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수사 (14)>현미경 속 섬유 한 올, 복잡한 사건 푸는 핵심 열쇠로

육안 확인 불가능한 미세증거…숭례문 방화사건서도 결정적 증거로
섬유, 페인트 흔적 등 다양…미국 등 선진국서 중요도 높아

숭례문 화재 진화 현장 [연합뉴스 DB]

숭례문 화재 진화 현장 [연합뉴스 DB]

설 연휴 마지막 날이던 2008년 2월10일 저녁. 택시 운전사 이모(43)씨는 숭례문 인근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 남성이 택시를 지나치더니 숭례문 쪽으로 향했다.
쇼핑백을 든 이 남성은 숭례문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갔다. 1∼2분쯤 지나자 숭례문에서 불길과 연기가 보였다. 깜짝 놀란 이씨는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119를 눌렀다. 범인은 불타는 숭례문을 뒤로 한 채 현장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누각 2층에서 시작된 불은 쉽게 진화되지 않았다. 소방차량 수십대와 소방관 약 130명이 투입됐지만, ‘국보 1호’ 문화재의 무게감은 꽤 강했다. 진화를 위해 문화재를 마구 해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초기 진화가 다소 더뎠다.
기와지붕에 아무리 소화수를 쏟아부어도 그 아래 발화지점에 닿지 못했다. ‘문화재 보존보다 진화가 우선’이라는 판단이 나왔고, 자정이 다 된 시각 지붕 해체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물이 기와 표면에 얼어붙어 접근조차 어려웠다.
자정을 넘기자 불은 10m에 이르는 거대한 불기둥이 돼 2층 누각을 휘감았다. 이튿날 0시58분, 2층 누각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고, 화재 발생 5시간여 만인 오전 1시54분 누각 1층과 2층 대부분이 내려앉았다.
서울 중심부에서 국보 1호가 이처럼 허망하게 불에 탔다는 사실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경찰은 택시 운전사 이씨 등 여러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방화일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즉각 수사팀을 꾸려 용의자 파악에 나섰다.
목격자들은 용의자의 대략적인 인상착의를 제시했지만, 연령대는 50대, 60대 등으로 각기 달랐다. “60대 전후로 보이는 남성이 등산용 배낭과 알루미늄 사다리를 메고 누각으로 올라갔다”는 증언이 비교적 믿을 만했다.
그러나 딱히 도움이 될 만한 물적 증거는 확보되지 않았다.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는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 촬영 방향도 용의자가 숭례문에 접근한 지점 쪽이 아니어서 자세한 인상착의나 신원 파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찰은 용의자 범위를 좁히고자 동종 전과자를 찾기 시작했다. 무엇인가에 불만을 품고 문화재를 훼손했거나,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이른바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 3명 가운데 복역 중인 2명을 빼니 채모(70)씨가 남았다.
채씨는 토지 보상과 관련한 불만을 품고 사회적 관심을 끌고자 2006년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지른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채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거주지인 강화도에서 그를 붙잡아 범행을 자백받은 뒤 서울로 압송했다.
용의자 신병과 자백이 확보됨에 따라 그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작업이 남았다. 경찰은 채씨 집에서 압수한 신발과 인화성 물질인 시너 등을 압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홍성욱 국과수 연구관(현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장)에게 넘겨진 것은 채씨의 운동화였다. 육안으로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현미경으로 운동화 전체를 샅샅이 훑듯 들여다보는데, 신발코 부위에서 붉은 흔적이 눈에 잡혔다.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 물질은 마찰과 함께 운동화에 묻은 것으로 확인됐다. 홍 연구관은 화재 현장 기둥에서 채취한 페인트 시료와 운동화에 묻은 물질을 적외선분광광도계로 비교했다. 그래프에 나타난 결과는 ‘같은 물질’이었다.

