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국민 품으로 돌아오는 용산기지 수난사

앞으로 1년 뒤면 서울 용산의 미군 기지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꼬박 114년 만의 일이다. 지금의 서울시 지도를 무궁화에 비유하면 이곳은 꽃술에 해당한다. 부지의 모양은 사람 심장을 닮아 수도 서울의 심장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인왕산에서 안산으로 뻗어내린 서울 백호 지맥의 한 줄기가 만리재와 청파동을 거쳐 한강까지 이어지는데, 그 형상이 용과 비슷하게 생겨 이 일대를 용산(龍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북쪽 남산 기슭에서부터 개활지가 펼쳐져 있고 바로 앞 남쪽에는 강이 흘러 풍수지리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눈에 명당임을 눈치챌 수 있다.
이곳은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여서 13세기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이 병참기지로 썼고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도 퇴각하던 일본군이 한때 주둔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머물기도 했다. 용산이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 땅이 된 것은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4일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의 육군 선발대는 며칠 뒤 인천에 상륙해 서울 용산에 자리를 잡는다. 일본은 전쟁을 핑계로 대한제국 조정을 위협해 잇따라 한일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을 맺은 뒤 8월 이 일대 300만 평을 군용지로 강제 수용한다. 1906년 4월 본격 공사에 들어가 용산 기지에는 각종 군사시설이 속속 들어선다. 1915년부터는 2개 사단이 주둔하며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으나 용산은 여전히 금단의 땅이었다.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9월 8일 서울에 진주한 미군은 용산 기지를 넘겨받아 쓰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단계적으로 철수한다. 그러나 이듬해 6·25가 터져 미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며 다시 눌러앉는다. 1952년 정부는 용산 기지를 정식으로 미국에 공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akr20161223143400371_07_i용산에는 외국 군대를 따라 이국의 문물도 함께 들어왔다.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려고 이주한 중국 상인들은 우리나라 차이나타운의 효시를 이뤘고, 일제강점기에는 이 주변에 기지촌이 형성되며 일본인 거리가 생겨났다. 미군이 진주한 뒤에는 인근 이태원에 이들을 상대로 한 상가와 환락가가 조성됐다. 미군 보급품이 암시장에 흘러다녔고 이른바 양공주라고 불리는 직업여성도 몰려들었다. 국제결혼도 자주 이뤄져 다문화 2세들이 태어났다.
미군 클럽은 미국 팝송 붐의 진원지이자 한국 가수들의 등용문이었다. 미국 문화를 선호하는 이들은 국내 지상파방송을 제쳐놓고 주한미군방송 AFKN(현 AFN)을 즐겨 시청했다. 미군 보급품인 햄과 소시지에 김치와 채소를 넣어 끓인 퓨전 음식 부대찌개도 탄생했다. 이태원에서는 1966년 방한한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의 이름을 따 존슨탕이라고 부르는데, 사골로 국물을 내고 김치 대신 양배추가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개발 열풍에 따라 서울 권역이 확장되고 인구가 늘어나자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며 남북 교통축을 가로막고 있는 용산 기지를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대선 공약으로 용산 기지 이전을 내세운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3월 이전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1990년 6월 미국과 용산 기지 이전에 관한 기본합의서 및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듬해 미 8군 골프장이 반환돼 용산가족공원으로 꾸며졌으나 한동안 이전 논의가 중단되다가 2001년 12월에야 이전 관련 한미 고위급 정책협의회가 구성된 뒤 마침내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실무 협상과 국회 비준 등을 거쳐 2005년 10월 노 대통령은 용산 기지를 국가주도 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5월에는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이 제정됐고, 국제공모를 거쳐 2012년 4월 네덜란드의 West8(대표 아드리안 회저)과 이로재(대표 승효상) 연합팀의 공원 설계안이 당선작으로 뽑혔다.

▲ 김기수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과 버나드 샴포 미 8군사령관이 지난해 12월 10일 평택 캠프 험프리에 신축 중인 미 8군사령부 청사에서 평택 기지 공사 현황과 이전 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 김기수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과 버나드 샴포 미 8군사령관이 지난해 12월 10일 평택 캠프 험프리에 신축 중인 미 8군사령부 청사에서 평택 기지 공사 현황과 이전 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용산 기지 터의 전체 면적은 358만㎡(약 108만 평). 이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방위사업청, 국방부 청사 등 정부 관련 시설이 93만㎡(약 28만 평)를 선점한 상태이고 2019년 이전할 예정인 미국대사관 부지와 한미연합사, 헬기장, 드래곤힐호텔 등 잔류 미군 시설 용지가 22만㎡(약 6만7천 평)에 이른다. 그나마 이곳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8곳의 정부 부처 문화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가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방침을 철회했다.
정부는 2017년 말까지 미군이 평택으로 모두 옮겨가면 단계적으로 공원 조성 공사에 나서 2027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1천200여 동의 건물 가운데 일본 총독 관저(현 121병원), 미소공동위원회 당시 소련 대표단 숙소로 쓰인 주한미합동지원단 청사, 미군 전몰자 기념비로 탈바꿈한 일본군 만주사변 전사자 충혼비, 지하 벙커 등 역사적 가치가 있는 80여 동만 남겨 놓고 모두 철거한다. 서울시는 용산 기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과 냉전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가치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군 잔류 시설 문제와 토양 오염 등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구 1천만의 대도시 한복판에 1세기 넘도록 개발의 삽날을 피해온 대규모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큰 축복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우리에게 안겨준 뜻밖의 소중한 선물을 서울의 보물로 잘 지키고 가꿔나갈 수 있도록 다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용산공원 설계자 아드리안 회저와 승효상 대표가 기자들에게 공원 조성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용산공원 설계자 아드리안 회저와 승효상 대표가 기자들에게 공원 조성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글 ㅣ 이희용
1960년 경남 밀양 출생, 서울 성동고 졸업,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연합뉴스 대중문화팀장, 엔터테인먼트부장, 미디어전략팀장, 미디어과학부장, 재외동포부장, 한민족뉴스부장, 한민족센터 부본부장 역임. 한국기자협회 수석부회장 겸 상근부회장(2008~2009). 홍성현언론상 수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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