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정경 발견 50년과 인쇄 종주국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966년 10월 13일 문화재 당국은 전봇대와 도르래와 밧줄을 이용해 경주 불국사 석가탑의 해체 수리에 나섰다. 한 달여 전 도굴꾼들이 사리장엄구를 훔쳐내려고 자동차 수리용 리프트 잭으로 탑신을 들어 올리는 바람에 일부 석재가 떨어져 나가고 몸체가 뒤틀렸기 때문이다. 스님들의 독경 속에 2층의 옥개석을 들어 올리자 금동사리함과 청동비천상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동양 최고의 공예품인 데다 당대의 문화와 생활상을 밝혀줄 타임캡슐이었다. 그러나 환희에 찬 스님들이 탄성은 이내 비명과 탄식으로 바뀌었다. 속이 썩은 전봇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2층 옥개석이 미리 내려놓은 3층 옥개석 위로 떨어져 깨진 것이다. 사리 46과를 담은 녹색 유리병도 나중에 스님들이 안전한 장소로 옮기려다 실수로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났다.
석가탑과 그 속에 1천 년간 잠들어 있던 유물은 수난을 당했지만 학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사리장엄구와 함께 두루마리로 된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약칭 무구정경)이 발견된 것이다. 당시 학계는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다라니경이 한문으로 번역된 해가 704년이고 석가탑의 건립 연대가 불국사가 창건되던 751년이므로 그사이에 인쇄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때까지 770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보다 최소한 19년 앞선 것이다. 당나라 측천무후(재위 690∼705년) 때 일시적으로 쓰인 무주제자(武周制字)의 일부가 사용된 것도 최고(最古)의 인쇄본임을 방증했다.
우리 학자들은 무구정경이 통일신라의 기술로 제작됐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국 학자들은 무구정경에 무주제자가 쓰였고 중국산 닥종이로 만들어졌다며 중국에서 제작돼 한반도로 건너갔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고교 교과서에는 무구정경이 중국의 유물로 소개돼 있다. 일본은 무구정경의 제작 장소와 연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백만탑다라니경이 최고의 목판 인쇄물이라고 주장한다.

▲ 발견된 지 41년 만에 판독돼 공개된 묵서지편의 석가탑 중수기

▲ 발견된 지 41년 만에 판독돼 공개된 묵서지편의 석가탑 중수기

이를 둘러싼 논쟁은 천 년의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41년간이나 수수께끼 속에 묻혀 있던 묵서지편이 보존 처리를 거쳐 해독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사리공에서 무구정경을 발견했을 때 바닥에 시루떡처럼 뒤엉켜 붙은 종이 뭉치가 비단에 싸여 있었는데, 2007년 10월에야 판독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는 잇따른 지진으로 인해 1024년과 1038년에 각각 석가탑을 중수한 기록을 담은 것으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사리함과 함께 안치했다’는 내용이 있어 고려 때 제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무구정경을 새로 제작해 안치한 것이 아니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데다가 글씨체나 종이의 재질 등으로 보아 8세기 초 통일신라에서 제작된 것이 분명하다는 학설이 속속 나오면서 우리 측 논리에 더 많은 힘이 실렸다. 무주제자는 중국에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통일신라에서도 쓰였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는 황제의 이름자여서 쓸 수 없는 측천무후의 이름 조(照)자가 들어 있다는 점도 우리 입장에 무게를 실었다. 다만 중수기에 석가탑이 혜공왕(재위 765∼780년)의 태자 시절에 완성됐다는 기록이 있어 무구정경의 제작 연대는 765년 이전으로 14년 늦춰졌다.
디지털 기술이 보급되기 전까지 인쇄물은 인류의 지혜를 효율적으로 기록·보관할 수 있는 최적의 저장장치였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최상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인쇄·출판의 종주국 지위를 지켜왔다. 인쇄 기술도 뛰어났지만 1천 년 이상 보존될 만큼 질 좋은 종이와 중국에 수출할 정도로 우수한 먹도 생산했다. 초조대장경·속장경·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을 통칭하는 고려대장경은 11∼13세기 동아시아 문화와 기술의 결정체였고, 늦어도 13세기 초에는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금속활자는 인류 문명사의 새 지평을 여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회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상당수의 백과사전이나 교과서에서는 무구정경이 세계 최초의 인쇄물로 추정된다는 사실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1377년 제작된 직지심체요절이 1972년 세계도서박람회에 공개되자 세계 학계가 이를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공인했는데도 이보다 78년 뒤진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잘못 설명한 기록이 아직도 널려 있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팔만대장경 경판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고 이를 보관해온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랐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은 2001년에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우리나라는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난중일기 등 13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무구정광경은 1967년 국보 제126호로 지정됐을 뿐, 이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리려는 시도는 일본과 중국의 반발 때문에 번번이 무산됐다.
무구정경 발견 50주년을 맞아 관련 학계와 불교계 등은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치밀한 고증과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 다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국 출판·인쇄문화의 찬란한 전통이 전 세계 백과사전과 교과서 등에 빠짐없이 실릴 수 있도록 온 국민이 관심을 쏟고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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