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흔적’을 쫓는 사투… 화재감식의 세계

화재 원인 규명해 범죄 관련성 확인…다양한 분야 전문지식 필요
과학수사의‘막노동’으로 불려…각종 질병·부상 위험 상존
4월29일 오전 1시30분께, 서울 강북구에 있는 한 다세대주택 3층에 불이 났다. 한밤중에 난 불로 집 내부 15㎡가 탔고 30㎡가량이 그을렸다. 불은 약 30분 만에 진화됐다.
집에는 A(88)씨와 부인 B(82)씨, 아들 C(52)씨가 살았다. 소방관들이 진입했을 때 A씨와 C씨는 얼굴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고 C씨는 안방 입구에서 A씨를 감싸안은 듯한 자세로 발견됐다. B씨는 안방 문 맞은편 벽에 기대앉아 허리를 숙인 상태였다. B씨의 발바닥과 종아리에는 화상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병원으로 옮겨졌다. A씨와 C씨는 치료 중 숨졌고 B씨는 기도에 화상을 입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화재 원인은 방화로 추정됐다. B씨의 발바닥 화상이 의심스러운 근거로 지목됐다. 발바닥에 화상을 입으려면 불을 밟아야 했을 것이므로, B씨가 집안에 불을 지른 뒤 움직이려다 자신도 화상이 커 쓰러졌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왔다.
가장 피해가 큰 곳은 안방이었다. 천장 일부가 그을렸고, 출입문은 거실 쪽으로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이부자리를 중심으로 바닥이 불에 탔고, 장롱 위쪽은 심하게 소실됐다. 여기서 불이 시작돼 집안 곳곳으로 번졌을 개연성이 제기됐다.
어디까지나 초기 추정일 뿐이었다. 화재 진압이 끝나자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화재폭발감식팀이 현장에 들어섰다. 불에 타고 물줄기를 맞아 엉망이 된 집 내부에서 감식팀은 모든 선입견을 배제한 채 현장을 면밀히 살폈다.
집은 안방, 작은방 2개, 거실, 주방, 화장실, 출입문으로 이뤄진 구조였다.
현관 출입문 안쪽에는 신발장이 놓여 있었다. 신발장 옆 구석 벽면을 따라 불길이 상승하며 연소한 흔적이 보였다. 신발장 앞에서는 불길에 녹아 눌어붙은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됐다. 플라스틱 용기였다.
감식팀이 현장에서 간이 검사를 한 결과, 인화성 물질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곳에 인화성 액체를 뿌리고 불을 붙인 방화일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감식팀은 주변에 흩어진 재활용품 등과 함께 이 물체를 수거했다.
작은방 한 곳에서는 TV 주변이 불에 탄 상태임이 확인됐고, 바닥의 TV 받침대 부위 경계면을 따라‘틈새연소’흔적이 나타났다. 인화성 액체가 바닥 등의 틈새에 스며들고 나서 불이 붙었을 때 나타나는 화재 유형이다.
다른 작은방에는 5단짜리 서랍장이 있었다. 아래쪽 두번째 칸이 열려 있었고, 안은 완전히 탄 상태였다. 두번째 칸 위로 불길이 옮겨붙은 패턴이 관측됐다. 불에 탄 옷가지 등을 간이 검사한 결과 역시 인화성 물질 양성 반응이 나왔다.
가장 피해가 큰 안방 바닥 장판에서는‘포어 패턴’(pour pattern)이 관찰됐다. 인화성 액체가 쏟아진 뒤 연소하면서 나타나는 흔적이다. 장롱 내부가 불에 탄 정도도 매우 심했다. 별다른 전기적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감식팀이 내린 결론은 초기 추정과는 다소 달랐다. 발화는 안방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안방 장롱 내부, 이부자리, 작은방 두 곳, 현관 입구에서 별개로 시작됐다. 인화성 액체를 이용한 방화였다.
감식팀은 현장에서 수거한 증거들을 서울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증거물에서 확인된 인화물질은 시너였다. 감식팀은 시너를 누가, 어디서 입수했는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사팀에 전달했다.
