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검은 황금 ‘후추’ – 세계사를 바꾼 후추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1498년, 동쪽 항로로 개척을 통해 후생산지인 인도 캘리컷에 도착한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스

K2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농업전문가 김우택 박사의 소개로 지난달 후추산지인 캄폿의 한 농장을 다녀왔다. 수도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150여 킬로쯤 떨어진 캄폿 지방은 과일의 왕이라 불리는 두리안과 함께 후추산지로 유명한 지역이다. 특히,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후추는 캄보디아 최초로 지역특산품임을 인증하는 GI인증마크를 획득한 제품으로 유럽 등지에서 인기가 매우 높다. 현재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유럽 각지 뿐만 아니라, 호주와 미국 등에도 수출된다.

캄보디아의 연간 후추생산량은 약 2만톤 규모다. 하지만 후추로 유명한 캄폿과 인근 까엡에서 연간 생산되는 후추의 양은 불과 90톤 정도에 불과하다. 유럽시장에서 각광을 받을 만큼 품질이 우수하기에 가격 역시 깜퐁참 등 타 지역 생산품에 비해 현저히 비싸다. 이 지역에서 재배된 후추는 1kg당 28불에 거래된다. 캄보디아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후추의 가격이 1kg당 3~4불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9배 넘게 비싼 가격에 팔리는 셈이다. 깜폿시내 재래시장에서 가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깜폿산 후추가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인증마크가 없다면 일단 의심부터 해볼 필요가 있다. 김 박사는 캄폿에서 생산되는 후추의 90% 이상은 유럽 등지로 거의 전량 수출되는 만큼 캄폿산으로 표기가 된 제품이라도 가짜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귀뜸해주었다.

캄보디아에 처음 후추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로 추정된다. 원나라 사신의 수행원이었던 주달관이 쓴 진랍풍토기에도 후추거래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후추가 캄보디아에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식민시절 부터다. 19세기 말엽부터 프랑스인들이 바닷가와 인접해 연중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이 좋으며, 후추생육에도 좋은 기름진 땅에 후추를 옮겨와 심기 시작했다. 이후 60년대까지 캄폿산 후추는 유럽으로 수출될 정도로 품질이 우수했지만, 1975년 크메르루즈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국의 후추농장이 파괴되고 후추나무도 종적을 감추었다. 이후 90년대 들어 과거 후추농장을 하던 농부들과 후손들이 다시 후추를 심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후추는 고추, 겨자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향신료다. 길이 7~8m인 상록의 덩굴성 식물에 열리는 4~5㎜의 작은 열매지만, 세계사를 움직인 원동력이 돼 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한때는 보석보다 귀한 향신료였던 후추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 가마,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마젤란을 비롯한 역사적인 탐험가들의 발걸음을 바다로 향하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후추는 인도 남부 마라바 해안이 원산지다. 단일 품종이다. 기원전 6세기에 이미 후추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후 기원전 4세기 무렵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그리스를 시작으로 처음 유럽으로 전파됐다. 당시 그리스에서 후추는 요리용이 아니고 의료용, 그것도 대개 해독제로 쓰였다. 그 외에도 악취가 모든 병의 근원이라고 여겨졌던 당시 후추는 약품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환자의 집을 후추로 소독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향신료를 의미하는 영단어 ‘스파이스’(spice)는 ‘약품’이라는 뜻의 라틴어 ‘species’에서 유래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말의 ‘양념’도 먹어서 마치 약처럼 몸에 이롭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약념’(藥念)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리스 인들과는 달리 후추나 기타 향신료를 양념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로마 시대에는 운송은 느리고 냉장 기술은 아직 발명되기 전이어서, 신선한 음식확보와 보관이 큰일이었을 것이다. 음식이 상했는지 여부를 알기위해 로마의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후각밖에 없었다. 상한 음식과 맛과 냄새를 감추기 위해 후추와 기타 향신료들이 사용되었는데. 이들은 음식의 썩는 속도를 늦추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후추와 기타 향신료들을 풍부하게 사용하면 말리고, 훈제하고, 소금으로 간한 음식의 맛을 더욱 좋아지기도 했다. 당시 후추의 등장은 유럽인들에게는 일대 혁명이었다.

