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가린 살인범, 걸음걸이는 못 가린다

보행 특성 토대로 동일인 여부 판명…의학 기법을 수사에 도입
“법보행 분석 전문가 협의체”경찰 수사 조력…CCTV 발달에 활용 가능성 커

2015년 4월 12일. 대구에서 윤모(29)씨가 실종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대구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윤씨는 4월 5일 오전 5시께 밤 근무를 끝내고 퇴근한 것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췄다.
윤씨와 15년지기 친구라는 박모(29)씨가 윤씨 친척과 함께 경찰에 신고서를 내고 간단한 조사를 받았다. 박씨는 윤씨가 평소 우울증세와 자살 충동을 보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그는 한때 윤씨와 같이 산 적도 있을 만큼‘절친’이라고도 했다.
실종신고 11일째인 4월 23일, 금호제1교 아래 금호강 둔치에서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는 주민의 신고가 대구 강북경찰서에 접수됐다. 시신은 부패가 심했고, 머리 부위에서 두개골 골절과 둔기로 17차례쯤 얻어맞은 흔적이 보였다.
누가 봐도 살인사건이었지만,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피해자의 휴대전화나 지갑 등 신원을 알려줄 만한 단서나 범행 도구는 없었다. 사방에 흩뿌려진 피해자 혈흔 외에 용의자를 추정할 DNA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피해자가 입었던 점퍼에 회사 이름이 적힌 것을 보고 수소문한 끝에 이 시신이 윤씨임을 확인했다. 그가 11일 전 실종신고된 사실도 파악됐다. 경찰은 회사 입구 쪽부터 차례차례 CCTV를 확인해 윤씨의 마지막 동선을 추적했다.
CCTV에는 4월 5일 새벽 윤씨가 회사를 빠져나온 직후 한 인물이 그와 동행하는 모습이 뚜렷이 찍혀 있었다. 함께 걷는 모습이 마치 친구인 듯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른 새벽에 이런 모습으로 함께 걸을 정도라면 매우 친한 사이임이 분명했다.
오전 5시 50분. 윤씨 시신이 발견된 금호제1교 인근 CCTV는 사건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함께 걷던 일행의 모습은 CCTV에서 보이지 않았다. 10분 후, 누군가가 범행 현장에서 혼자 걸어 나오더니 이내 사라졌다.
경찰은 윤씨와 동행한 인물을 용의자로 판단했다. 평소 윤씨와 가까웠던 면식범일 것이라는 추정도 내놨다. 그러나 CCTV에 찍힌 그의 모습에는 얼굴이 없었다. 묵직한 패딩을 입고 후드를 눌러 쓴 상태여서 얼굴을 식별하기란 불가능했다.
면식범 소행에 무게를 두고 주변인 수사가 시작됐다. 윤씨와 박씨를 모두 아는 친구는 여럿이었다. 그들을 용의선상에서 뺄 수는 없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분명한 친구 한 명을 먼저 참고인으로 불렀다.
경찰은 사건 당일 CCTV 영상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윤씨와 함께 걸어간 일행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확신에 찬 대답이 나왔다.“걸음걸이만 봐도 박○○이네요.”윤씨를 찾아달라며 실종신고한 바로 그 절친이라는 뜻이었다.
이어 다른 친구들도 차례로 조사를 받았다. 답은 한결같았다.
“딱 봐도 박○○이네요.”O자 다리에 팔(八)자걸음, 걸을 때 왼쪽 다리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독특한 걸음걸이에 마른 체형까지, 박씨임이 분명하다는 진술이었다.
박씨가 범인일지 모른다고 의심한 경찰은 그를 일단 참고인으로 부른 뒤 경찰서 안에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은밀하게 캠코더로 촬영했다. 경찰은 앞서 CCTV에 잡힌 용의자 영상과 이후 촬영한 박씨의 보행 영상을 경찰청으로 보냈다.
경찰청은 수사팀에서 넘겨받은 영상을 의학·공학·법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법보행 분석 전문가 협의체’에 분석 의뢰했다. 민간에서 활동하면서 경찰이 의뢰하면 영상에 나타난 걸음걸이를 분석해 동일 여부를 판단하는 이들이다.
