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재외동포 문인에게 거는 노벨상 기대

올해의 노벨 문학상이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은 우리나라 문단을 또다시 우울하게 했다. 노벨 문학상이 문화 국력을 재는 척도가 아니고, 문학 작품의 우열을 올림픽처럼 가릴 수 없지만, 수상자가 다름 아닌 일본인(계)이라는 사실은 100년 넘도록 한 명의 수상자도 내지 못한 한국인의 열패감을 더욱 자극한다. 부족한 번역 인프라와 척박한 독서 풍토 등 우리 문단의 해묵은 숙제도 새삼 거론되고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영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다.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영어로 작품을 써왔지만 원폭 투하 이후 일본의 풍경을 묘사한 ‘창백한 언덕풍경’이나 일제에 가담해 선동적 그림을 그린 노화가의 회고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등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소설을 여러 편 발표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프랑스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 폴란드 태생의 미국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 중국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 가오싱젠 등도 이민자로서 노벨상 수상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면 한국계 문인 가운데서도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명됐거나 노벨상감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재외동포 가운데 가장 먼저 세계 문단에 이름을 알린 인물은 강용흘(1903∼1972)이다. 그가 1931년 미국 뉴욕에서 발간한 장편 ‘The Grass Roof’(草堂·초당)는 한국인이 쓴 영문소설의 효시로 꼽힌다. 그에 앞서 독립운동가 서재필과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이 각각 1921년 ‘Hansu’s Journey’(한수의 여행)와 1928년 ‘When I Was a Boy in Korea’(내가 어렸을 때)를 미국에서 발표했지만 문학적 요소가 부족한 회고록이어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함경남도 홍원에서 태어난 강용흘은 함남 함흥 영생중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상경해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수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해 12월 캐나다 선교사를 따라 캐나다로 건너간 뒤 미국 보스턴대에서 의학, 하버드대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뉴욕대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하고 틈틈이 동양 시를 영어로 번역하다가 1930년 ‘아시아 매거진’ 1월호에 ‘초당’의 연재를 시작한 뒤 이듬해 책으로 펴냈다. ‘초당’은 강용흘의 출생부터 도미까지의 삶을 담은 자전적 소설로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와 한국인의 소박한 삶이 일제의 침략 속에서 어떻게 황폐해졌는지를 폭로했다. 한국의 다양한 풍습과 함께 ‘황조가’, ‘어부사시사’ 등 한국의 옛 시와 현대시 90편을 소개하기도 했다. 뉴욕헤럴드트리뷴은 “가장 가치 있는 인간 기록”이라고 극찬하는가 하면 뉴리퍼블릭은 “잘못 알려진 한국 역사를 바로잡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치켜세우는 등 현지 유수 언론의 호평이 줄을 이었다. ‘초당’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체코 등 10여 개국에서 번역 출판됐고 ‘금세기의 책’에도 뽑혔다.
그 뒤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치며 ‘재미동포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 강용흘과 비슷한 길을 걸으며 독일 문단에 우뚝 선 인물이 이미륵(본명 이의경, 1899∼1950)이다. 황해도 해주 태생의 이미륵은 1917년 경성의전에 입학했다가 3·1운동에 가담해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자 1920년 독일로 망명했다. 뮌헨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해 1928년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소설가로 활동하며 뮌헨대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했다. 1934년 아시아인 최초로 구겐하임 창작기금을 받아 유럽 여행에 나선 강용흘이 이미륵을 만나 자신처럼 자전적 소설을 쓸 것을 권유했는데, 그 결과 1946년 탄생한 작품이 ‘Der Yalu Fliesst’(압록강은 흐른다)이다. 이 장편소설은 독일 교과서에 실렸고 영어와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가장 먼저 노벨 문학상 물망에 올랐던 한국계 작가는 김은국(1932∼2009)이다. 함흥에서 출생한 그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1947년 월남해 목포고를 졸업했다. 1950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1955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1962년 아이오와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때 발표한 작품을 1964년 개작해 펴낸 데뷔작이 ‘The Martyred’(순교자)다. 6·25 때 북한군 치하에서 순교하지 않고 살아남은 목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천착한 이 작품은 20주간 미국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는 등 평단의 찬사와 독자의 인기를 함께 누렸다. 5·16 군사정변을 다룬 ‘The Innocent’(죄 없는 사람)와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 ‘The Lost Names’(잃어버린 이름)도 그의 대표작이다.
1995년 장편소설 ‘Native Speaker’(영원한 이방인)를 출간해 헤밍웨이문학상 등 6개 문학상을 휩쓸며 노벨상 단골 후보로 꼽혀온 재미동포 1.5세 이창래, 톨스토이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2세 아나톨리 김,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에 빛나는 재일작가 유미리, 한국으로도 활동 무대를 넓힌 조선족 소설가 허련순 등도 한민족의 뿌리와 이주민의 정체성을 거주국 언어로 표현해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인류 보편적 감성에 좀 더 가깝게 다가서 있고 번역의 장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재외동포 문인 중에서 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먼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재외동포라고 해서 이주민 정체성을 담거나 디아스포라(이산)를 소재로 한 작품만 쓰라는 법은 없다. 이민자들도 세대가 내려갈수록 그에 관한 기억과 관심이 엷어져가고, 그들도 거주국에서 소수민족 작가로 분류되기보다 주류 문단에 속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도 비록 한국어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한국 문학의 외연을 넓히고 풍부하게 만드는 소중한 자산이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이시구로의 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우리도 이를 계기로 재외동포 문학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보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Hinh-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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