채씨의 자백이라는 진술 증거뿐 아니라 물적 증거로도 범죄 혐의가 명확히 뒷받침되는 순간이었다.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채씨는 1·2심에서 모두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눈에도 안 보이는 실오라기가 범죄 단서로
범죄는 ‘증거’라고 불리는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 흔적이 매번 누구나 발견하고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크고 뚜렷하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미세한 섬유 한 올처럼 현미경으로나 보일 법한 ‘작은’ 증거가 수두룩하다.

작은 섬유, 페인트 흔적, 인화성 물질, 토양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증거를 통틀어 ‘미세증거’라 부른다. 눈에 보이는 증거만 찾다 보면 사건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이같은 미세증거에 눈을 돌렸다.

“두 물체끼리 접촉이 있으면 반드시 물질 교환이 일어난다.” 프랑스의 법과학자이자 미세증거 연구의 선구자인 에드몽 로카르가 남긴 말이다. 접촉 과정에서 남겨진 모든 물질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미세증거 기법이다.

목 졸려 살해당한 피해자가 있다. 사람이란 원치 않게 목이 졸리면 저항하기 마련이고,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신체 일부나 의복을 움켜쥐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손톱 끝이나 손바닥 등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섬유가 붙는다.

도로 한가운데서 시신이 발견됐다. 뺑소니 교통사고 피해자인지, 살해된 뒤 옮겨진 시신인지를 밝힐 만한 CCTV 등 단서가 마땅찮다. 피해자 옷에서 차량 페인트 흔적이 나왔다면 뺑소니로 추정할 결정적 단서가 된다.

이렇듯 미세증거는 활용하기에 따라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과학수사에서 다루는 미세증거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화장품 흔적, 콘돔 윤활액, 노끈 조각, 먼지, 유리조각 등 다양한 미세증거가 과학수사에 활용된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하게 다뤄지는 것이 섬유다. 범죄자가 의복을 착용하지 않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동차 시트, 수건 등 우리 주변에는 섬유로 만들어진 물체가 곳곳에 널려 있다. 그만큼 범죄 현장에서 찾아낼 확률도 높다.

사건 관계자 의복에서 채취한 증거물을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발견된 미세한 페인트 흔적(붉은 원)

사건 관계자 의복에서 채취한 증거물을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발견된 미세한 페인트 흔적(붉은 원)

오늘날 생산되는 합성섬유는 증거능력도 높다. 공장에서 일정한 기준에 따라 생산되므로 굵기나 염색 정도 등이 균일하다. 같은 합성섬유가 피해자와 용의자에게서 발견됐고, 다른 정황이 뒷받침된다면 범죄 증거로 충분히 쓰일 수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섬유를 채취하는 것은 감식요원의 역량이다. 목졸림 등 범행 양상, 몸싸움이 있었을 장소, 범인의 이동 경로 등을 현장에서 추정하는 ‘감’이 필요하다. 사건 정황을 충분히 이해한 요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확보한 채취물을 감식요원이 휴대용 현미경 등으로 1차 감정해 섬유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다. 섬유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국과수에 정확한 성분과 종류 등에 대한 감정을 의뢰하는 식으로 절차가 진행된다.

미국 남부 애틀랜타에서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약 2년간 흑인 청소년 30명이 실종되거나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피해자의 몸과 옷에서 황록색 나일론과 보라색 아세테이트 섬유가 공통으로 검출된 사실에 주목했다.

섬유 특성을 분석한 결과 카펫 섬유로 추정됐다. 이후 경찰은 용의자인 웨인 윌리엄을 조사하다 그의 집 카펫이 같은 섬유로 제조된 사실을 확인했다.

제조 시기, 고객 수 등 여러 정황을 따져보니 산술적으로 같은 카펫이 해당 지역에 있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결국 윌리엄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윌리엄의 카펫’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섬유 미세증거가 활용된 대표 사례다.

페인트 역시 널리 활용되는 미세증거다. 사용자가 임의로 여러 종류를 배합할 수 있고, 여러 층으로 도장되는 경우가 많아 증거로서 변별력이 좋다. 자동차용 페인트도 업체와 차종에 따라 달라지므로 교통사고 증거로 쓰인다.