후추 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
중세시대, 대부분의 유럽인은 아시아와 교역할 때 바그다드를 지나 흑해의 남부 해안을 경유해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경로를 이용했다. 향신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항구도시 베네치아로 운반되었다. 중세가 끝날 때까지 400년 동안 거의 모든 무역은 베네치아에서 이루어졌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11세기 후반에 시작해 근 200년 간 진행된 십자군 원정 덕분에 세계 향료 시장에서 제왕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서유럽에서 온 십자군에게 수송선, 전함, 무기, 자금을 직접 공급해서 바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따뜻한 중동 지역에서 추운 북쪽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십자군들은 원정 중에 즐겼던 이국적인 향신료를 가져가고 싶어 했다. 썩은 냄새를 감추는 효과와 맛없는 건조음식에 고유의 풍미를 더해 주는 효과, 짠 음식의 소금 맛을 완화 시켜주는 그 효과 때문에 후추는 순식간에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방대한 새 시장을 얻었고 전 유럽의 무역업자들은 향신료, 특히 후추를 사기위해 베네치아로 몰려들었다. 후추의 향에 길들여진 유럽인들은 후추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베네치아 상인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른 유통 경로를 모두 막았고 유럽 각지의 상인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이윤을 챙겼다. 당시 향료 무역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독점으로 다른 나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으며 베네치아 상인들이 챙긴 이윤은 어마어마했다. 베네치아의 전성기는 400년간 지속됐다. 하지만 15세기 초 오스만제국이 동로마를 정복하고 육상 무역로를 봉쇄한 뒤 막대한 세금을 징수하면서 지중해 일대의 후추 무역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에 따라 유럽인들은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인도에서 바로 향신료를 들여오기 위해 바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도에 갈 수 있는 새로운 길, 특히 아프리카를 빙 둘러가는 바닷길의 개척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을 지나는 동쪽 항로를 개척하고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서쪽 방향으로 인도를 찾아 항해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된 것이다.

후추무역을 통해 포르투갈 시대 서막이 열리다
포르투갈 왕 주앙1세의 아들이자 항해가인 엔히크 왕자는 외향의 극한적인 기상조건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상선을 대규모로 만들어 선단을 조직했다. 바야흐로 대항해 시대의 시작이었다.

15세기 중반, 포르투갈 탐험가들은 남쪽으로 아프리카 북서 해안의 베르데 곶까지 내려가서 콩고 강 어귀까지 도달했다. 4년 뒤인 1487년 포르투갈 항해가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희망봉을 돌았다. 1498년,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스는 디아스가 개척한 항로를 따라 인도에 도착했다.

인도의 캘리컷 항은 동남아와 스리랑카에서 실려온 각종 향신료와 인도산 후추가 거래되는 향신료 무역 중심지였다. 인도 남서 해안을 다스리고 있던 캘리컷 지역의 지배자는 후추열매를 주고 금을 받기를 원했다. 세계 후추무역을 지배할 꿈에 부풀어 있던 포르투갈 인들은 후추를 사기 위해 금이 필요할 줄을 꿈에도 몰랐다.

5년 뒤 포르투갈은 총과 군대로 무장한 20척의 배를 끌고 와 무력으로 캘리컷을 정복하고 차차 영토를 넓히기 시작했다. 인도양에서 무슬림 선박을 공격했으며 수백 명의 순례자를 죽이고 도시 전체를 불태우는 만행도 저질렀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인도 서해안의 후추 생산과 무역을 독점했고 인도양의 지배권도 얻었다. 이것이 포르투갈 제국의 시작이었다. 포르투갈 제국의 영토는 아프리카를 포함해 동쪽으로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이르렀고 서쪽으로 브라질에 이르렀다.

지난 1998년은 다스코 다가마가 인도를 방문한 지 500년이 되는 해였다. 인도와 포르투갈에;서 각기 다른 큰 행사가 열렸는데, 포르투갈에선 국민적 영웅으로, 인도에서는 재앙을 불러온 악마로 인식됐다. 심지어 인도 해안 지역에서는 그의 꼭두각시를 불태우는 행사까지 열렸다.

당시 스페인도 향료 무역, 특히 후추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1492년 제노바 인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서쪽으로 항해하면 인도의 동쪽 가장 자리에 도달하는 더 짧은 항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스페인 국왕 페르디난드 5세와 여왕 이사벨라를 설득, 탐사 여행의 재정지원을 받았다. 콜럼버스의 확신은 어느 정도 맞았지만 전적으로 옳지는 않았다. 유럽에서 서쪽으로 가면 인도에 도착할 수는 있었겠지만 더 짧은 항로는 아니었다. 광대한 태평양과 그 당시 알려져 있지 않던 아메리카 대륙이 중간에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리도 간절히 찾던 후추도 끝내 구할 수가 없었다. 대신 콜럼버스는 두 번째 항해 때 서인도 제도의 아이티에서 매운 맛이 나는 새로운 향신료를 발견했다. 그의 일기장을 살펴보면 ‘후추보다 더 좋은 향료’라고 기록돼 있다.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고추였다.

