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활자 3천267만자… 옛 인쇄기법 되살렸습니다”

파주 출판도시에 활판인쇄박물관 개관

활판인쇄박물관 보유 활자 [활판인쇄박물관 제공]

활판인쇄박물관 보유 활자 [활판인쇄박물관 제공]

“우리나라가 활판인쇄 종주국인데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활판인쇄 고유의 문화를 되살려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활자를 하나하나 조합하는 활판인쇄 방식으로 책을 제작하고 활자와 인쇄장비를 전시하는 활판인쇄박물관이 29일 파주 출판도시에 문을 열었다. 문학 계간지‘아시아’주간인 방현석 작가를 비롯한 문인과 출판·인쇄인들이 힘을 모은 산물이다.
활판인쇄박물관은 한글·알파벳의 명조·고딕체부터 일본어·한자까지 망라해 국내 최다인 3천267만8천자의 납 활자와 주조기를 보유했다. 무게만 17t에 달하는 이들 활자는 1960년대부터 전국 인쇄소에 활자를 공급하던 전주의 활자공장‘제일활자’에서 넘겨받은 것이다.
활판인쇄기와 재단기 등은 45년 전통의 대구‘봉진인쇄소’에서 옮겨왔다. 인쇄물을 접고 묶는 접지기, 페이지를 차례로 맞추는 정합기 등 제본에 필요한 장비들은 충무로와 부산 등 곳곳에서 공수했다.

인쇄에 쓸 전통 한지를 만드는‘조지소’(造紙所)도 갖췄다. 조지소는 원래 조선 태조가 1415년 설립한 국립 종이제조공장의 명칭이다.

활자공장·인쇄소·제본소·종이공장 등 활판인쇄 방식의 책 제작에 필요한 네 공정을 모두 구비한 셈이다. 박물관 설립을 주도한 방 작가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고물 기계를 가져다놓은 박물관이 아니라 기계들이 모두 작동된다. 전 과정을 직접 시연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한국 전통의 활판인쇄 장비·기술과 인쇄물을 수집하고 책을 직접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다. 인근에 마련된 활판인쇄학교와 함께 견학·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박물관 고문을 맡은 고은 시인은 관람객이 직접 시집을 만들 수 있도록 자신의 작품들을 제공했다. 관람객은 손수 책을 제작하고 자신의 이름을 책 표지에 새겨볼 수 있다.

akr20161129109900005_06_i-1활판인쇄 장비를 전시하거나 관련 기술을 전수하는 곳은 몇 군데 있지만 전시한 장비가 모두 힘차게 돌아가도록 정비된 시설로는 유일하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방 작가는“단순히 기술을 복원하는 게 아니라 활자문화와 문장에 대한 감각·기억을 되살리는 게 주된 목적”이라고 말했다.

전통 활판인쇄 방식으로 제작한 시선집 ‘시를 새기다’ [활판인쇄박물관 제공]

전통 활판인쇄 방식으로 제작한 시선집 ‘시를 새기다’ [활판인쇄박물관 제공]

박물관은 활판인쇄 방식으로 제작한 첫 번째 책으로 윤동주·백석·이상 등 한국 대표 시인들의 작품 16편을 영역과 함께 실은‘시를 새기다’를 출간했다. 한정판 300부를 제작하려고 4명이 한 달 동안 철야로 작업했다고 한다.

 ‘ 시를 새기다’를 설명하는 방현석 작가 [활판인쇄박물관 제공]

‘시를 새기다’를 설명하는 방현석 작가 [활판인쇄박물관 제공]

방 작가는 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옛 인쇄방법을 되살리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요즘 책들은 수명이 짧잖아요. 한번 만들면 평생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속도에 굴복하지 않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게 불가능할까요. 속도를 쫓아가지 않기로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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