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열전>원자탄을 훔친 사나이(下)

푹스는 ‘튜브 합금’ 프로젝트가 원폭 개발 계획이라는 사실을 곧 알아차렸다. 또 영국 정부 당국이 ‘튜브 합금’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위장 명까지 붙이면서까지 이를 철저히 감추려고 한다는 것도 간파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던 과학적 난관을 극복하고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것도 눈치 챘다. 푹스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히틀러에 맞선 같은 연합국 소련에 대해서는 철저히 원폭 개발 계획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계획의 산실 로스알라모스 연구소 전경>

미국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계획의 산실 로스알라모스 연구소 전경<<위키피디아 제공>>

이 폭탄 개발 정보를 소련에 넘기면 전세를 역전시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푹스는 본격적으로 관련 정보 수집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푹스가 먼저 접촉한 사람은 루스 쿠친스키라는 여성 작가였다. 독일 태생으로 영국 남성과 결혼한 그는 사실상 소련군 정보국(GRU) 소속 비밀 공작원이었다.

런던정경대학(LSE) 교수인 유르겐 쿠친스키의 여동생이기도 한 루스는 이미 중국과 일본 등에서 활약한 노련한 공작원이었다. 푹스는 두 남매를 GRU 소속으로 영국주재 소련대사관의 육군 무관 보좌인 시몬 다비도비치 소령에게 소개했다.

푹스는 프로젝트 관련 서류들을 빼돌려 마이크로필름으로 찍고 자신의 과학적 견해까지 곁들이는 방법으로 관련 정보를 넘겼다. 소련을 이를 통해 미·영의 원자탄 개발 사실을 간파하고 원자탄 개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확실하게 입수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공작에 착수했다.
GRU가 주도한 이 공작의 핵심은 역시 푹스였다.

‘맨해튼 계획’ 참가 위해 미국행

1943년 말 푹스는 ‘사부’격인 파이어스 교수 부부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계획’의 하나로 우라늄 농축작업에 필요한 기체 확산(gaseous diffusion)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미국행과 함께 푹스에 대한 접촉과 관리 책임은 GRU에서 옛 소련의 비밀경찰인 국가안전인민위원회(NKGB) 뉴욕 지부로 이관됐다. NKGB는 해리 골드라는 공작관을 통해 푹스에 대한 동향 감시와 함께 관련 정보를 건네받고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푹스가 맨해튼 계획의 핵심정보에 접근하게 된 것은 1944년 8월부터다. 맨해튼 계획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스연구소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 연구소의 이론물리학부 소속 연구원으로 발령받은 푹스는 플루토늄탄 폭탄의 자체 핵폭발(내파) 문제에 주력했다. 실력이 출중한 그는 당연히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보안망은 만만치 않았다. 독일 등 적국 공작원들의 침투 기도를 방지하기 위해 연방수사국(FBI)이 철통 같은 보안과 방첩 체계를 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푹스에게 이런 방첩망도 소용이 없었다. 푹스는 거의 모든 계획에 접근할 수 있는 보안인가증을 갖췄기 때문이다.

미국 원폭 기본 설계도 건넨 푹스…수폭 제조 기초 이론도 제공

소련은 맨해튼 계획 설계도를 입수하기 위해 미국 내에 3중 첩보망을 구축해 운영했다. 하나는 시카고대학을 중심으로 한 공작이었다. 시카고대학에는 엔리코 페르미 박사를 중심으로 세계 최초로 통제된 핵반응 실험을 수행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캘리포니아대학 내 방사능 실험실에 대한 감시와 정보 수집 활동망이었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의 첨단 산업기술을 빼돌리려고 오래전부터 암약하던 22명의 미국인 공산주의자의 조직이었다.

