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민족 해방의 첫걸음, 하노이 해방 기념일

151009giaiphong01-b7f9c지금으로부터 6년 전, 2010년 10월은 베트남에서 떠들썩한 축제가 열렸다. 1010년 베트남의 황제 리 타이 또(Ly Thai To)가 당시의 수도를 탕롱(Thang Long)으로 정도(定都)해 오늘날 하노이까지 이어진 지 100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는 2010년 10월을 맞이해 1일부터 10일까지 10일간의 대규모 축제를 기획해 많은 이들이 즐기는 기념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베트남 정부가 10월 1일부터 ‘10일’을 하노이 수도 천년 기념일로 정한 데에는 큰 의미가 있다. 10월 10일은 하노이가 프랑스와의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마침내 독립을 이룰 수 있었던 해방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151009giaiphong07-b176d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많은 침략을 겪은 국가이다. 베트남의 역사를 말할 때 ‘전쟁’을 빼놓는 것은 해야 할 역사 이야기의 절반을 줄여주게 만든다. 고대에서부터 시작된 중국의 끊임없는 침략과 지배, 독립의 반복은 베트남 민족의 끈기와 의지를 증명한다. 하지만 중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나라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역사의 수모는 계속된다. 베트남 근현대사에서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는 아직까지 많은 베트남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치욕의 역사이다. 매년 베트남의 10월 10일은 ‘하노이 해방 기념일’로 불린다. 100년간 이어졌던 프랑스의 강점기에서 벗어나 비로소 하노이를 돌려받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151009giaiphong08-42b62베트남이 프랑스에게 처음 지배당한 시기는 1884년이다. 이후 독립을 찾기까지 100년이란 시간 동안 베트남은 프랑스의 강제 점령 하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 세기동안 식민지배 역사 속에서 베트남은 그야말로 길고 긴 터널을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자체 문자였던 쯔놈은 자취를 감추고 프랑스는 베트남의 보호국이라는 명분하에 나라를 장악했다. 1944년 베트남은 비로소 프랑스에게서 벗어난 듯 보였다. 하지만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일본이 패망하면서 상황은 역전되고 만다. 1945년이 우리나라에게는 길고 길었던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독립의 해였다면 베트남은 프랑스에게 재점령을 당했던 악몽 같은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베트남을 다시 재점령한 프랑스는 베트남 정부에게서 수도 하노이까지 빼앗아가기에 이른다.

151009giaiphong11-9641b프랑스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베트남의 독립운동, 전쟁과 같은 노력은 꾸준하게 이어졌다. 결국 베트남은 프랑스를 이기고 독립에 성공한다. 지금의 베트남이 있기까지 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이를 잘 보여주는 증명의 역사이다. 1946년부터 다시 시작된 프랑스의 식민 지매를 벗어나기 위해 1954년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치르기에 이른다. 약 두 달 동안 벌어진 전투는 프랑스를 항복시킬 수 있었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단순히 베트남에서만 큰 의의를 지닌 승리의 전투가 아니다. 당시 프랑스가 지배했던 인도차이나의 독립에도 큰 영향을 준, 프랑스에게는 그야말로 굴욕적인 전쟁이나 다름없다. 역사적으로 중국과의 독립전쟁과 외세의 침략에 강했던 베트남 민족답게, 디엔비엔푸 전투는 세계 최초로 피식민지 군대가 점령군을 몰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결국 디엔비엔푸 전투로 베트남의 독립도 이뤄질 수 있었다. 8년이 지난 1954년이 돼서야 베트남은 빼앗겼던 수도 하노이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다. 1954년 10월 10일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재점령한 후 8년 만에 하노이가 해방된 날이 됐다. 하노이의 해방일은 베트남 민족이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해준 출발점이 됐다. 물론 프랑스에게서 식민 지배를 벗어난 뒤로 오늘날의 베트남이 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당시 베트남의 지도자였던 호치민은 베트남 남부까지의 완전한 해방을 원했다. 베트남 남부의 해방뿐만 아니라 남과 북의 분단이라는 또 다른 문제와 미국과의 대립 역시 반드시 넘어야하는 또 다른 고개였다. 하지만 프랑스에게서 독립을 쟁취하는데 큰 영향을 준 디엔비엔푸 전투는 이후 분단으로 다시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했던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승기를 잡는데 탄력을 준 중요한 전투였다.

N2.2-CD10-5212(AE.508) Sáng 10/10/1954, đại quân ta từ 5 cửa ô tiến vào giải phóng Thủ đô, kết thúc oanh liệt 9 năm kháng chiến chống thực dân Pháp đầy hy sinh, gian khổ.                                                     							 Ảnh:  TTXVN

이렇기에 10월 10일 ‘하노이 개방 기념일’은 베트남에서 매우 중요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 베트남 근현대 독립의 시작이자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난 첫 단추를 끼운 날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년 후인 1956년 프랑스는 마침내 베트남 남부에서도 철수하며 베트남은 완전한 독립에 성공한다. 하노이 해방 기념일은 베트남 민족의 저항 정신이 들어간 의미 있는 날이자 오늘날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있게 해준 기둥 같은 존재이다. 지난 2010년 탕롱-하노이 1000년 정도(定都) 기념 해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노이 해방 기념일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추절이 지나고 10월에 접어들며 베트남에도 10월 10일 하노이 해방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국가이다. 프랑스에게 긴 식민 지배를 당했던 것부터 남북 분단의 아픔, 남과 북의 대립으로 인한 내전은 한국전쟁을 연상시킨다. 역사적으로 많은 수모를 당했음에도 현재 높은 성장을 기록하는 경제발전하며 한창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의 베트남은 새삼 한국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때문일까 하노이 해방 기념일을 맞이하는 베트남인들의 심정이 어떠할 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다가오는 10월 10일 하노이 해방 기념일은 아직까지도 많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베트남 현대사의 첫 출발이자 자주적 행보를 이룬 역사적인 날로 자리 잡고 있다.

#라이프플라자 구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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