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의 역사 동계올림픽의 어제와 오늘

동계 올림픽은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처음 열렸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최초의 근대 올림픽이 열렸지만, 겨울 스포츠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기는 힘들었다. 날씨와 그에 따른 경기장 건설 등이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동계 스포츠가 올림픽에 포함되도록 힘을 기울인 주인공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창립위원인 빅토르 구스타프 발크(스웨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프랑스)의 가까운 친구이자 ‘스웨덴 스포츠의 아버지’로 불리는 발크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1908년 런던 올림픽에 피겨스케이팅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했다. 4개 종목이 열린 피겨스케이팅에서 울리히 살코(스웨덴)와 매지 사이어스(영국)가 첫 개인종목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동계 종목만 별도로 열기로 계획했던 1916년 베를린 올림픽이 1차 세계대전 때문에 취소된 뒤 IOC는 1924년 7월 파리 올림픽에 앞서 1월 25일부터 2월 5일까지 프랑스 샤모니에서 ‘국제 동계 스포츠 주간’이란 이름으로 겨울철 종목만 따로 개최했다. IOC는 1926년 제26차 리스본 총회에서 동계 올림픽을 분리하기로 결정했고, 1924년 샤모니 대회를 제1회 동계 올림픽으로 인정했다.
16개국에서 선수 258명(남자 247명, 여자 11명)이 참가한 가운데 노르딕 복합, 크로스컨트리 스키, 피겨 스케이팅, 아이스하키, 스키 점프, 등 16개 세부 종목으로 열린 이 대회의 첫 이벤트 남자 스피드 스케이트 500m에서 우승한 찰스 주트로(미국)는 최초의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때부터 4년 주기로 열린 동계 올림픽은 세계 2차 대전 기간에는 두 차례 열리지 못하는 곡절을 겪었다. 아돌프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이나 냉전시대의 동서진영 지도자들은 그들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올림픽을 이용하기도 했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까지 하계 올림픽과 같은해에 열리다가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조정돼 2년 단위로 동하계 올림픽이 번갈아 개최되고 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올림픽(독일)에 3명의 ‘조선인’ 선수를 내보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48년 생 모리츠 올림픽(스위스)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3명과 임원 2명을 파견해 최초로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동계 올림픽 초창기에는 눈과 얼음이 필요한 겨울철 스포츠의 특성 때문에 개최지 날씨에 따라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 및 방송기술의 발전에 따라 동계 스포츠도 발전을 거듭했고, 올림픽도 진화했다. 대회를 거듭하면서 루지, 바이애슬론, 쇼트트랙, 프리스타일 스키 등이 추가돼 풍성하게 살을 찌웠다.

초창기~세계 2차대전
1928년 생 모리츠 올림픽(스위스)은 그해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과 분리돼 다른 나라에서 동계 올림픽이란 타이틀을 걸고 개최된 첫 대회다. 이 대회에 일본이 출전하는데 최초의 아시아 국가 출전으로 기록된다. 올림픽 최초의 미끄럼 종목인 스켈레톤이 정식 종목으로 열렸고, 얼린 호수 위에서 경마가 벌어져 큰 관심을 끌기도 했으나 시범종목이었다.
블리자드 강풍 속에서 개회식이 열렸으나, 정작 대회 기간 중에는 너무 따뜻해 스피드스케이팅 10000m는 열리지 못하고 취소됐다. 이때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우승한 15세의 소냐 헤니(노르웨이)는 이후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하며 전설이 됐다.
1932년 동계 올림픽이 열릴 당시 개최지 레이크 플래시드(미국)는 인구 40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세계 경제공황 여파로 자금을 충당하지 못해 대회 조직위원장이 땅을 기부해 봅슬레이 트랙을 건설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스하키가 최초로 실내 경기장에서 열렸으나, 따뜻한 날씨 때문에 4인승 봅슬레이는 폐회식이 끝난 뒤에야 치러졌다.
1936년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올림픽(독일) 이후 1940년 올림픽과 1944년 올림픽은 2차 세계 대전 때문에 열리지 못했다. 1940년 올림픽은 삿포로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1938년 일본의 중국 침략으로 취소됐고,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으로 옮겨 치르려던 계획도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무산됐다. 1944년 올림픽은 이탈리아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열릴 계획이었으나 전쟁이 계속된 여파로 취소됐다.

