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수사 (13)> 억울한 죽음 없게… ‘시신이 말하는 진실’ 찾기

변사체 사망원인 살피는 법의학…묻힐 뻔한 범죄 드러내기도
법의관 등 전문인력 부족…처우 개선·제도적 뒷받침도 필요

2012년 7월 18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다세대주택에서 변사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가족과 함께 이 건물에 살던 A(72)씨가 옥탑방에서 숨져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민소매 속옷 상의와 반바지 차림이었다. 경찰이 시신을 살펴보니 끈에 목을 졸린 흔적(삭흔)이 목 전체에 남아 있었다. 질식사 시신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혈점(붉고 조그만 점)도 발견됐다. 저항하거나 억압된 흔적은 없었다.

유족들은 발견 당시 A씨가 옥탑방에서 휴대전화 충전기선으로 목을 맨 상태였고, 즉시 끌어내린 뒤 침대에 눕혔다고 진술했다. A씨는 생전 뇌경색을 앓았다고 했다.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이 적힌 메모도 발견됐다.

언뜻 보면 단순히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신이었다. 그러나 현장 조사를 맡은 경찰 검시조사관은 고개를 연신 갸우뚱했다. 죽은 이는 말이 없지만, 시신에서 보이는 흔적은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목에 남은 삭흔이 너무 미약했다. 목 졸림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이라면 삭흔은 선명해야 한다. 사망 후 시신이 건조되기 시작하면 삭흔은 더 또렷해진다. A씨 목의 삭흔은 체중을 실어 목을 맨 결과 사망했다고 볼 단서로는 부족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발생한‘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첫 단계가 현장 검안이다. 부검이라는 후속 절차가 있지만, 모든 변사사건에서 부검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검시조사관은 보고서에 사망원인을 쓸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결국, 검시조사관은 ‘사인 미상’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다. 유족과 협의를 거쳐 부검이 진행됐다. 목 부위를 절개해 내부 조직 상태를 살펴봤지만, 결론은 다르지 않았다. 목 졸림을 사망원인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소견이었다.

검시조사관과 함께 말없이 부검을 지켜보던 A씨의 부인이 입을 열었다. “다 끝난 건가요?” 부검을 맡은 법의관이 결과를 부인에게 설명했다. ‘사인 미상’이라는 결론과 그 이유를 들은 부인이 말했다. “하나 말씀드릴 게 있어요.”

부인이 법의관과 검시조사관에게 밝힌 자초지종은 이랬다.

A씨가 목을 맨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애초 A씨의 시신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입과 코를 막은 비닐 테이프였다. 검시조사관과 법의관은 테이프를 볼 수 없었다. 부인이 미리 뗐기 때문이다.
A씨와 부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A씨는 평소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A씨 부인은 ‘자살한 시신은 기증할 수 없다’는 일종의 신념을 가진 듯했다.

부인은 남편의 생전 신념을 이뤄주고 싶었고, 시체검안서에 ‘자살’ 표기가 되는 일을 피하고자 증거 하나를 없앤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까지 오는 과정을 지켜보다 끝까지 진실을 감추지는 못했다.

부인 진술은 법의관 소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삭흔은 일직선으로 많은 힘이 가해진 형태는 아니지만, 입과 코가 막힌 비구폐색과 동반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목을 매고, 입과 코를 막은 행위가 결합해 질식사를 유발했다.

그해 발생한 수많은 죽음 가운데 ‘사인 미상’ 하나가 사라졌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그러나 시신은 말한다
매년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죽음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죽음이 발생한 초반에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되는 법률 용어가 있다. 변사(變死)와 자연사다. 변사는 쉽게 말해 ‘자연사로 판명되기 전의 모든 죽음’을 뜻한다.

범죄나 사고로 숨진 피해자는 물론, 질병을 앓던 사람이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갑자기 사망해도 일단 변사자로 분류된다. 질병이 사망원인이고, 범죄나 사고 피해를 당했을 의심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는 변사에 해당한다.

따라서 변사는 경찰이 조사해야 하는 ‘사건’이다. 혹시라도 모를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는 목적이다. 자살이나 자연사로 위장한 타살, 사망자 본인 책임이 아닌 사고사 등을 밝혀 고인의 한을 풀고 범죄자를 찾아내 처벌하기 위해서다.