고추는 콜럼버스 자신이 일고 있는 후추와는 전혀 다른 향신료였지만, 고추의 발견은 또 다른 향신료세계의 혁명을 불러왔다. 이후 고추는 포르투갈인을 따라 동쪽으로 전파되어 아프리카를 빙 둘러 인도 너머까지 건너갔다. 고추는 50년 만에 전 세계로 퍼져 지역요리, 특히 아프리카, 동아시아, 남아시아 요리와 빠르게 결합했다. 그 고추가 1500년대 유럽으로 건너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2세기를 지나서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불과 400여년 전의 일이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김치 또한 임진왜란 전까지 빨갛지도 않았고 매운 음식도 아니었다. 고추는 콜럼버스 항해가 가져다준 가장 중요하고 지속적인 해택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특히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더 더욱…

중세 왕족 등 후추에 열광… 가격 천정부지로
중세시대에는 왕족과 귀족 등 부유층이 후추에 열광하면서 후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자연히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는 화폐나 보석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게다가 후추가 유통되려면 인도와 이슬람, 베네치아의 상인까지 적어도 3단계 이상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후추는 한 알씩 낱개로 거래될 정도로 매우 귀했다. 그래서 세금이나 집세를 낼 때 돈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후추 한 줌이 양 한 마리나 황소 반 마리의 값어치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동양에서도 후추는 ‘귀하신 몸’이었다. 중국에는 한나라 때 서역의 호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장건이 비단길을 통해 들여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후추라는 명칭도 호나라에서 전래된 초(椒)라는 뜻의 ‘호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후추는 ‘검은 황금’으로 불릴 정도로 값비싸 세금을 낼 때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서 후추 알갱이 1알은 진주 1알과 비슷한 가격이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송나라와의 교역을 통해 들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고려시대의 학자 이인로가 저술한 ‘파한집’에 처음 후추가 언급됐으며, 이로 미뤄 봤을 때 고려 중엽에는 이미 우리나라에 소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고려시대의 역사서 ‘고려사’에는 “1389년(공양왕 1년) 유구의 사신이 후추 300근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 말에는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남방에서도 직접 후추가 유입됐다는 의미다. 다만 수입에 의존했을 뿐 아니라 그마저 소량이라 매우 귀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거래량이 줄어 가격이 더욱 올랐다.

역사를 바꾼 검은 황금 ‘후추’
후추는 오늘날 전 세계 저녁 식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것이 되었지만 중세에서는 후추를 비롯한 계피, 정향, 육두구, 생강같은 향신료는 소수만이 마음껏 소비할 수 있었다.

인도가 원산지인 열대성 관목인 피페르 니그룸(Piper nigrum)에서 나오는 후추는 지금도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향신료이다. 오늘날 후추의 주 생산지는 베트남,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적도 지역이다. 후추나무의 줄기는 튼튼하고 다른 물체를 타고 6미터 이상 자란다. 2~5년이면 붉은 구형의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적정 조건에서는 40년간 열매를 맺는다. 후추나무 한 그루는 매년 10킬로그램의 향신료를 생산한다.

후추의 약 4분의 3은 검은 후추로 팔린다. 검은 후추는 덜익은 후추를 균발효시켜 얻는다. 흰후추는 다 익은 열매의 껍질과 과육을 제거하고 건조시켜 얻는 것으로 후추의 4분의 1이 흰 후추에 해당한다. 붉은 후추는 완전히 익은 후추를 건조시켜 만든 제품으로 수확량이 가장 적다. 열매가 익기 시작하자마자 수확해서 소금물에 절인 푸른 후추(green pepper)도 있다. 다만 보존성이 약해 현지에서나 구입이 가능하다.

영국과 네덜란드로 넘어간 후추 무역권
포르투갈이 캘리컷을 지배 하면서 후추 무역은 약 150년간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놓였다. 17세기 초에 이르자 네덜란드와 영국이 포르투갈의 후추무역을 넘겨받았다. 암스테르담과 런던의 유럽의 주요 후추무역항이 되었다.