협의체 분석 결과는 친구들의 진술과 용어만 다를 뿐 똑같았다. O자 다리를 뜻하는‘내반슬’, 팔자걸음을 의미하는 ‘외족지 보행’, 다리가 휘어지며 걷는 ‘원회전 보행’이 영상 속 인물에게서 모두 발견돼 동일 인물로 보인다는 판단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박씨가 윤씨에게 종신보험을 가입시켜 준 사실도 확인됐다. 특이하게도 윤씨가 일반상해로 사망하면 보험금 4억원이 박씨에게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었다. 박씨는 전부터 1억원가량 되는 빚을 진 상태였다.
경찰은 협의체가 회신한 분석 결과서와 다른 정황증거 등을 첨부해 박씨의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5월9일 경남 거창군에 있는 박씨 집에서 그를 체포했다. 윤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 16일 만이었다.
체포 직후 1차 피의자 신문에서 박씨는 범행을 자백했다. 이어 현장검증에서도 범행 당일 동선과 자신의 행동을 상세히 재연했다. 그러더니 이내 진술을 바꿔 혐의를 부인했다. 구속되고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진술은 여러 차례 번복됐다.
검찰에서도 계속 진술을 번복한 박씨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서 박씨는 자신이 사건 당일 거창에 있는 자신의 집에 있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이 증거로 내세운 걸음걸이 분석 결과도 우연히 용의자와 비슷할 뿐이라며 일축했다.
법정 공방은 치열했다. 검찰은 경찰에서 참고인으로 진술한 박씨와 윤씨 친구들을 증인으로 불렀다. CCTV 영상 속 걸음걸이를 분석한 의료인 2명도 출석시켰다. 이들은 모두 영상 속 용의자와 박씨를 동일인으로 지목했다.
그해 11월27일, 1심 판결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박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윤씨를 살해한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형을 내렸다. 재판부가 인정한 증거 목록에는 용의자와 박씨의 걸음걸이를 분석한 결과서가 포함됐다.
‘금호강 살인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 1심 판결은 걸음걸이 분석이 법정에서 유죄 증거로 인정된 국내 첫 사례였다. 박씨는 결백을 주장하며 항소했으나 2심 판단도 같았다. 현재 박씨는 수감 생활을 하며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O다리’,‘팔자걸음’이 범인 특정 단서로…의학과 수사의 만남
c0a8ca3d0000015423c7842e000a5fad_p1걸음걸이 분석(gait analysis)은 의학계에서는 전혀 새삼스러운 기법이 아니다. 신경이나 근육, 뼈 등에 이상이 있으면 비정상적 걸음걸이가 나타난다.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 치료법을 찾으려면 걸음걸이 특성 분석이 필요하다.
걸음걸이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패턴이 발견된다면 그 양상을 살펴 원인이 존재하는 부위를 찾을 수 있다. 근육이 늘 긴장 상태이거나 경련 또는 이완이 발생하는지, 말단 신경에 문제가 있는지, 특정 관절이 틀어지는 등 현상이 있는지를 본다.
사람의 걸음걸이 특성을 찾는 기준은 여러 가지다. 금호강 살인사건 피의자 박씨와 같은 팔자걸음(외족지 보행), 반대로 발끝이 안쪽을 향하는 안짱걸음(내족지 보행), 무릎이 바깥쪽으로 휜‘X다리’, 안쪽으로 휜‘O다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고 발가락 끝만으로 걷는 ‘첨족보행’, 근육이나 신경 이상으로 발목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족하수’, 뇌성마비 환자에게서 주로 보이는‘가위보행’, 상체가 좌우로 흔들리는‘오리보행’ 등이 있다.
걸음걸이의 대칭/비대칭 여부나 보폭, 걸을 때 두 다리를 벌린 폭 등도 보행 특성을 파악하는 기준이 된다. 두 다리 길이가 다른‘하지부동’, 걸을 때마다 다리가 밖에서 안으로 휘어 들어오는‘원회전 보행’도 비정상 보행 유형들이다.
피의자 박씨처럼 개인에 따라 여러 특성이 조합돼 한꺼번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개인별로 특징이 있는 걸음걸이를 분석, 동일인물 여부 판명 등 범죄 수사에 응용한 것이 금호강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법보행 분석’ 기법이다.
CCTV에 용의자가 찍혔지만 모자를 눌러 쓰는 등 얼굴이 보이지 않고, 어렵사리 용의자를 검거해도 자신이 CCTV 속 인물이 아니라며 발뺌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걸음걸이 분석에서 동일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용의자 특정에 큰 도움이 된다.
