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가 만든 ‘킬링필드’ 영화, 배우출신감독이 드러낸 한계인가? – 전작<킬링필드> 한계 못 넘은 졸리의 네번째 연출작 <처음, 그들은 나의 아버지를 죽였다>

안젤리나 졸리가 만든 ‘킬링필드’ 영화, 배우출신감독이 드러낸 한계인가?

– 전작<킬링필드> 한계 못 넘은 졸리의 네번째 연출작 <처음, 그들은 나의 아버지를 죽였다>

“문밖에는 AK소총을 어깨에 멘 군인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직감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둥켜안은 채, 어쩌면 영원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인사를 나누며 영문을 몰라 하는 어린 자식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했다. 군인들이 재촉하자 아버지는 결국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다른 어른들과 함께 정글 어디론가 끌려가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점점 뿌옇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영화 <처음, 그들은 나의 아버지를 죽였다>(원제: First, They Killed My Father)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캄보디아 여류작가이자 인권운동가로 활약 중인 로웅 엉의 자전적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70년대 캄보디아를 죽음과 피의 땅으로 만들었던 크메르루주 정권아래 생과 사를 넘나들었던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6살 어린 소녀의 시각으로 재창조해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오랜만에 ‘킬링필드 시대’를 다룬 영화라는 점 때문에 현지 영화제작자들과 평론가들 역시 이 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안젤리나 졸리의 ‘킬링 필드’ 수난
하지만, 이 영화가 특히 주목받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다름 아닌, 오스카상에 빛나는 미국의 유명배우 안젤리나 졸리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 작품은 보스니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감독 데뷔작 <피와 꿀의 땅에서>(원제: In The Land of Blood and Honey, 2011)에 이어 네 번째 연출작이다. 2015년 하반기부터 6개월간 촬영했으며, 영화제작비는 미국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업체인 넷플릭스가 전액 투자했다. 영화에 졸리가 입양한 캄보디아 출신 큰 아들 매독스(16)도 참여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국내 영화팬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는 제작 초기단계부터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영화계에 숱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보다 외적인 논란거리가 더 주목을 끌기도 했다.

졸리는 지난해 9월 개인적인 아픔을 겪었다. 남편이자 배우인 브래드 피트와 결별을 공식 선언한 것. 한때 금실 좋은 잉꼬부부로 만인의 부러움을 샀지만, 이들 커플은 양육권 문제로 현재까지도 소송 중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6개월 남짓한 영화제작 기간에도 힘든 일들을 겪었다. 특히, 배역 캐스팅 과정과 관련해 한 연예매체가 폭로한 내용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캐스팅 담당자들이 배역을 희망하는 소녀들을 모아 일종의 캐스팅게임을 한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어느 날 스태프들은 테이블에 돈 20불을 올려놓은 뒤 소녀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일부러 훔쳐 달아나라 지시를 한 뒤 소녀의 뒤를 쫒아가 어깨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소녀들을 향해 왜 이 돈을 왜 훔치려 했는지, 왜 필요한지를 다그쳤다. 당황한 대부분의 소녀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자신이 돈을 훔칠 수밖에 없는 궁색한 이유를 대야만 했다. 주인공으로 낙점된 소녀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거짓말을 했다. 제작진들은 그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며, 어린 배우들의 감정 연기를 테스트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상에서는 졸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로, 입양 아이들까지 무려 여섯 자식을 둔 졸리로선 최악의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평소 쌓아둔 인권사회운동가라는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졸리는 영국 〈가디언〉과 단독인터뷰를 갖고 이 문제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당시 상황은 미리 짜인 각본에 의한 것이며, 소녀들의 부모 등 보호자들도 함께 있는 자리였다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함께 공동제작에 나선 캄보디아출신 리티 판 감독 역시 〈허핑턴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의 편이 되어 주었다. 그는 “부모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보모로 나선 NGO관계자들과 의사들까지 가까이서 이 상황을 지켜봤다. 이러한 일로 인해 그녀가 쌓아온 명성과 업적이 훼손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우연한 기회에 리티 판 감독과 잠시나마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그는 “이 문제는 이미 끝난 문제다. 안젤리나 졸리는 오직 선의의 일만을 해왔으며, 캄보디아를 위해 해온 일들만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며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참고로 리티 판 캄보디아계 프랑스 감독은 클레이 애니메이션 영화 <미싱 픽처>(원제:Missing Picture)로 86회 아카데미외국영화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됐던 감독이다.)

