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청소년의 역할

6“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모 유행가 가사로 나이 들어가는 어른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듯싶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없다.’
나이가 어려서 할 수 없다.’
나이도 어린놈이 뭘 안다고…’

지금 이 사회에서는 은연중에 청소년들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폄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청소년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우리 청소년들이 가진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너무나도 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가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우선 신라 화랑의 대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다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삼국사기에 사다함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二十三年… 九月 加耶叛 王命異斯夫討之 斯多含副之 斯多含領五千騎先馳 入栴檀門 立白旗 城中恐懼 不知所爲 異斯夫引兵臨之 一時盡降 論功 斯多含爲最 王賞以良田及所虜二百口 斯多含三讓 王强之 乃受 其生口放爲良人 田分與戰士 國人美之(23년 … 9월에 가야가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왕이 이사부에 명하여 토벌케 하였는데, 사다함(斯多含)이 부장이 되었다. 사다함은 5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앞서 달려가 전단문에 들어가 흰 기를 세우니 성 안의 사람들이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사부가 군사를 이끌고 거기에 다다르자 일시에 모두 항복하였다. 전공을 논함에 사다함이 으뜸이었으므로, 왕이 좋은 토지와 포로 200명을 상으로 주었으나 사다함이 세 번이나 사양하였다. 왕이 굳이 주므로 이에 받아 포로는 풀어 양인이 되게 하고 토지는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니,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이때 사다함의 나이가 15세 정도였다면 믿어지시나요? 오늘날 중2에 해당하는 나이에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낸 것입니다. 또한 의리가 강하여 생사고락을 함께 하자고 약속했던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다 7일 만에 17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는 전체 화랑의 본이 되어 훗날 화랑들의 활동에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유명한 화랑인 관창이 있지요.
관창은 15세 때 이미 말을 탄 채 활 쏘는 데 능하여 김춘추에게 천거되었고, 660년 신라가 당나라와 합세하여 백제를 공격할 때 부장이 되었습니다.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백제군 사이에 대격전이 벌어졌는데, 신라군이 4번 싸워 4번 패하자 다섯 번째 싸움 때 관창은 선봉에 서서 적군 속에 들어가 싸우다가 백제의 포로가 되었지만, 백제 장수 계백은 어린 소년의 용맹에 감탄하여 죽이지 않고 용맹을 칭송한 뒤 신라군에게로 되돌려 보냅니다. 그러나 관창은 부끄러워하며 적진에 다시 돌입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다시 포로가 됩니다. 계백은 다시 관창을 풀어주었으나 얼마 뒤 관창이 다시 말을 타고 계백의 진영으로 돌격해 오자, 계백은 그의 목을 벤 후 말안장에 매달아 신라군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신라군은 관창의 분전과 용기에 힘을 내어 모두 결사의 각오로 싸워 마침내 백제군을 대파하였고, 그 후 백제는 멸망했습니다.
물론 관창이라는 인물이 실질적인 큰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떨어져가는 신라군의 사기를 높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도화선이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이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인입니다. 프랑스 동부 지역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잔 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백년 전쟁에 참전하여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왕세자였던 샤를 7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시민들에게 사로잡혀 현상금과 맞바꾸어 잉글랜드 측에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잉글랜드는 잔 다르크를 재판장에 세워 반역과 이단의 혐의를 씌운 후에 말뚝에 묶어 화형에 처하였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19세였습니다.
다음은 잔 다르크가 자신을 기다리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보낸 편지입니다.

“여러분은 머지않아 도시가 잉글랜드 군에게 포위될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을 저에게 편지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적군과 마주치는 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적이 먼저 공격해 오면 성문을 굳게 닫고 제가 올 때까지 안심하고 기다려 주십시오. 설사 도시가 포위되더라도 반드시 적들을 격퇴하여 도시를 해방시킬 것입니다. 오늘 쉴리에서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만, 이 편지가 적의 수중에 들어갈까 염려되어 이만 줄입니다.”
– 1430년 3월 16일 잔 다르크 올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아시나요?
자신을 희생하면서 노동자의 삶을 대변했던, 노동자 인권을 위해 싸운 진정한 아름다운 청년이지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최저임금제도 정책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최근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혹시나 해고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근로기준법 같은 것은 생각조차도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지요.
청년 전태일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독학으로 공부하며 억울함과 부당함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생각을 갖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고, 뒤늦게라도 근로 환경이 개선되는데 큰 역할을 했답니다.
전태일의 일화를 살펴볼까요?

“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오십원으론 어림도 없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 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생과 집을 나와 하숙을 구하고 일을 시작해야하는데 하루 일당으로는 하숙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그래도 구두닦이와 껌팔이를 해가며 하숙비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악착같이 일을 하며 지냅니다.

요즘 조금만 힘들어도 하지 않으려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관심조차도 갖지 않는 청소년들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지요?

사랑하는 친우(親友)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18] 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은 비록 자신이 혜택을 누리지는 못할지라도 세상 어느 누구라도 부당함과 불이익을 당하며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남기고 분신을 합니다.

무엇이 청년 전태일에게 이런 선택을 하게 했을까요?

글 | 공일영 |
現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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