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취업 1세기

1902년 황성신문에 이런 광고가 실렸다. ‘하와이. 기후는 따사롭고 극심한 더위가 없다. 월급은 미화(美貨) 15달러, 매일 열 시간 일하고 일요일은 휴식.’ 그해 말부터 2~3년 조선인 7200여 명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제물포항에서 배를 탔다. 비슷한 시기 1000여 명은 멕시코로 이주해 ‘애니깽’ 농장에 취업했다. 이들은 인종차별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1960~1970년대 1만여 명의 간호사와 7900여 명의 광부가 서독에 파견돼 일했다. 광부들은 지하 1000~3000m 막장에서 일하며 월급 반 이상을 고국에 보냈다. 간호사는 알코올 거즈로 시체 닦는 일부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동 건설붐 때는 한 해 17만명이 열사(熱砂) 땅에서 일하며 ‘오일 머니’를 벌었다. 이들이 고국에 보낸 돈이 대한민국 근대화·산업화의 소중한 밀알이 됐다.
이제 더 이상 먹고 살아남기 위해, 또는 나라의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 나가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올해 청년 해외 취업자 수가 3295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65% 늘어난 것으로 그제 밝혀졌다. 해외 취업자 평균 연봉은 2645만원이며, 연봉 3500만원 이상을 받는 비율이 15%였다. 진출 국가도 미국, 일본, 싱가포르, 중국 등 67개국에 이른다. 멀리 남미 베네수엘라부터 카스피해 연안 아제르바이잔까지 다양했다.
젊은이 중엔 진취적인 기상을 갖고 떠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최악의 국내 취업난과 불합리한 채용 관행 때문에 해외로 눈 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의 한 국립대를 나온 청년은 140개 국내 기업에 문을 두드렸다가 실패한 후 일본 한 호텔에 견습사원으로 입사했다고 했다. 일본 지방정부에서 국제 담당 공무원으로, 아랍에미리트 철강 회사 재무팀장으로, 쿠바에서 여행 사업을 하는 젊은이들은 소위 ‘취업 족쇄’(학벌·성별·스펙)를 해외에서 깨고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청년들에게 “한국에만 있지 말고 해외로 시야를 넓히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의 수긍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국내 현실을 덮으려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는 “앞으로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직업을 따라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잡노마드(job nomad)’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경을 넘어 취업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해외로 나간 청년들이 좀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현지에서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 한다. [만물상.안석배]

Leave a Reply

Be the First to Comment!

Notify of
avatar

wpDiscu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