1948년~1960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뒤 처음으로 올림픽이 열린 곳은 제2회 동계 올림픽을 치렀던 스위스의 생 모리츠다. 스위스는 세계대전 중 중립을 지켜 침략을 받지 않아 1928년 올림픽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에 20년 만에 다시 두 번째 동계 올림픽을 치를 수 있었다. 처음 선수단을 파견한 한국을 비롯해 28개국이 출전했으나 2차 세계대전 침략국인 독일, 일본은 초대받지 못했다.
1952년 오슬로 올림픽은 근대 스키의 고향인 노르웨이에서 열려 대성황을 이뤘다. 여자 크로스컨트리 스키가 처음 열렸고,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컴퓨터 채점이 시작됐다. 뉴질랜드와 포르투갈도 처음 선수단을 파견해 인류의 겨울 잔치에 동참했다.
1956년 코르티나 담페초 올림픽(이탈리아)에는 처음으로 소련 선수단이 출전해 금메달 7개를 포함해 16개에 메달을 휩쓸며 단숨에 1위로 올라서는 인상적인 데뷔를 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 4개 중 3개를 차지했고 스칸디나비아 국가가 지배했던 크로스컨트리와 캐나다의 독주가 이어졌던 아이스하키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이 대회부터 TV를 통해 올림픽이 중계되기 시작했고, 최초로 여성선수가 올림픽 선서를 했다.
1960년 스쿼밸리 올림픽(미국)에서는 남자 바이애슬론과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이 첫선을 보였고, 전통의 나무 스키 대신 금속 스키가 처음 등장했다. 월트 디즈니가 개폐회식을 연출했고, 모든 기록과 결과를 IBM사의 컴퓨터로 집계하는 획기적인 변화도 있었다. 스키 종목에서는 선수들이 기문을 제대로 통과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방송사에 비디오테이프를 요청했는데, CBSTV는 여기서 착안해 즉석 재생 기술을 개발했다.