푹스처럼 소련에 미국 원폭 관련 정보를  넘긴 로젠버그 부부>

푹스처럼 소련에 미국 원폭 관련 정보를넘긴 로젠버그 부부<<위키피디아 제공>>

그러나 푹스와의 접촉은 사실상 NKGB의 해리 골드의 몫이었다. 푹스는 골드를 통해 다양한 극비 정보를 넘기는 데 성공했다. 일본이 원폭으로 미국에 항복한 데 자극받은 소련도 원자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푹스는 노리스 브래드베리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의 요구로 계속 근무했다. 태평양 비키니섬에서 이뤄지는 핵실험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원이었기 때문이다.
원자탄 개발을 본격적으로 착수한 영국은 푹스의 귀국을 독촉했다. 이에 영국으로 돌아온 푹스는 하웰의 원자력에너지연구소의 이론물리학과장으로 임명됐다. 이 기간 그는 미국이 개발한 원폭의 기본 설계도를 건넸다. 또 원폭보다 수백 배 이상의 위력을 내는 수소폭탄의 제조에 필요한 기본 이론 정보도 넘겼다.

푹스 행각 밝힌 ‘베노나 계획’… 동독으로 이주

전쟁 기간 레이더 기술 절도 사건을 수사하던 FBI는 소련이 미국 내에서 중요한 간첩조직을 운영 중이라는 사실도 파악했다. 이 와중에 소련 첩보조직에서 일하던 엘리자베스 벤틀리가 FBI에 자수했다.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낀 벤틀리는 자신이 미국 내 여러 첩보조직을 관리하는 GRU 거점장의 보좌관으로 일한다면서, 조직 중에는 미국의 산업기술을 훔쳐내는 거대 조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푹스의 정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영국의 방첩기구 MI5가 중심이 돼 미국과 함께 수행하던 ‘베노나 계획’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의 정보기관들이 취급한 방대한 무선통신문을 모두 해독하는 것이 핵심인 이 계획에 따라 푹스의 엄청난 간첩 행위가 드러났다. 푹스는 곧 MI5에 체포돼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베노나 계획에 따라 로스앨러모스연구소에서 기사로 일하는 동생을 통해 원폭 관련 정보를 입수해 소련 측에 넘긴 줄리어스 로젠버그 부부도 체포됐다. 부부는 간첩죄를 인정받아 전기의자로 사형됐다. 푹스는 신문 과정에서 자신의 공작관인 해리 골드에 대해서도 자백했다. 해리 골드 역시 30년형을 선고받았다.

푹스는 자신의 자백으로 여러 사람이 파멸에 처한 데 괴로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1950년 간첩죄로 기소돼 1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영국 국적도 박탈당했다.
그는 9년 동안 복역 후 1959년 석방돼 동독행을 선택했다. 동독에서 그는 로젠도르프 핵연구소의 부소장으로 근무하다 1988년 숨졌다.
푹스가 원폭 설계도를 넘기지 않았다면 소련은 미국보다 10년 이상 뒤늦게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또 그가 넘긴 수폭 기초 이론도 소련이 미국보다 불과 3년 뒤인 1955년 11월에 최초의 수폭 실험에 성공하게 된 토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도 있다.
<참고문헌>

*Ernest Volkmannn, Spies: The Secret Agents Who Changed the Course of History(1994)
*Jeffrey Richelson, A Century of Spies(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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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 이사장은 다음 주 초 재외동포재단의 9대 이사장으로 취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내정자는 미국에 거주 중이지만 곧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재외동포 출신이 재단 수장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단 이사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87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1988년 미주한국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미국 소수계 언론 연합인 뉴아메리카미디어 부장 등을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 문제를 다룬 30여 회의 시리즈를 미주한국일보에 게재해, 2001년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비롯해 AP통신 기자상, 미국 내 비영어권미디어 최초 소수계 기자상을 받았고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제변호인단을 조직해 일본 정부와 일본회사를 상대로 1999∼2006년 대일소송을 이끌기도 했다. 미주 한인 2세로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의 영웅이자 인도주의자로 이름을 떨친 고 김영옥 대령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9년 LA 공립학교의 ‘김영옥중학교’ 명명을 주도했고, UC리버사이드대 부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와 국내 김영옥평화센터 설립에 앞장섰다. 김영옥의 전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과 ‘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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