이 영화의 공동 프로듀서로 나선 프랑스 국적 캄보디아 출신 감독 리티 판은 아역배우 캐스팅 게임(?)과 관련해 졸리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적극 그녀를 옹호했다. 사진은 리티 판 감독 자신이 크메르루주 시절 겪은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영화 <미싱 픽처> 클레이 세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면.

졸리를 둘러싼 사건은 또 있었다. 영화 초반부 배경이 된 시기와 공간은 공산게릴라들의 의해 함락되기 직전인 1975년 4월의 수도 프놈펜이다. 하지만, 실제 촬영은 프놈펜에서 차로 6시간 떨어진 ‘바탐방’이란 도시에서 이뤄졌다. 프랑스 식민 시절부터 50~6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많이 남아 있어 70년대 프놈펜 시내 분위기를 재현하기에 이만큼 적합한 도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도시에서 한 달 가까이 촬영이 이어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된 영화인지라 촬영 장소에서는 현지경찰들의 도움으로 거의 하루 종일 차량통제가 이뤄졌다. 오가는 행인들도 걸핏하면 경찰이 막아 서기 일쑤였다. 당장 장사로 하루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가난한 노점상들과 식당주인들의 불만이 가장 컸다. 결국 이 지역 마을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상인들이 당국에 민원을 제기하며 촬영팀 철수를 요구한 것. 영화제작팀은 피해규모에 따라 100~200불을 피해보상비로 지불하는 것으로 간신히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사건은 이 뿐만 아니다. 훈센 정부 지원 하에 실제군인들이 엑스트라 배우로 대거 동원되자,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더군다나 훈센 정부의 파격에 가까운 지원에 특혜 논란과 더불어 졸리가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크메르루주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소문까지 흘러나왔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 국민들이 오랫동안 가져왔던 배우 졸리에 대한 좋은 이미지도 함께 추락했다.

이런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그녀가 연출 제작한 영화가 지난해 11월 최종 편집을 마쳤다. 금년 초부터 수도 프놈펜 시내에는 대형 영화홍보간판이 붙기 시작했고, 영화촬영의 주무대중 한 곳인 씨엠립 앙코르와트 코끼리 테라스 야외무대에서 지난 연말 첫 시사회가 열렸다.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2월엔 노로돔 시하모니국왕을 비롯해 정부고위관료, 영화관계자와 팬 약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도 프놈펜 올림픽스타디움에서 2차 시사회를 가졌다. 당시 참석한 관객들은 첫 시사회와 마찬가지로 안젤리나 졸리에게 열광에 가까운 환호와 찬사를 보냈다. 덕분에 졸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이 희석됐고, 적어도 캄보디아에서만큼은 그녀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소문들도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영화 공개되니 현지에선 열광, 그러나 완성도는?
이후 반년 가까운 준비와 재편집 과정을 거쳐 이 영화는 지난 9월 8일 캄보디아 극장가에서 공식 개봉했다. 입소문을 타고 예상보다 많은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박이었다. 제작사 측은 프놈펜시내 영화관에서만 무려 25개가 넘는 스크린을 미리 확보해두었지만, 개봉첫날 거의 전석이 매진된 데 이어 주말을 맞은 다음날도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매진행렬이 이어졌다. 영어자막 버전 덕분에 현지 거주 유럽 관객들도 상당수 극장을 찾았다.