다만 법보행 분석은 지문이나 DNA 등 다른 개인 식별 기법과는 차이가 있다. 지문이나 DNA는 그 자체로 특정 개인을 가리키는 객관적 증거이지만, 걸음이 비슷한 사람은 수두룩하므로 동일 여부를 가리는 데 어느 정도 주관적 판단이 개입한다.
물론 단순히 비슷하다는 점을 근거로 동일성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족부 정형외과의 등 인간의 걸음걸이를 전문으로 다룬 인력이 오랫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과학적 분석 결과를 내놓는다.
분석 작업을 주(主) 분석자와 교차분석자가 각각 수행하고, 분석 결과가 일치하지 않으면‘판단 불능’으로 결론 내린다. 분석자들은 선입견을 배제하고자 사건에 관해 어떤 정보도 미리 듣지 않는다. 분석의 정확도를 담보하려는 장치들이다.
걸음걸이에서 비정상적 특성이 확인돼야만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아직 법보행 분석의 한계다. 금호강 사건에서 박씨는 원회전 보행이라는 특성을 보였는데, 젊은 남성에게는 드문 걸음걸이여서 동일인 판단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 전문가 협의체가 경찰 수사 조력…기술 개발도 추진
법보행 분석이 가장 먼저 발달한 곳은 영국이다. 2000년 7월 강도 사건에서 법보행 분석 결과가 세계 최초로 법정 증거능력을 인정받아 유죄 판결이 나왔다. 캐나다에서도 총기 살인사건에서 법보행 분석으로 유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는 2013년 5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자택 화염병 투척 사건에서 법보행 분석이 처음으로 쓰였다. 당시 영국의 법보행 분석 전문가 헤이든 켈리가 한국을 방문, CCTV 영상에 찍힌 피의자의 걸음걸이를 분석했다.
경찰은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에 대해 법보행 분석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CCTV 영상 복사 과정의 부주의로 원본과 복사본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았고, 법보행 분석 결과도 법정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경찰은 400만대에 이르는 CCTV를 보유한 한국에서 법보행 기법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본격적인 도입에 착수했다. 그 결과 2014년 2월 의학·공학·법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법보행 분석 전문가 협의체’ 가 발족했다.
아직 경찰 조직 내에 법보행 분석요원은 없다. 일선에서 법보행 분석이 필요하면 경찰청에 의뢰하고, 경찰청은 이를 협의체에 다시 의뢰하는 방식으로 기법이 운용된다. 생업에 종사하다 의뢰가 들어오면 분석을 맡는 일종의 ‘재능기부’다.
경찰 자체적으로도 법보행 분석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CCTV 촬영 각도에 따른 영상 왜곡을 보정하고, 영상 속 보행 특성에 관한 지표를 추출해 ‘개인 식별지수’를 산출하는 장비와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이처럼 영상 속 범인의 걸음걸이를 토대로 신원까지 확인하는 기술이 개발되면 CCTV 화질이 떨어지거나 범인 얼굴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범인이 도중에 옷을 갈아입은 경우에도 동선 추적과 범인 특정이 가능할 것으로 경찰은 내다보고 있다.
경찰에 협조하는 협의체 역시 법보행 분석과 연구는 물론 경찰관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경찰 조직에 법보행 분석요원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협의체 전 회장인 족부정형외과 전문의 윤영필 박사는“CCTV가 날로 증가하고 화질도 개선돼 법보행 분석 의뢰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기술 진보까지 이뤄지면 법보행 분석이‘객관적 과학’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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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 이사장은 다음 주 초 재외동포재단의 9대 이사장으로 취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내정자는 미국에 거주 중이지만 곧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재외동포 출신이 재단 수장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단 이사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87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1988년 미주한국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미국 소수계 언론 연합인 뉴아메리카미디어 부장 등을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 문제를 다룬 30여 회의 시리즈를 미주한국일보에 게재해, 2001년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비롯해 AP통신 기자상, 미국 내 비영어권미디어 최초 소수계 기자상을 받았고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제변호인단을 조직해 일본 정부와 일본회사를 상대로 1999∼2006년 대일소송을 이끌기도 했다. 미주 한인 2세로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의 영웅이자 인도주의자로 이름을 떨친 고 김영옥 대령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9년 LA 공립학교의 ‘김영옥중학교’ 명명을 주도했고, UC리버사이드대 부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와 국내 김영옥평화센터 설립에 앞장섰다. 김영옥의 전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과 ‘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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