1600년, 동인도 향료 무역에서 영국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영국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동인도 회사의 원래 이름인 ‘동인도 제도 무역 런던 상인 조합’이었다. 인도에 가서 후추를 싣고 돌아오는 항해에 자금을 대는 일은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에 상인들은 자신들이 입게 될지도 모를 손실 규모를 줄이기 위해 항해에 대한 몫을 요구했다. 이런 관행은 주식을 사는 것으로 발전되어 현대 자본주의의 시초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후추 때문에 십자군 전쟁이…?
후추과 관련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교황 우르바노 2세는 검소하기 짝이 없는 교황이었지만 육식을 즐겼다고 한다. 이슬람의 세력 확대로 지중해 동쪽이 이슬람에 넘어가자 후추 수입에도 큰 타격이 있어 품귀 현상이 일고 값도 엄청나게 올랐다. 물론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력권에 떨어져 성지 순례도 어렵게 되어 성지 탈환을 위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지만, 어쩌면 후추를 마음껏 먹지 못하는 분노가 교황의 머릿속에서 작용해 예루살렘 성지 순례로 합리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십자군 전쟁의 진정한 원인이 성지 순례였는지 아니면 후추였는지는 우르바노 2세 자신도 잘 몰랐을 것이다.

종교의 이념이 지배하고 육체와 감각이 천시되었던 중세 유럽의 어둠을 후추가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정화 함대가 서양과 비교할 수 없는 위엄의 대함대를 이끌고 먼저 세계를 누볐지만 마땅히 교역할 물건이 없어서 문을 닫았다. 육류를 즐긴 서양의 욕구, 후추에 대한 감각의 욕구가 서서히 유럽을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감각이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역사속에 슬그머니 사라진 후추의 전성시대
만약 냉장고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전 세계적인 거대 향료 무역은 지금까지도 틀림없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후추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이 선호하는 정향이나 육두구는 더 이상 방부제로서 필요 없게 되었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도 재배가 성공을 거둠에 따라 후추가격은 더욱 하락했다. ‘검은 황금’이란 영예로운 별칭도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석유에게 그 영광을 넘긴 지 오래다. 지금도 후추를 비롯한 기타 향신료들은 여전히 인도에서 재배되고 있지만 주요 수출품은 아니다. 오히려 공급이 딸려 수입을 하는 실정이다. 지금 최대 생산지는 베트남이다. 전세계 생산량의 1/3을 이 나라가 책임진다.

지금도 우리는 후추가 우리 음식에 더해 주는 풍부하고 푸근한 풍미를 여전히 즐기고 있지만 후추가 벌어들인 부, 후추가 일으킨 전쟁, 후추가 고무시킨 놀라운 탐사는 어느덧 이제 과거지사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후추의 매우면서도 독특한 향은 입안 가득 오랫동안 맴도는 느낌이다. [박정연 기자]