변사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는 시신이다. 시신을 살펴 범죄와 관련성을 찾아내는 것이 법의학이다. 흔히 ‘죽은 이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법의학적 관점으로는 꼭 옳은 말은 아니다. 시신은 의외로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변사가 발생하면 경찰에 통보되고, 일차적으로 현장 검안이 이뤄진다. 시신 상태와 현장 상황을 토대로 사망원인을 추정하는 작업이다. 보통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법의관이나 경찰 검시조사관이 검안을 담당한다.

akr20160826185000004_02_i시신에 칼을 대 안을 들여다보는 부검과 달리, 검안은 겉에 드러난 ‘외표’만을 살핀다. 수사기관이라 한들 남의 시신에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표만으로도 변사자의 죽음을 상당 부분 재구성할 수 있다.

간 경화를 앓던 사람이 사망했다고 한다. 간 경화가 심하면 거미줄 형태의 혈관이 생기고, 배에 복수가 차며 황달기가 있다. 부검 없이도 간 경화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간 경화를 사망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항문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검은 변이 나왔다. 간 경화 말기에 발생할 수 있는 식도정맥류 파열로 상부위장관 출혈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외표들을 종합하고서야 비로소 간 경화에 따른 내출혈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현장 검안은 시신뿐 아니라 변사사건 현장의 여러 상황도 함께 판단한다. 홀몸노인이 사망했다면 평소 복용한 약이 있는지, 유족이 있다면 변사자의 생전 행적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뭔가를 감추려 들지는 않는지 등을 두루 따진다.

변사사건 발생 초기 현장 검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억울한 죽음이 묻힐 뻔한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올 5월 충북 증평군에서 혼자 살던 한 80대 여성이 숨졌다. 경찰은 변사자가 고령인 데다 시신에서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에만 주목했다. 검안을 맡은 병원 의사도 ‘단순 병사(病死, 자연사)’라는 소견을 냈다.

결국, 유족이 직접 나서 범죄 의심 정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경찰에 신고하고서야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다. 실상은 이웃 마을에 살던 한 50대 남성이 할머니를 성추행한 뒤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현장 검안을 맡는 법의관이나 검시조사관은 선입견의 유혹과 끝없이 싸워야 한다. 나이가 많으니, 앓던 병이 있었으니 으레 자연사했을 것이라는 편의적 발상에 굴복하면 혹시 모를 범죄 증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안의 역사는 길다. 중국 원(元)대에 편찬된 형사사건 지침서 ‘무원록’(無寃錄)에도 시신 상태를 살펴 사망원인과 범죄 혐의 여부를 판단하는 법의학적 수사기법이 담겼다. ‘무원’이란 ‘억울함이 없게 하다’라는 뜻이다.

6월 항쟁 역사 만든 부검…‘두 번 죽인다.’ 부정적 인식 여전
현장 검안으로도 사망원인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면 부검이 이뤄진다. 시신을 해부해 뇌나 각종 장기, 내부 조직 상태 등을 살펴 사망원인을 더 면밀히 확인하는 작업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과학수사 기법이기도 하다.

부검은 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1987년 학생운동을 하다 경찰에 연행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조사를 받다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경찰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유행어를 남긴 허위 결과를 발표했다.

박종철군 부검 감정서 [연합뉴스 DB]

박종철군 부검 감정서 [연합뉴스 DB]

진실을 밝힌 계기는 부검이었다. 경찰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은 부검의가 시신에서 폭행과 고문 흔적을 찾아내 기록으로 남겼다. 국가권력이 저지른 만행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이 사건은 그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전국에서 매년 3만 건이 훨씬 넘는 변사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부검 건수는 2013년 5천692건, 2014년 5천383건, 작년 6천388건으로 비율이 낮다.
굳이 부검하지 않아도 사인 규명이 충분할 때가 있고, 부검을 맡을 법의학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도 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법의관들은 또 한 가지 이유를 든다. 부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부검은 필연적으로 시신을 훼손하는 행위다. 변사사건을 조사하는 형사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던 유족들이 부검 이야기를 꺼내면 싸늘해지는 일이 적지 않다. “돌아가신 분을 두 번 죽이겠다는 거냐”며 격하게 항의하기도 한다.

냉정하게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형사의 역할이지만, 죽음이라는 무거운 상황 앞에서 슬퍼하는 유족의 뜻을 거스르기도 쉽지 않다. 잘못하다 유족과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필요한 협조를 받을 수 없어 업무에 지장이 생기기도 한다.