숭례문 방화나 살인, 폭력 등 강력사건에서도 피해자 몸에 남은 페인트를 분석한 뒤 용의자가 확보되면 그가 소지한 도구 등을 압수해 페인트 검출 여부를 확인한다. 같은 페인트가 묻었다면 중요한 범죄 증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

범죄 도구나 용의자의 신발 등에 묻은 흙먼지, 즉 토양도 여러 사실을 알려주는 미세증거의 하나다. 토양을 구성하는 광물질, 함께 섞인 오염물 등을 분석하면 용의자가 거쳐 간 장소를 추정하는 일이 가능하다.

미국 등 선진국서 중요하게 활용…복잡한 사건 푸는 단서
미세증거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연구됐으나 한국에서 활용된 지는 오래지 않다. 2000년대 초에야 국과수에서 미세증거물 감정법과 이론이 연구됐고, 경찰에서 과학수사 기법으로 도입한 것은 2006년 들어서였다.

이후 일선 현장의 과학수사 요원들이 하나둘 미세증거를 현장감식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CSI’ 등 미국 드라마의 인기가 더해져 미세증거의 인지도가 전보다는 높아졌다. 그러나 중요도에 비해 인정은 덜 받는 기법이다.

이는 한국에서 지문, DNA 등 신원을 1대 1로 확인하는 기법이 발달한 데다 CCTV망도 촘촘히 구축된 탓이 크다. 증거능력 면에서는 지문과 DNA를 따라갈 증거가 없고, CCTV 추적만 잘 이뤄져도 용의자 특정과 검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죄가 날로 지능화하면서 지문과 DNA가 확보되지 않는 범죄 현장이 많아진다. 데이터베이스(DB)로 관리되는 DNA는 구속 피의자나 수형자 등 대상이 한정돼 있어 초범이라면 현장 DNA를 확보해도 당장은 쓸모가 없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미세증거가 ‘용의자가 누구인가’를 지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부분을 추적해야 하는가를 알려줘 수사 범위를 좁히는 중요 단서이며,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를 압박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미세증거 자체는 1대 1 증거가 아니지만, 현장에서 채취한 여러 종류의 미세증거가 용의자에게서 모두 발견되면 그 자체로 용의자의 혐의를 1대 1에 가깝게 뒷받침하는 개별 증거로 활용될 수도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자동차용 카펫 섬유를 DB로 구축해 수사에 활용할 정도로 미세증거의 중요도를 높게 친다. 섬유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자동차 카펫처럼 규격이 일정한 제품은 DB화를 통한 증거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서다.

홍성욱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장은 “DNA나 지문이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과학수사 기법으로 많이 조명되지만, 미세증거는 복잡한 사건이 미궁에 빠지지 않고 간단히 풀리게 하는 기법”이라며 “범죄자들이 지문이나 DNA를 남기지 않으려는 경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미세증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 홍성욱 저 ‘과학수사에 숨어 있는 미세증거물’, 수사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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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 이사장은 다음 주 초 재외동포재단의 9대 이사장으로 취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내정자는 미국에 거주 중이지만 곧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재외동포 출신이 재단 수장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단 이사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87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1988년 미주한국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미국 소수계 언론 연합인 뉴아메리카미디어 부장 등을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 문제를 다룬 30여 회의 시리즈를 미주한국일보에 게재해, 2001년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비롯해 AP통신 기자상, 미국 내 비영어권미디어 최초 소수계 기자상을 받았고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제변호인단을 조직해 일본 정부와 일본회사를 상대로 1999∼2006년 대일소송을 이끌기도 했다. 미주 한인 2세로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의 영웅이자 인도주의자로 이름을 떨친 고 김영옥 대령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9년 LA 공립학교의 ‘김영옥중학교’ 명명을 주도했고, UC리버사이드대 부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와 국내 김영옥평화센터 설립에 앞장섰다. 김영옥의 전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과 ‘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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