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기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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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기자회

학생기자단 소식

지난 9월 1일 2014년 ‘국경없는기자회’ 4기 기자단이 결성되었습니다. 4기 기자단은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10, 11학년 학생과 SSIS, BIS 학생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대학에 재학 중인 졸업생들도 고문 자격으로 참여하고자 합니다.

학생기자들은 ‘새로움’이란 기치 아래 베트남ㆍ캄보디아ㆍ라오스ㆍ미얀마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시사와 상식을 제공하고, 청소년들끼리의 학습 네트웍을 구성하고자 합니다.

라이프프라자의 도움으로 학생들의 기사는 연합통신과 헤리티지를 통하여 전세계 청소년들에게 본 학생기자들의 활동을 널리 알릴 전망입니다. 특히 라이프프라자 홈페이지(http://www.vietnamlife.co.kr/)를 방문하시어 상단메뉴<칼럼/기고>란을 클릭하면 학생기자들의 생생한 뉴스를 접해 볼 수 있습니다.

(문의: 지도교사-장석만 ccaesar21@hanmail.net

기자회 회장- 한유주 hoppingsally@naver.com)

 

특집‘명량 신드롬’의 원인과 과제

2014년 9월 26일 기자단 학생들은 호치민시에서 상영되었던 영화 ‘명량’이 흥행하게 되었던 원인과 ‘명량신드롬’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는 무엇인가를 토의하였습니다. 이하 내용은 기자단 토론 내용을 요약한 것이며, 일부 내용은 기자단의 사견임을 전제로 합니다.

 

(지도교사) 먼저 학생들의 영화 감상평을 들어 보겠습니다.

(김은빈) 솔직히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소재와 영화 스토리는 훌륭했지만 사람들 입을 통해 전달되는 소문과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조인선)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미술을 전공하려는 저로서는 사실성을 강조하며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측면이 뛰어났다고 봅니다.

(김지수) 책에서만 보았던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내용을 영상으로 보며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심규원)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자료인데 제가 이순신 장군과 14세기 역사에 대하여 너무 무지했다라 생각합니다. 나라를 위해 싸웠던 조상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정지섭) 저도 제가 너무 역사를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영화를 보고 자료를 찾아 보고 나서야 ‘아 이거였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에 사는 청소년들에게 ‘명량’은 영화가 아니라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내용은 지면 관계상 지도교사와 기자학생들의 토의한 내용을 요약하였습니다.

 

(지도교사) 현재까지의 동원 관객 수는 ‘명량’이 1,700만명이다. 가히 ‘명량신드롬’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데, 먼저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가 무엇일까?

(기자단 공식입장) ‘명량’의 흥행 이유는 크게 5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 번째 요인은 2014년이라는 시대환경이다. 세월호의 끔찍한 충격과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방식 문제점ㆍ취업난ㆍ학교 폭력ㆍ군대폭행사건ㆍ세금증세 논란ㆍ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혼란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인들은 충무공과 같은 도덕성과 위기대응 능력에 다수 한국인들이 갈증을 느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두려움을 용기로 만드는 충무공과 조선 수군의 노력 속에서 삶의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요인은 이 영화가 한국인에게 친숙한 충무공을 소재로 하여 관객들에게 이질감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 충무공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요인은 많은 제작비를 들여서 만든 영화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도 적절하게 오락성을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섯번째로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감독과 출연진이 의도하지는 않았을 수 있지만 이 영화가 왜란을 소재로 하여 한국인들의 집단무의식 속 애국심을 강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상과 같은 이유로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였다는 것이다. 부모님 세대는 현실의 머리 아픈 문제들을 대승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역사 시간에 배운 내용을 확인하고 롤모데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애국심만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청소년들에게 역사 이야기는 너무 무거웠다’ 는 등의 다양한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겠다.

 

(지도교사) 한국 사회에 불었던 ‘명량신드롬’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무엇일까요?