1964년~1980년
1964년 동계 올림픽이 열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는 전통적인 동계 스포츠 휴양지이지만 당시 대회 기간에는 따뜻한 기온 때문에 눈과 얼음이 모자라는 긴급사태가 발생했다. 오스트리아 군대가 급히 투입됐고, 산악지역에서 2만개의 얼음덩이를 루지와 봅슬레이 트랙으로 공수했다. 또한 1 크기의 눈덩이 4만개를 알파인 스키 슬로프에 뿌려야 했다. 여분의 눈덩이가 2만개 더 준비돼 있었다고 하니 대회 조직위가 눈부족 사태에 얼마나 크게 놀랐는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처음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북한은 여자 스피드스케이트 3000m에서 한필화가 은메달을 차지,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김윤만이 은메달을 딴 한국보다 28년이나 먼저 메달 획득 기록을 남겼다.
1968년 그르노블 올림픽(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성별 검사와 도핑테스트가 실시됐고, 방송 중계 또한 컬러로 이뤄지는 발전이 있었다. 덕분에 대회 조직위는 4년 전 인스부르크 올림픽 때보다 2배 이상 뛴 2백만 달러에 중계권을 팔 수 있었다. 노르웨이가 금메달 6개 포함 14개의 메달로 소련(금메달 5개, 총 13개)을 제치고 처음으로 종합 1위를 차지했고, 스키 점프에서는 처음으로 100m 벽을 깬 선수가 나왔다.
1972년 삿포로 올림픽(일본)은 유럽, 북아메리카를 떠나 아시아에서 열린 최초의 동계 올림픽이다. 이 대회에서 일본은 스키점프의 금, 은, 동메달을 휩쓰는 이변을 일으키며 첫 동계 올림픽 금메달의 감격을 누렸다. 일부 스키선수들이 재정적 지원을 받는 이벤트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아마추어의 자격을 잃었다는 IOC의 결정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 미국, 캐나다 등 일부 선수들의 출전이 금지됐지만, 공산권 국가의 전문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형평성 논란도 불렀다. 이 때문에 캐나다는 삿포로 올림픽과 4년 뒤 인스부르크 올림픽에 아이스하키 팀을 파견하지 않으며 항의했다.
1976년 동계 올림픽은 원래 미국 덴버가 치를 예정이었으나 콜로라도 주의회가 공공기금을 올림픽 지원에 사용하지 못하게 함에 따라 급히 개최지를 12년전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인스부르크로 바꾸었다.
1980년 동계 올림픽은 48년만에 다시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에서 열렸다. 이로써 레이크 플래시드는 생 모리츠, 인스부르크에 이어 3번째로 동계 올림픽을 두 차례 치른 도시가 됐다.
이 대회에는 대만이 불참해 동계 올림픽 사상 유일한 보이콧 기록을 남겼다. 1952년부터 계속 출전해온 대만은 이 대회에 처음 중국을 출전시키려는 IOC가 지금까지의 ‘Republic of China’ 대신 ‘Chinese Taipei’라는 국명과 새로운 깃발, 국가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자 보이콧을 선언했다.
설상 종목에서 안정적인 경기장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제설기가 사용돼 최초로 인공 눈이 올림픽에 쓰였고, 미국 스피드 스케이터 에릭 헤이든은 남자 500m에서부터 1만m까지 단거리와 중장거리의 5종목을 모두 휩쓰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1984년~1998년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유고슬라비아)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 시대의 첫 올림픽이었다. 삿포로, 구텐베르그로 좁혀지는 듯 했던 유치경쟁이 사라예보의 승리로 끝나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대회는 49개국 1272명의 선수가 출전해 성공적으로 끝났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캐나다)부터 동계 올림픽은 3주에 걸쳐 열리는 대회로 규모가 커졌다. 쇼트트랙, 컬링, 프리스타일 스키가 시범종목으로 열려 훗날 정식종목 편입을 기약했고 알파인에 슈퍼대회전과 알파인 복합이 추가돼 5개 종목으로 늘었다. 노르딕 복합과 스키점프에 단체종목도 추가됐다. 스피드스케이팅이 올림픽 오벌이라는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것도 이때부터다. 동독의 크리스타 로텐버거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금메달을 땄고, 7개월 뒤 서울 올림픽에 출전해 사이클에서 은메달을 따 최초로 같은해 동계와 하계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톰바가 스키 2관왕에 올라 그의 시대를 열었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프랑스)은 많은 변화 속에 치러진 첫 대회다. 공산권이 해체돼 소련이 독립국가연합(EUN)이란 이름으로 나왔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1936년 이후 처음으로 통일 독일이 출전했다. 유고 내전 이후 독립국가가 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도 처음 동계올림픽에 모습을 보였다. 독일이 금메달 10개로 종합 1위에 올랐고, 독립국가 연합은 금 9개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김윤만이 처음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데 이어 쇼트트랙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 일약 세계 10위에 오르며 새로운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1986년 IOC의 결정에 따라 1992년 대회를 끝으로 동계 올림픽은 하계 올림픽과 번갈아 치르게 됐다.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노르웨이)은 2년 만에 다시 열린 처음이자 마지막 동계 올림픽이다. 72개국에서 최초로 2000명이 넘게 참가한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일본)에서는 스노보드와 컬링이 정식종목으로 추가됐고, 아이스하키에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을 비롯한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허용돼 체코가 첫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여자 아이스하키가 시작됐고, 노르웨이의 뵈른 달리는 3관왕에 올라 통산 8개의 금메달을 동계 올림픽에서 획득한 전설의 선수가 됐다.

2002년~현재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미국)에서는 미국의 보네타 플라워가 여자 봅슬레이에서 우승, 동계 올림픽 최초의 흑인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독일의 게오르그 해클은 사상 최초로 5개 올림픽 연속 메달리스트가 되는 기록을 썼고, 김동성이 아폴로 안톤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에 희생돼 금메달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호주의 스티븐 브래들리는 쇼트트랙에서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따 남반구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이탈리아)은 동계 올림픽 최초로 인구 90만 이상의 대도시에서 열렸다. 80개국 2508명의 선수가 참가해 26개국이 메달을 나눠갔고, 사상 최초로 모바일 폰으로 생중계되는 기록도 남겼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캐나다)에서는 아시아권 국가들의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국이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금메달 6개, 중국은 5개를 따냈고 아시아권 국가 모두 합쳐 31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2014년 소치 올림픽(러시아)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따 종합 13위 성적을 거두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이 꾸준히 동계 스포츠에 투자한 결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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