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와 문화 선진국인 프랑스에서 2003년 8월 반세기 만에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발생해 약 1만5천 명이 숨졌다. 사망자 중 약 70%가 가족이나 이웃이 돌보지 못한 75세 이상 고령자였고, 파리에서만 노인 900여 명이 숨졌다. 사계절 기후가 온화한 편인 프랑스는 폭염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에어컨을 설치한 집이 거의 없었고 국민은 높은 기온에 익숙하지 않아 사망자가 많았다.
보통 수온이 내려가 해수욕하기도 어렵다고 하는 8월 15일이 지났는데도 한반도에서는 일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1일부터 이달 17일까지 서울에서 섭씨 33도 이상의 폭염이 발생한 날은 18일이다. 이는 1994년의 29일 이후 가장 많은 날이다. 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지역의 평균 기온은 29.7도까지 올라갔다. 1907년 10월 서울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후 109년 만의 최고치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얼마나 될까.

질병관리본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온열질환자 감시체계가 가동된 5월 23일부터 이달 14일까지 환자 1천800명이 발생했고, 이 중 16명이 사망했다. 그렇다면 올해의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이 정도뿐일까. 온열질환이란 무더위에 장시간 노출돼 체온조절 중추에 이상이 생겨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를 말한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올라가 숨졌을 경우다.
심장병, 고혈압, 호흡기 질환 등 지병을 가진 노약자가 무더위를 이기지 못해 숨지더라도 체온이 40도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면 온열질환 사망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더라도 환자가 숨진 이후에 발견됐다면, 사망 전 체온 측정이 불가능하므로 온열질환 사망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올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정부가 발표하는 온열질환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발생했던 1994년 무더위로 인한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추정 가능하다. 1994년 7, 8월 두 달 동안 서울에서는 5천742명이 숨졌다. 그 전해인 1993년 같은 기간에는 4천754명, 다음 해인 1995년 같은 기간에는 4천953명이 사망했다. 1994년 7, 8월 서울에서는 예년과 비교할 때 약 890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추가 사망자 중 상당수가 폭염으로 인해 숨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1994년 서울 외 지역에서 추가 사망자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통계는 없다는 게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2003년 8월 프랑스에 폭염이 내습했을 때 정부는 이 추가 사망자 개념을 적용해 폭염 사망자 규모를 추정했다. 폭염 기간에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원인이 더위 때문인지, 다른 질병 때문인지 시신을 부검하지 않으면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다. 2003년 프랑스는 사망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폭염 기간의 사망자와 같은 기간 예년 평균 사망자를 비교해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 규모를 추정했다.
우리도 온열질환 사망자만 집계할 것이 아니라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 규모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노약자, 만성질환자 등의 폭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한낮 폭염과 밤잠을 설치게 하는 열대야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온열질환 사망자가 십여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놓고 폭염 인명 피해가 크지 않다며 안일하게 대처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십여 명뿐이라고 하면 이를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폭염 인명 피해는 또 다른 여름철 불청객인 홍수나 태풍으로 인한 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지난 12일 보건복지부는 국장급 이상 전 간부들이 폭염 대응 현장 점검을 위해 노숙인 시설을 방문하고 폭염 대처 요령을 홍보한다고 밝혔다. 폭염특보 지역이 전국적으로 넓어지면서 온열질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이고, 초가을까지 무더위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장·차관은 6월 5일부터 8월 5일까지 두 달 동안 각각 두 차례 무더위 쉼터 및 홀몸노인 가정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전국 6만4천 개 경로당에 냉방비로 월 5만 원을 지원했다. 이런 식의 대응이 폭염 사망자를 예방하거나 줄이는 효과를 발휘했을까.
정부는 올해 폭염 기간에 전국적으로 사망자가 예년과 비교해 얼마나 증가했는지 꼭 집계해 발표하기 바란다. 예년보다 사망자가 크게 늘어났다면, 그 원인은 폭염일 수 있다. 추가 사망자가 많다면 다음 폭염 기에는 이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1994년 7, 8월 서울의 추가 사망자가 890명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올해 전국적으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는 2003년 폭염으로 힘없는 노인 수천 명이 사회적 고립 속에 숨지자 박애와 연대를 자랑하는 자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며 국가적 수치이자 국제적 망신이라고 뼈아프게 반성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국은 경제규모가 세계 11위라며 자긍심을 갖자고 촉구하고‘함께 살아가는’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염 속에 노약자가 숨지도록 방치하는 사회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없다.
현경숙 | 연합뉴스 논설위원 |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