(기자단공식입장) 앞에서 살펴본 원인 분석에서 이미 과제도 추출할 수 있겠다. 우선 한국 사회의 지도층들이 충무공과 같은 엄격한 도덕성과 위기관리 능력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솔선하여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극중 인물인 배설의 후손이 제기한 역사왜곡 문제는 이 영화가 ‘허구’를 가미한 영화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외국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한국의 역사에 대하여 많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 한류의 주인공인 한국인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에 무지한 것은 어떤 말을 하여도 변명으로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식도 중요하다.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해당하는 역사의식의 문제이다. 최소한 16세기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것은 ‘일본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었던 것’이라 말하는 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지도교사) 이상에서 영화 ‘명량’을 가지고 토의를 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자회회장이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유주) 이 영화를 통하여 해외에 거주하는 우리 청소년들이 한국의 역사를 보다 친숙하게, 또 역사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한류와 관련하여 한국 영화가 오락성이 짙고 자극적이지 않아도 흥행을 할 수있다는 것을 증명한 좋은 사례이며 문화와 역사 중심의 한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생각합니다.

또한 이로써 역사 중심의 한류 문화 보급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당연히 영화를 꼭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충무공처럼 살수는 없잖아?’ ‘나라보다는 나 개인이 소중하잖아?’라는 식의 생각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우리 청소년들이 진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역사에 무지함을 개인의 선택이라 변명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어쩌면 역사 앞에서 비겁한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역사칼럼피케티와 맹자(1)

토마피케티는 파리 경제학교 사회과학고등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고,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을 편찬하였다.

피케티가 9월 18일 한국을 방문하여 나흘 일정으로 체류하면서 비로소 한국 경제학계에서도 피케티 신드롬에 대하여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수 주류 경제학자들은 ‘피케티가 분석한 통계상의 오류’ ‘최고 80%에 달하는 부유세 세금 부담률’ ‘경제 성장 동력을 멈추게 하는 위험한 주장’ ‘한국의 현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란 말이 언론을 통하여 집중 부각되었다.

과연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피케티신드롬은 한국 사회, 호치민 한국 교민 사회와는 상관이 없을까?

사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나 케인즈 학파의 입장에서 피케피의 주장은 사실 새로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피케티의 연구방법론 및 글로벌 자본세에 대한 각종 비판이 난무하지만 ‘왜 이 시점에서 피케티의 주장이 논쟁이 뜨거운가?’에 대한 역사적 환경에 대한 분석은 필요하다.

21세기 피케티신드롬을 분석하며 다시 ‘맹자(孟子)’를 보게 되었다. 맹자는 당시 지배층들을 향하여 ‘부자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비록 재산이 없어도 소신과 원칙을 지키고 살 수 있지만

(無恒産有恒心) 일반 평민들은 반드시 일정한 재산이 있어야 소신을 지키고 살 수 있다(有恒産有恒心)을 주장하였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빈부격차가 컸던 모양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전쟁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일반 농민들은 국가에 과도한 세금을 납부해야 했고, 성인남자들은 군역을 치루러 전쟁터에 가야 했다.

귀족들은 그 틈을 이용하여 농민의 땅을 헐값에 사들이거나, 권력을 이용하여 땅을 빼앗아 대토지를 소유하였다. 맹자는 사회 불평등의 근원이 토지의 양극화라 보았다. 그래서 주나라의 정전제(井田制)실시를 주장하였다. 정전제는 기본적으로 ‘모든 토지는 국가(왕)의 소유이다’라는 왕토사상에 기반하여 일반 백성들에게 땅을 고르게 나누어 주어 먹고 살게 하고 중앙의 땅은 국가의 공유지로 백성들이 노동을 하여 생산한 것을 세금으로 납부하게 하였던 제도이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자’라 주장한다면 대단히 급진적인 주장일 것이며 자칫 이념 논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현단계에서 토지국유화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실현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다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의 근원인 상해 임시정부가 1941년 발표한 <건국강령>을 보면 ‘토지를 국유로 한다’는 헌법 정신만은 참조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최근 시진핑의<小康社會論>, 일부 선진국들이 국가 공유지를 활용하여 토지 양극화를 줄이려는 노력 등도 참조할 필요가 있겠다.

피케티와 맹자는 ‘재산권 행사의 자유’와 더불어 ‘평등’을 중시하였다. 2014년과 BC 4c 라는 시공간을 뛰어 넘어 ‘소득의 불평등이 사회의 불평등으로 연계되는 것과 ‘빈부의 대물림’현상을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문제제기는 한국 사회에도 유효할 것이다. 구체적 해결방안으로 피케티는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평등을 추구해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맹자는 사회 지도층이 도덕적 의무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왕도정치를 주장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장석만(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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