감식 결과를 전달받은 수사팀은 집 주변 폐쇄회로(CC)TV를 입수해 화재 발생 전 A씨 가족의 동선을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한 인물이 인근 상가에서 시너를 구입한 뒤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잡혔다. 부인 B씨가 아니라 숨진 A씨였다.
수사팀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유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A씨가 범행에 이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A씨는 젊은 시절 매우 가부장적인 남성이었지만, 나이가 들고 기력이 떨어진 뒤부터는 부인과 자녀들로부터 외면받았다고 한다.
한 노인의 좌절감이 만들어낸 비극. 감식팀이 화재 현장 곳곳에서 발견한 증거는 결국 A씨의 좌절감을 보여주는 흔적이었다. A씨 위에 포개진 상태로 숨진 아들이 그를 제지하려 했는지, 보호하려 했는지는 영영 확인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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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원인’규명하는 화재감식…“미쳐야 할 수 있어”
인간은 불과 함께 산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형태의 불이 존재한다. 불은 어둠을 밝히고 추위를 녹여주며, 다양한 방식의 음식 조리법을 탄생시켰다. 과학 발달과 함께 불은 인간 문명을 놀라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불에는 양면이 있다. 통제 가능한 불은 유용한 도구지만, 통제받지 않는 불은 더없이 두려운 존재다. 사람을 고통 속에서 죽게 하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든다. 그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처럼 강력한 위력 때문에 불은 종종 범죄에 이용된다. 매년 수많은 방화 사건이 일어나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한다. 불을 엄격히 관리해야 할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해 화재가 발생해도 범죄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화재 현장에서는 늘 화재감식이 이뤄진다. 방화인지, 실수로 일어난 불인지 원인을 밝혀 형사적 책임을 묻고, 화재를 막을 설비가 제대로 갖춰졌는지, 왜 피해를 막지 못했는지 등을 살펴 예방책 마련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다.
경찰 과학수사 분야의 하나인 화재감식은‘불이 왜 났는가’를 밝히는 작업이다. 방화나 실화는 물론, 화재 예방 책임자의 관리 소홀로 불이 나 사람이 다치거나 숨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까지 불과 관련한 형사처벌 조항은 많다.
화재감식의 역사를 새삼스럽게 따질 필요는 없을 듯싶다. 인류 문명에 불이 쓰이기 시작한 이래 화재는 늘 인간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명이 고도화할수록 화재 양상도 복잡해져 감식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화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요리하다 기름에 불똥이 튀거나 합선으로 불이 나는 경우, 담배꽁초 때문에 일어나는 산불 등 흔한 화재 외에도 동물이 배선을 갉아 일어나는 합선, 낙뢰 등까지 모두 화재 원인이 된다.
이런 이유로 화재감식요원에게는 매우 폭넓은 분야의 지식이 요구된다. 불 자체의 성질, 불이 잘 붙는 인화성 물질, 불에 잘 타거나 잘 타지 않는 물질, 인체에 대한 불의 영향 등을 알아야 화재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 화재감식요원들은 물리, 화학, 건축학, 법의학, 전기학 등 화재와 관련 있는 여러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 전문성을 높이고자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이어가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로 까다로운 분야로 꼽힌다.
강북구 방화 사건 화재감식을 맡은 서울지방경찰청 이상준 경위도 전문대 전기과 졸업 후 경찰에서 화재감식 업무를 하다 대학원에 진학, 안전공학을 공부한다. 이 경위는“화재감식을 하려면 이 분야를 좋아하고 미쳐야 한다”고 말했다.

◇ 과학수사의‘막노동’…육체적 부담 커
화재감식은 다른 범죄 현장감식 활동보다 어려운 점이 많다. 일단‘현장 보존’이라는 원칙이 무색해진다는 점이다. 내부가 불에 타 손상되고, 강한 물줄기와 소방관 발길이 닿을 수밖에 없는 화재 현장은 그야말로‘아수라장’이다.
이런 현장에서도 감식요원들은 지문이나 DNA 등 물적 증거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어둠 속을 누벼야 한다. 다 타버린 배선을 추적해 단락 흔적을 찾거나, 인화성 물질이 뿌려진 흔적을 발견하는 등 발화점을 찾는 일도 해야 한다.

