼쪽부터 퍼시벌 로웰,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다. 중국(청)이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의도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우리나라가 서양을 상대로 처음 쇄국의 빗장을 연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듬해 4월 초대 조선 주재 미국공사 루시어스 푸트가 내한하자 고종은 답례로 미국에 보빙사(報聘使)를 파견한다. 최초의 서양 사절단이었다.
민영익·홍영식·서광범 등 보빙사 일행은 7월 인천항을 떠나 일본에 들렀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돕고자 미국인 청년 퍼시벌 로웰(1855∼1916)을 고용해 보빙사에 합류시켰다. 보스턴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동양의 신비에 이끌려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한국어는 모르지만 일본어는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어 영어에 능통한 일본인을 개인 비서로 채용했다. 9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보빙사 일행은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뉴욕 5번가의 호텔에서 신임장을 제정했다. 이들은 넙죽 엎드려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의 큰절을 올려 아서 대통령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로웰은 보빙사가 뉴욕의 산업박람회장을 비롯해 병원, 소방서, 우체국, 전신회사, 제당공장 등을 둘러보는 2개월간의 공식 일정 내내 국서의 번역과 통역, 보좌, 안내 등을 맡았다.

 1885년 출간돼 한국을 널리 알린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표지.

1885년 출간돼 한국을 널리 알린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표지.

로웰은 보빙사와 함께 11월 일본에 돌아온 뒤 12월에 조선 땅을 밟았다. 방미 외교와 산업 시찰 등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도록 로웰이 많이 도와줬다는 별도의 보고를 홍영식이 고종에게 올리자 이에 감사하는 뜻으로 조선 조정이 초청한 것이다. 로웰은 그의 통역과 접대를 맡은 윤치호와 함께 3개월간 한양의 주요 시설과 근교의 명승을 두루 돌아본 뒤 조선을 떠나 세계를 유람하다가 고향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귀국 2년 뒤인 1885년 로웰은 조선의 정치·경제·문화·사회 등을 백과사전 형식으로 자세히 기록해 412쪽 분량의 책으로 펴냈다. 그가 붙인 제목‘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Morning Calm)는 지금까지도 한국을 상징하는 문구로 쓰이고 있다. 그는 매혹적이면서도 이상하게 보이는 조선 사회의 지배 원리로 비개성적 특질, 가부장제, 여성의 지위 부재 등을 꼽았다. 이 책에는 고종의 어진(御眞)을 포함해 당시의 조선 풍물을 담은 사진 25장도 실렸다.
로웰은 1884년 12월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시사월간지‘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에 사건 배경과 주동자 면면을 소개한 글‘조선의 쿠데타’(A Korean Coup d’Etat)를 기고했다. 그와 가깝게 지내던 홍영식의 죽음을 두고는“일본인들의 배신으로 쿠데타가 실패하자 주모자들은 살길을 찾아 일본과 미국으로 도피했으나 홍영식은 혼자 남아서 청나라 군사들에게 체포돼 처형됐다. 용맹스럽고 충직했던 그는 대의를 포기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로 여기고 기꺼이 생명을 바쳤다”고 기록했다.
로웰이 한국에 영향을 끼친 일은 또 있다.‘서유견문’의 저자 유길준의 미국 유학을 주선한 것이다. 보빙사의 일원이던 그는 귀국선을 타지 않고 미국에 남아 로웰의 소개로 생물학자 에드워드 모스의 개인지도를 받았다가 더머 아카데미에 입학,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자 최초의 조선 국비 유학생으로 기록됐다. 지난달 24일은 유길준의 탄생 160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유길준이 김홍집과 함께 주도한 갑오개혁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고 친일적 경향을 띠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의 역저 ‘서유견문’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국제정세의 흐름을 일깨워주며 개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만들었다.
로웰은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아 1894년 로웰천문대를 세웠으며 자신이‘행성X’라고 명명한 9번째 행성을 찾는 데 몰두하다 뜻을 못 이룬 채 1916년 눈을 감았다. 14년 뒤 로웰천문대의 조수 클라이드 톰보가 9번째 행성을 발견해 이를 명왕성(Pluto)으로 이름 지었다. 명왕성의 약칭‘PL’은‘Pluto’의 앞 두 글자이면서 퍼시벌 로웰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기도 하다.
오는 12일은 로웰이 세상을 떠난 지 딱 10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를 서양에 가장 먼저 알린 인물은 네덜란드 선원 하멜이다. 그는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해 억류 생활을 하다가 1666년 탈출, 1668년 귀국해‘하멜표류기’를 발표했다. 올해는 하멜이 조선 땅을 탈출한 지 3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1882년 미국인 학자 윌리엄 그리피스가‘은둔국 코리아’ Corea, the Hermit Nation)를 펴내긴 했으나 그는 한국에 와본 경험도 없이 일본에서 주변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책을 썼다. 로웰은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서양인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직접 조선 땅을 둘러보고 고위 관료들과 대화를 나눈 경험을 살려 우리나라를 비교적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퍼시벌 로웰이 세상을 떠난 지 1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은 ‘은둔의 나라’에서 세계 굴지의 무역국이자 다문화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글로벌 국가로 변모했고,‘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다이내믹 코리아’로 탈바꿈했다. 로웰이 만일 저승에서 이 모습을 본다면 깜짝 놀라 무덤에서 뛰쳐나오려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가 책에서 꼽은 조선의 세 가지 지배 원리를 완전히 극복했는지는 의문이다. 로웰은 지금 한국 사회의 개성과 가부장 문화, 여성의 지위 등이‘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다고 평가해 줄까.

글 ㅣ 이희용
1960년 경남 밀양 출생, 서울 성동고 졸업,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연합뉴스 대중문화팀장, 엔터테인먼트부장, 미디어전략팀장, 미디어과학부장, 재외동포부장, 한민족뉴스부장, 한민족센터 부본부장 역임. 한국기자협회 수석부회장 겸 상근부회장(2008~2009). 홍성현언론상 수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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