영화사 관계자는 “영화팬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캄보디아 최고 흥행기록을 갱신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이제 시작이라 아직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 같은 흥행열기가 최소 보름 이상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전체인구의 1/4에 해당하는 200만 명이 희생된 캄보디아 판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는 사실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다. <미션>(Mission)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롤랑 조페 감독이 지난 1984년 제작한 〈킬링필드〉가 캄보디아 내전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반공’이 국시였던 당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단체관람으로 이 영화를 봐야 했다. 기자 역시 같은 반 친구들과 이 영화를 대한극장에서 본 기억이 난다. 40~50대 이상 올드 영화 팬들이 캄보디아 하면 제일 먼저 <킬링필드>를 떠올리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시 영화출연이 처음이었던 배우 헹 S. 응오르는 이 영화 한편으로 1985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조연배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는 편집상, 촬영상 등을 포함해 3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하지만,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와 치부를 그대로 보여준 사실감 넘치는 걸작이라는 영화비평가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치평론가들과 역사가들부터는 최악의 영화라는 혹평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했다. 철저히 미국자본에 의해, 미국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보니, 많은 역사적 진실들이 왜곡되고 가려졌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은 물론이고, 당시 참전한 종군기자들도 이 영화가 70년대 캄보디아를 피로 물들인 킬링필드의 원인제공자가 미국이었다는 기본적인 사실마저 교묘히 숨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이 영화는 60~70년대 미국의 폭격으로 무고한 캄보디아의 민간인 최소 50~80만 명이 죽고,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소년들이 오직 부모의 복수를 갚겠다는 일념 하에 크메르루주 게릴라군의 일원이 되는 전후 과정마저 배제시켰다. 미국은 전범의 책임에서 빠진 채 오로지 크메르루주만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러한 이유로 미국의 시각이 아닌, 피해당사자인 캄보디아인들의 시각이 반영된, 역사의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알릴 그런 영화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물론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만한 작품은 거의 전무했다. 문제는 거액의 자본금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영화 <킬링필드>가 제작된 지 30여 년만인 지난 2015년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미국 최대 영화산업계 큰손과 손을 잡으며 단숨에 해결됐다.

영화제작 발표에 앞서 졸리는 여러 인터뷰에서 “캄보디아는 내 아들 매덕스의 고국이다. 원작을 읽는 순간 스크린으로 옮기고 싶다는 꿈을 가져왔다. 과거 캄보디아의 아픈 역사를 캄보디아인의 시각과 관점에서 해석하고 싶다”며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졸리는 “소녀의 눈으로 경험한 과거 시대 사람들에 관한 진실된 이야기를 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는 캄보디아 출신 원작자와 공동으로 극본작업에 나서는 열의까지 보였다. “이 영화는 오직 캄보디아를 위해 만들었다”는 졸리의 말 한마디에 캄보디아 팬들은 열광하며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하지만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2시간을 훌쩍 넘기는 긴 러닝타임(136분)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뛰어넘는 연출력은 어느 장면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6살 주인공 소녀가 똑똑한 영재로 뽑혀 유소년부대에 소속돼 어린 군인으로 거듭 나기 위해 총 쏘는 연습을 하거나, 지뢰를 땅에 매설하는 교육을 받는다는 스토리는 이미 예고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데 충실했을 뿐 졸리 자신의 시각으로 역사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하고 그러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는 실패했다. 특히, 미국의 책임을 지적하는 부분은 닉슨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장관의 오래된 흑백필름 영상으로 대체한 게 전부였다.

부모를 잃은 한 소녀가 죽을 고생 끝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영화 〈킬링필드〉를 이미 본 관객이라면 익숙한 장면이었다. 늦은 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가족들이 모여 벌레를 구워먹는 모습도 영화 〈킬링필드〉에서 주인공이 도마뱀을 잡아먹는 모습과도 겹쳤다. 영화 〈킬링필드〉를 오마주한 작품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어린 동생이 크메르루주군에 쫓기면서 버리고 간 곰 인형을 손에 쥐며 가족들에게 닥친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은 다른 서구영화에서 워낙 많이 봐 온 장면이라 식상하기조차 하다.