캄폿 후추(Pepper)의 생산에서부터 수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파악 하여 본다.
캄폿후추는 지역 생산자조합이 구성되어 구성원들은 캄폿 후추 로고를 사용할 수 있으며 조합원들로부터 원료를 구입한다. 이 협회의 농업인들은 생산자를 알아볼 수 있는 각각 자신의 후추생산 코드를 갖고 있다. 캄폿 후추재배 농업인들은 소규모 경작을 주로 하며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유기농 비료를 사용하여 자연상태에서 재배한다. 캄폿 후추만의 독특하고 풍성한 맛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후추작물은 그늘에서 재배되며 재배시작 후 3년 후에 수확이 가능하고 최대 15년까지 수확할 수 있으며 15년이 지나면 새로 재배가 시작된다. 후추 재배 시기는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 동안 진행된다.
이곳의 후추는 지리적인 특산품임을 지정하는 GI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유럽등지에서 매우 인기있는 제품으로 고급레스토랑에서도 캄보디아산 후추를 자랑할 정도로 세계시장에서 유명하다. 주로 유럽시장에 진출하고 있는데 프랑스, 독일, 스위스, 호주 그리고 미국 등이 주요 고객이다.
지역 생산자조합이 캄폿의 로고를 사용할 수 있는 이 지역의 조합원들로부터 원료를 구입하여 좋은 품질의 후추를 만들기 위해 수작업으로 선별하고 있다. 선별된 제품은 장기보존을 위해 진공포장을 하게되며 이렇게 진공포장된 재품은 장기 10년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이곳에서는 생산과정과 열매의 성숙 등급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며, 흑색후추(Black Pepper), 적색후추(Red Pepper), 백색후추(White Pepper)의 3가지 색상의 제품이 가공되고 있다.
흑색후추는 신선함과 매우 온화한 맛을 가지고 있으며 후추열매가 성숙하기 시작하고 열매의 색깔이 어두운 녹색에서 옅은 노란색으로 변했을 때 수확하게 된다. 수확 후 열매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다음 태양아래 자연건조되고, 건조가 진행되는 동안 겉껍질은 굳어지고 색깔은 검어져 흑색후추가 된다.
적색후추는 흑색보다 맛이 강하며 후추 열매가 완전히 성숙되고 열매색깔이 밝게 붉어졌을 때 수확한다.수확 후 열매는 흑색과 같은 방식으로 자연건조 되고 건조가 진행되는 동안 겉껍질은 굳어지고 짙은 붉은색으로 변한다. 건조과정은 날씨에 따라 3일에서 5일간 진행된다.
백색후추는 톡 쏘는듯한 맛과 우아한 맛이며 생산과정은 흑색 후추 열매를 24시간에서 48시간 물에 담그고 이후 후추 열매껍질은 부드럽게 변해 제거되는데 이때 열매 속 씨앗이 추출되고 태양빛에서 자연건조 한다.
종류가 다른 3가지 캄폿 후추의 회사 판매 가격은 100g당 흑색후추 5.5달러, 백색과 적색후추는 7.5달러에 판매되는데 이유는 적색은 희소성으로, 백색은 추가 가공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유럽시장에서 가격은 100g당 15~18달러에 판매된다고 한다. 캄폿후추의 열기로 인해 요즈음은 깜퐁짬주에서도 대규모 단지로 후추재배를 늘려 나가고 있다.
양념시장의 국제가격이 급락한데도 불구하고 캄보디아의 후추 재배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어 내년도 시장가격에 따라 후추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농림부에 따르면 최근 가격 상승에 따라 대규모로 후추가 심어지고 있으며 지난해 총 생산량을 보면 전년보다 두 배나 증가하였고, 2013년도에 비하면 8배가 증가한 양이라고 한다.
정부의 자료에 의하면 올해 20,054톤이 생산되었다. 2016년도에는 11,819톤이 생산되었고, 2013년도에는 2,498톤이 생산되었다. 재배면적으로 보면 2013년도에는 400ha 정도였으나 현재는 5,000ha가넘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이 뜨봉크몸주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이곳에서만 지난해 15,000톤이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라따나끼리와 끄라체에서도 1,200톤 정도가 생산되었다.
2009년부터 2015년에 걸쳐 국제 시장에서의 후추 가격은 3배 이상 올랐으며 이로 인해 후추의 재배면적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왔다. 그러나 세계 1위의 후추 수출국가인 베트남의 가격은 폭락하였으며, 생산능력은 증가하여 왔다. 베트남은 세계 후추의 1/3을 생산하고 있는데 올해는 20만톤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16년도에는 17만 5천톤을 생산하였다.
공급의 증가와 가격 하락은 후추산업의 변곡점으로 몰아가고 있다. 캄보디아의 국내 후추 가격을 보면 GI인증을 받은 깜폿 후추의 경우 2014년도의 최고가격에서 60% 정도가 떨어졌다.
상무부의 바로싼 자문관에 따르면 후추의 초과생산은 가격이 떨어지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고 중개상들은 1kg 당 3달러선에 구매함으로써 생산농가들은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정부도 알고 있으며 농가에 보다 나은 시설을 제공하고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농업전문가 김우택 박사가 정리한 캄보디아 후추에 관한 정보