누구든 가족이 사망하면 평온하게 장례를 치르고 싶기는 인지상정이다. 그런 마당에 고인의 시신에 칼을 대자고 하면 천륜을 저버리는 듯 여기는 이들이 많다. 진실 규명을 원하는 법의관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유족의 정서를 이기지 못해 부검 기회를 놓치고, 장례 절차를 거쳐 시신이 화장된 후에는 진실을 규명할 여지가 영영 사라진다는 것이 일선 법의관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은폐되고 마는 범죄가 언제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양경무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은 “사망원인이 납득되지 않으면 부검해서라도 규명해야 한다는 쪽으로 국민 의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며 ‘“고인을 두 번 죽인다’는 비난은 법의관들을 슬프게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부검실로 옮겨지는 시신 [연합뉴스 DB]

부검실로 옮겨지는 시신 [연합뉴스 DB]

법의학 전문인력 태부족…처우 개선·제도적 뒷받침도 필요
법의관이나 검시조사관은 사람의 죽음을 직업적으로 다룬다. 때에 따라 죽은 이나 유족에 대한 연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감정에 휘말리면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어 감정이입을 최대한 피하려 노력한다.

법의관들이 유족으로부터 감정 결과를 문의받는 일을 꺼리는 것도 그래서다. ‘형편이 어려우니 사망보험금을 받도록 감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마음이 아프더라도 진실 규명이라는 직업윤리를 지키는 일이 우선이다.

국내에는 변사사건 발생 건수에 비해 검안과 부검을 맡을 법의학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에 국과수 법의관은 고작 35명이며, 필요한 경우 수사기관을 지원하는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등을 합쳐도 60여 명에 불과하다.

변사사건이 발생하면 법의학 전문가가 현장에 나와 검안하는 체제가 가장 이상적이다. 그럴 여건이 아닌 탓에 중요 사건을 제외하면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고, 법의학 전문성이 떨어지는 일반 의사가 형식적으로 검안하는 일도 많다.

일반 의사들은 사망진단서에 ‘병사’ 외의 항목을 표기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병사가 아닌 죽음은 경찰에 통보돼 자신도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하고, 평온하게 장례를 치르기 원하는 유족들의 민원에 시달리기도 한다.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도 병사로 판정하려는 유혹이 강할 수밖에 없다.
반면 전문성을 인정받는 국과수 법의관은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다. 의사 출신임에도 급여 수준이 낮다 보니 병원으로 일자리를 옮기거나 개업하는 일도 많았다. 이런 처우 때문에 법의관이 되려는 지원자가 많지도 않다.

이 때문에 경찰은 2005년부터 현장 검안을 맡을 검시조사관을 일반직 공무원으로 특별채용해 인력을 확충했다. 간호학, 보건학 등 전문 분야 경력자들로 현재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서 107명이 근무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숫자다.

법의학계는 전문인력 충원과 처우 개선뿐 아니라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이뤄져야 억울한 죽음이 묻히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변사체 검안과 부검의 주체를 검사로 규정하고 있다. 변사사건이 워낙 많다 보니 주로 경찰관이 검사 지휘를 받아 진행한다. 법의학 비전문가인 검찰과 경찰이 전문가 투입 필요성을 판단한다는 한계가 생긴다.

반면 영국에서는 검시관(coroner), 미국 여러 주에서는 법의관(medical examiner)이라는 법의학 전문가들이 활동한다. 이들은 수사기관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시신을 살펴 사망원인을 규명할 권한을 부여받는다.

법의학계의 한 관계자는 “예측 가능한 장기 계획을 세워 법의학 전문가를 계속 늘리고, 가능한 한 모든 변사사건 현장에 전문가가 투입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억울한 죽음을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자료제공: 연합뉴스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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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 이사장은 다음 주 초 재외동포재단의 9대 이사장으로 취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내정자는 미국에 거주 중이지만 곧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재외동포 출신이 재단 수장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단 이사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87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1988년 미주한국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미국 소수계 언론 연합인 뉴아메리카미디어 부장 등을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 문제를 다룬 30여 회의 시리즈를 미주한국일보에 게재해, 2001년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비롯해 AP통신 기자상, 미국 내 비영어권미디어 최초 소수계 기자상을 받았고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제변호인단을 조직해 일본 정부와 일본회사를 상대로 1999∼2006년 대일소송을 이끌기도 했다. 미주 한인 2세로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의 영웅이자 인도주의자로 이름을 떨친 고 김영옥 대령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9년 LA 공립학교의 ‘김영옥중학교’ 명명을 주도했고, UC리버사이드대 부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와 국내 김영옥평화센터 설립에 앞장섰다. 김영옥의 전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과 ‘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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