akr20160805164500004_01_i방화 사건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화범과 머리싸움도 벌인다. 방화범들은 범행을 은폐하려고 증거를 현장에 남기지 않거나 마치 자연 발화처럼 위장하는 일이 많다. 이런 경우 감식요원의 판단은 수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설령 현장에서 방화 증거를 찾을 수 없더라도, 제대로 감식이 이뤄진다면 이런 결론은 낼 수 있다.“현장에서 발화했다고 볼 만한 시설이나 기구, 조건이 발견되지 않는다.”이런 결론 자체가 방화일 개연성을 뒷받침하는 한 근거가 된다.
화재 현장은 불이 사라진 이후에도 곳곳에 위험요소가 도사린다.
유독물질이 탄 현장에는 여전히 유독성 기체가 떠다닌다. 이런 기체 흡입을 막으려고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한여름에는 금세 땀에 젖어 호흡이 곤란할 정도다. 유독물질이 아니더라도 먼지를 워낙 많이 마셔야 해 호흡기질환에 걸리기 쉽다.
현장에서 삐져나온 못에라도 찔리면 파상풍에 걸릴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화재감식요원들은 정기적으로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는다. 유독성 물질에 늘 노출되기 때문에 각종 피부병도 앓는다.
이런 이유로 화재감식요원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가리켜‘막노동’이라며 자조한다. 육체적 부담이 매우 큰 작업이기 때문이다.
각종 내부 구조물이 무너져내린 현장에서 증거를 발굴하려면 근력 등 신체능력이 필수적이다. H빔처럼 무거운 구조물을 사람의 힘으로 들어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작업을 하다 허리를 삐끗해 추간판탈출증(디스크)을 앓기도 한다.
화재 현장 내부는 강한 불과 물에 매우 약해진 경우가 많다. 증거를 찾으려고 물체 하나를 치웠는데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다칠 때도 있다. 이 때문에 화재감식은 일반 현장감식보다 안전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akr20160805164500004_03_i여느 범죄 피해자 시신이 그렇지만, 화재 현장 시신은 특히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유독가스나 열기에 발버둥 치며 고통스러워한 모습이 얼굴에 역력하다. 그 고통은 감식요원에게도 전이돼 트라우마가 된다.
다른 보직과 비교해 고생은 많지만 딱히 처우가 나은 것도 아니다. 오래 못 버티고 다른 보직으로 옮기는 이들이 적지 않아 전문가 육성도 어렵다. 최고의 화재감식 역량을 자랑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때문에 고참 요원이 후임을 현장에 데리고 다니는‘도제식’교육이 여전히 중요하기도 하다. 따로 화재 현장을 재현할 교육시설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양한 현장과 증거를 직접 보고 만지는 것이 결국 실력으로 이어진다.
현재 경찰에는 서울·경기남부·대구·강원지방경찰청에 화재폭발감식팀이 설치돼 화재감식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전국에서 화재감식 전문 수사관으로 활동하는 경찰관은 80여명이다.
경찰 관계자는“화재는 늘 발생하기 때문에 경찰 업무 가운데 처리 비중이 크지만 감식요원 처우 개선이나 인력 보강은 여전히 과제”라며“감식요원들의 교육 기회를 늘려 전문성을 높일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 이승훈 저 ‘화재조사 이론과 실무’, 동화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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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 이사장은 다음 주 초 재외동포재단의 9대 이사장으로 취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내정자는 미국에 거주 중이지만 곧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재외동포 출신이 재단 수장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단 이사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87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1988년 미주한국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미국 소수계 언론 연합인 뉴아메리카미디어 부장 등을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 문제를 다룬 30여 회의 시리즈를 미주한국일보에 게재해, 2001년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비롯해 AP통신 기자상, 미국 내 비영어권미디어 최초 소수계 기자상을 받았고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제변호인단을 조직해 일본 정부와 일본회사를 상대로 1999∼2006년 대일소송을 이끌기도 했다. 미주 한인 2세로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의 영웅이자 인도주의자로 이름을 떨친 고 김영옥 대령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9년 LA 공립학교의 ‘김영옥중학교’ 명명을 주도했고, UC리버사이드대 부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와 국내 김영옥평화센터 설립에 앞장섰다. 김영옥의 전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과 ‘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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