캄폿 후추(Pepper)의 생산에서부터 수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파악 하여 본다.
캄폿후추는 지역 생산자조합이 구성되어 구성원들은 캄폿 후추 로고를 사용할 수 있으며 조합원들로부터 원료를 구입한다. 이 협회의 농업인들은 생산자를 알아볼 수 있는 각각 자신의 후추생산 코드를 갖고 있다. 캄폿 후추재배 농업인들은 소규모 경작을 주로 하며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유기농 비료를 사용하여 자연상태에서 재배한다. 캄폿 후추만의 독특하고 풍성한 맛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후추작물은 그늘에서 재배되며 재배시작 후 3년 후에 수확이 가능하고 최대 15년까지 수확할 수 있으며 15년이 지나면 새로 재배가 시작된다. 후추 재배 시기는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 동안 진행된다.
이곳의 후추는 지리적인 특산품임을 지정하는 GI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유럽등지에서 매우 인기있는 제품으로 고급레스토랑에서도 캄보디아산 후추를 자랑할 정도로 세계시장에서 유명하다. 주로 유럽시장에 진출하고 있는데 프랑스, 독일, 스위스, 호주 그리고 미국 등이 주요 고객이다.
지역 생산자조합이 캄폿의 로고를 사용할 수 있는 이 지역의 조합원들로부터 원료를 구입하여 좋은 품질의 후추를 만들기 위해 수작업으로 선별하고 있다. 선별된 제품은 장기보존을 위해 진공포장을 하게되며 이렇게 진공포장된 재품은 장기 10년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이곳에서는 생산과정과 열매의 성숙 등급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며, 흑색후추(Black Pepper), 적색후추(Red Pepper), 백색후추(White Pepper)의 3가지 색상의 제품이 가공되고 있다.
흑색후추는 신선함과 매우 온화한 맛을 가지고 있으며 후추열매가 성숙하기 시작하고 열매의 색깔이 어두운 녹색에서 옅은 노란색으로 변했을 때 수확하게 된다. 수확 후 열매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다음 태양아래 자연건조되고, 건조가 진행되는 동안 겉껍질은 굳어지고 색깔은 검어져 흑색후추가 된다.
적색후추는 흑색보다 맛이 강하며 후추 열매가 완전히 성숙되고 열매색깔이 밝게 붉어졌을 때 수확한다.수확 후 열매는 흑색과 같은 방식으로 자연건조 되고 건조가 진행되는 동안 겉껍질은 굳어지고 짙은 붉은색으로 변한다. 건조과정은 날씨에 따라 3일에서 5일간 진행된다.
백색후추는 톡 쏘는듯한 맛과 우아한 맛이며 생산과정은 흑색 후추 열매를 24시간에서 48시간 물에 담그고 이후 후추 열매껍질은 부드럽게 변해 제거되는데 이때 열매 속 씨앗이 추출되고 태양빛에서 자연건조 한다.
종류가 다른 3가지 캄폿 후추의 회사 판매 가격은 100g당 흑색후추 5.5달러, 백색과 적색후추는 7.5달러에 판매되는데 이유는 적색은 희소성으로, 백색은 추가 가공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유럽시장에서 가격은 100g당 15~18달러에 판매된다고 한다. 캄폿후추의 열기로 인해 요즈음은 깜퐁짬주에서도 대규모 단지로 후추재배를 늘려 나가고 있다.
양념시장의 국제가격이 급락한데도 불구하고 캄보디아의 후추 재배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어 내년도 시장가격에 따라 후추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농림부에 따르면 최근 가격 상승에 따라 대규모로 후추가 심어지고 있으며 지난해 총 생산량을 보면 전년보다 두 배나 증가하였고, 2013년도에 비하면 8배가 증가한 양이라고 한다.
정부의 자료에 의하면 올해 20,054톤이 생산되었다. 2016년도에는 11,819톤이 생산되었고, 2013년도에는 2,498톤이 생산되었다. 재배면적으로 보면 2013년도에는 400ha 정도였으나 현재는 5,000ha가넘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이 뜨봉크몸주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이곳에서만 지난해 15,000톤이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라따나끼리와 끄라체에서도 1,200톤 정도가 생산되었다.
2009년부터 2015년에 걸쳐 국제 시장에서의 후추 가격은 3배 이상 올랐으며 이로 인해 후추의 재배면적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왔다. 그러나 세계 1위의 후추 수출국가인 베트남의 가격은 폭락하였으며, 생산능력은 증가하여 왔다. 베트남은 세계 후추의 1/3을 생산하고 있는데 올해는 20만톤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16년도에는 17만 5천톤을 생산하였다.
공급의 증가와 가격 하락은 후추산업의 변곡점으로 몰아가고 있다. 캄보디아의 국내 후추 가격을 보면 GI인증을 받은 깜폿 후추의 경우 2014년도의 최고가격에서 60% 정도가 떨어졌다.
상무부의 바로싼 자문관에 따르면 후추의 초과생산은 가격이 떨어지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고 중개상들은 1kg 당 3달러선에 구매함으로써 생산농가들은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정부도 알고 있으며 농가에 보다 나은 시설을 제공하고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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