그마나 초반의 긴장감과 영상미는 영화를 보는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수도 프놈펜을 떠나는 민간인들의 길고 긴 행렬은 나름 인상적이었다. 미국영화의 거대자본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워낙 부족해 영화에 몰입하기가 힘들었지만, 중반부까지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문제는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몇 몇 장면들은 보기 불편함을 넘어 향후 논란거리를 제공할 소지마저 있어 보였다. 퇴각하며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크메르루주군과 이에 맞선 베트남군인들이 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영화 막바지에는 베트남 군인들이 주인공 소녀를 비롯해 피난 온 캄보디아인들에게 임시거처를 마련해주고, 전투에서 구해주는 모습이 나온다.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관객들의 눈에 베트남 군인들은 한마디의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로 보였을 게 분명하다.

역사적 사실이 틀렸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베트남군이 대량학살의 주범인 크메르루주를 몰아낸 사실도 맞고 캄보디아 국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살린 것도 맞다. 하지만, 잠시나마 역사적 진실을 파헤쳐 본다면, 폴포트 공산정권을 물리친 해방군이자 생명을 구한 은인으로 스크린에 등장한 베트남군은 사실은 이후 10년간 캄보디아를 거의 반식민지로 묶어 놓은 채 이 나라를 통치한 침략자들이다. 이 때문에 과거를 경험한 기성세대들은 베트남군이 크메르루주를 쫒아낸 덕분에 킬링필드의 시대가 종지부를 찍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베트남군이 마치 그들 자신의 선전처럼 해방군으로 비치는 모습에는 대부분 불편함을 느낀다. 젊은 관객들마저도 베트남 군인들이 뭔가 자기네끼리 숙덕이는 내용이 나올 때 마다 조롱에 가까운 웃음소리를 내며 거북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함께 앉아있기 불편할 정도였다.

자신을 세계적 배우로 스타덤에 오르게 한 영화 〈툼레이더>(2001) 이후 이 나라 국적까지 취득해 14년째 살며 캄보디아를 제2의 고국으로 부를 만큼 애정을 보여 온 졸리가 지난 과거 역사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당시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했다. 어쩌면 원작 스토리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치중하다보니, 그런 우를 범했는지도 모른다. 원작을 뛰어 넘는 감독으로서의 창의력과 재해석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졸리는 과거 혹평을 받은 영화 〈킬링필드〉의 한계를 넘기는커녕 미국의 역사적인 책임이란 문제에 대해선 단 한발자국도 앞서가지 못했다. 심지어 베트남군을 해방군인양 미화하는 실수까지 저질렀다. 캄보디아 이중국적을 가진 졸리는 자신 역시 캄보디아인이라며 “캄보디아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누차 강조하지만, 영화로 담아 낸 그녀의 서구적인 시각은 여전해보였다.

영화를 보고 나온 지금, 솔직히 기억남아 있는 건 부모와 형제마저 잃은 채 자신이 묻은 지뢰를 밟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공포에 떠는 주인공 소녀의 여린 눈빛과, 마지막 크레디트에 나온 ‘안젤리나 졸리’ 라는 익숙한 이름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크메르루주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훈센 정부의 콤플렉스 탓에 제대로 된 자국의 역사마저 배우지 못한 채 자란 캄보디아 젊은 세대들에게는 교과서 같은 영화가 될 것이다. 또한, 35년 전 만들어진 영화 <킬링필드>를 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한 독재자의 광기가 만들어낸 암울한 역사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반면교사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최근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텔루라이드 영화제에 이어 토론토 국제영화제(ITTF)에 특별초대작으로 선정됐다. 넷플릭스를 통한 온라인서비스로 15일부터 전 세계 영화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국내 극장가 상영은 미정으로 알려졌다. 현지 관객들의 반응과 평론가들의 평은 대체로 좋은 편이고 영화 콘셉트 상 크고 작은 영화제에 출품돼 상을 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한국관객들의 눈높이에는 안 맞아 IPTV로 직행할 가능성도 있다.

[박정연 기자]
캄보디아-앙코르유적중-하나인-바콩사원을-방문중인-외국관광객들의-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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