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숙의 시각> 코리아 디스카운트

12월 12일 정치, 경제 불확실성을 반영해 코스피가 하락했다.[연합뉴스TV 제공]

12월 12일 정치, 경제 불확실성을 반영해 코스피가 하락했다.[연합뉴스TV 제공]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한국 할인, 한국 저평가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기업이나 상품이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됨을 일컫는다.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닥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했을 때 극에 달했다. 요즘도 한국 기업의 주가가 내재 가치나 비슷한 수준의 외국 기업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 쓰이는 불명예스러운 용어다.

최근 이 말이 국내외 언론, 경제계에 부쩍 자주 등장하고 있다. 천문학적 액수의 분식회계로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 신뢰를 무너뜨린 대우조선해양 사태에서 다시 도질 조짐을 보이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정부와 대표 기업들의 시스템 부재와 허점을 드러낸 ‘최순실 게이트’로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염려를 낳고 있다.

한국이 IMF 위기를 조기 극복하고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에 ‘한류’ 바람을 일으키자, 코리아 프리미엄(Korean Premium)이 유행한 적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반대 개념인 코리아 프리미엄은 한국 기업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고, 외국인들이 같은 값이면 한국산을 선택하는 등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에 따른 한국 상품 선호현상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재도래로 코리아 프리미엄은 ‘반짝 현상’에 그칠 것인가. (코리아 프리미엄은 한국금융기관이 해외에서 자금을 빌릴 때 붙는 가산금리를 뜻하기도 한다)

한국 기업의 가치나 주가가 저평가되는 첫 번째 요인은 기업 분식회계, 즉 회계 부정이다. 부실을 감추는 ‘화장’은 기업 재무 상황이나 경영 성과를 부풀린다. 많은 외국 투자자는 한국 기업에 분식회계가 일상화돼 있다고 보고 회계 보고서에 기재된 자산, 이익 등을 일정 정도 할인해 평가한다. 국내 투자자도 기업 결산 보고서를 믿고 주식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부실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우조선은 분식회계 규모가 최근 2~3년 동안에만 5조5천억 원에 이른다는 의혹을 산다.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미국 회계제도 개혁의 계기가 됐던 에너지 회사 엔론의 분식회계 규모가 15억 달러, 한화로 1조7천억 원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16년 국제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회계 및 감사 적절성’ 항목에서 61개국 중 61위로 꼴찌였다. 그만큼 한국 기업의 회계는 신뢰를 잃었다.

최순실 게이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악몽을 다시 호출한 결정적 계기였다. 최 씨 일당이 설립한 재단에 삼성, 현대차, SK, 롯데 등 내로라하는 재벌 그룹들이 몇십억, 몇백억 원을 기부한 것이 드러났다. 재벌들은 정권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며 모금의 강제성을 하소연했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재벌들이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았을 리 없고, 정경유착이 아니라고 하면 억지다. 일부 재벌은 이 기부 외에도 최 씨에게 추가로 수십억 원을 지원하거나, 돈을 건넸다가 되돌려 받았다. 이 돈들은 이사회 등의 적절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서 지급되고 정상적으로 회계 처리됐을까. 뇌물·부패 경영은 기업을 지속 가능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에 기업 가치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한국 대기업 집단은 후진적 지배구조와 총수 독단 경영으로 기업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 재벌 총수들이 5%도 안 되는 일가 지분으로 그룹을 좌지우지하는 ‘황제 경영’을 외국 투자자들은 경영 불안 요소로 간주한다. 실제로 경영 전문성이 부족한 총수들의 전횡이 기업을 위기에 몰아넣은 사례는 적지 않다. 복잡한 계열사 순환출자를 통한 총수들의 기업 지배는 편법, 즉 법으로 보장된 부정과 다르지 않다는 게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국 경제와 기업의 신인도에 치명타를 가한 것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한국 정치 리스크다. 봉건적 정치 리더십과 허약한 관료 체제는 세계에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한계를 드러내고, 지속적인 경제 발전 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최대의 리스크는 언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지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 후진성이라는 그간의 우려가 사실로 입증됐다. 청와대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지난 11월 한 달 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1조 원 넘게 순매도하면서, 반년 만에 ‘팔자 코리아’ 흐름을 형성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시화다. 무디스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따른 정치 공백이 한국의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노무라금융투자는 “박 대통령의 불법적인 영향력 행사와 관련한 정치 추문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또 재벌 개혁이 이루어지면 코스피가 3,000으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해, 재벌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IMF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연간 1조5천억~2조 달러(한화 1천700조~2천300조 원)의 뇌물이 오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 정도에 해당한다. 부패 인식 개선만으로도 정부 세수가 GDP 대비 0.8%포인트 늘어난다고 한다. 사회가 깨끗해졌다고 생각되면 국민의 납세 의욕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여 년 전 기업은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비판했다. 한국 대표 재벌을 이끌었던 이 회장의 발언에 아이러니가 없지 않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실은 아직 유효하다. 정치와 재벌이 한국의 가치를 갉아먹지 않는 ‘에누리 없는 한국’ ‘일류 한국’은 신기루인가.

현경숙 | 연합뉴스 논설위원 |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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