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수사 ⑮> ‘치안한류’의 첨병… 외국서도 빛 발한다

올해 5월 20일. 경찰청 외사국에 ‘재외국민 피살’ 급보가 날아들었다. 한국인 선교사 심모(57) 씨가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 안티폴로에 있는 자택에서 새벽에 흉기에 찔려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필리핀은 재외국민이 많은 데다 치안이 불안해 매년 한국인 여러 명이 목숨을 잃는 곳이다. 지난해 경찰청은 필리핀에서 한국인 관련 범죄가 발생하면 현지에 수사인력을 파견할 수 있도록 현지 경찰과 협의해 둔 상태였다.

범인은 도주했다.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찰청은 필리핀 경찰에 수사 전문가 파견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자국에서 발생한 범죄는 자국 경찰이 수사할‘치안 주권’이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경찰의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 문용수 경위 등 현장감식·폐쇄회로(CC)TV 분석·범죄분석요원(프로파일러)으로 구성된 3명의 전문가팀이 꾸려졌다. 필리핀 재외국민 사건에 국내 과학수사 인력이 파견되는 4번째 사례였다.

명색이 살인사건임에도 현지에서는 고작 형사 1명이 사건을 맡고 있었다. 한국 전문가팀은 현장 주변 CCTV 확보라는 기초작업부터 시작해야 했다. 덥고 습하기가 한국보다 훨씬 심해 밖을 돌아다니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CCTV가 있는 건물을 찾아 발로 뛰었다. CCTV 설치가 확인된 건물은 줄잡아 수백 채였지만, 건물주들이 선뜻 영상을 내줄 상황이 아니었다. 현지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으려면 긴 시간이 걸릴 것이 뻔했다.

다행히 현장에서 140m 떨어진 식당 관계자를 설득해 영상을 입수할 수 있었다. 건물에 설치된 CCTV는 9개였지만, 범인의 예상 이동로와 촬영 각도가 다르거나, 사각지대가 있는 6개를 빼고 나니 활용할 수 있는 것은 3개뿐이었다.

이렇게 확보한 영상 분량은 사건 발생시각 전후로 CCTV 1개당 48시간, 도합 144시간이었다. 화질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해 보정 작업을 거쳤다. 이어 ‘눈 빠지게’ 영상을 들여다보는 막막한 작업이 시작됐다.

밤새 눈에 핏발을 세우며 영상을 분석하던 중 장면 하나가 잡혔다. 사건 발생시각 약 1시간 30분 전, 등번호처럼 생긴 문양이 새겨진 윗옷을 입은 한 인물이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심 씨의 집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CCTV에 잡힌 용의자 모습(왼쪽)과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 [경찰청 제공=연합뉴스]

CCTV에 잡힌 용의자 모습(왼쪽)과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 [경찰청 제공=연합뉴스]

전문가팀은 앞서 필리핀에 도착한 뒤 현지 경찰이 초동수사에서 확보한 현장 증거들을 살펴보다 범인이 벗어놓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티셔츠 하나를 본 기억을 떠올렸다. 피가 묻어 있었고, 등 쪽에 숫자 11이 새겨져 있었다.

영상에 등장한 이 인물이 용의자라는 심증을 굳힌 전문가팀은 해당 인물의 인상착의를 ‘동영상 축약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전체 동영상 중 특정 요건이 포함된 부분을 골라줘 분석 시간을 크게 단축해주는 프로그램이다.

CCTV와 범행 현장 간 거리, 술에 취한 듯한 움직임 등으로 미뤄 인근 주민일 개연성이 있었다. 전문가팀은 이런 판단을 필리핀 경찰에 전달했다. 한국 전문가팀은 현지 경찰 수사를 지원할 뿐 공식 수사는 현지 경찰 몫이기 때문이다.

한국 측으로부터 단서를 받은 필리핀 경찰은 과거 이 일대에서 강도나 침입절도 등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를 압축하며 수사에 속도를 냈다.

사건 발생 7일 후인 5월 27일, 숨진 심 씨의 집에서 250m 떨어진 곳에 사는 E(25) 씨가 검거됐다. E 씨는 “술에 취해 피해자 집에 들어가 잠을 자다 갑자기 피해자가 손전등을 비추고 소리를 질러 놀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필리핀 경찰은 “피살사건이 발생해 매우 안타깝지만, 양국 경찰의 협업으로 일찍 검거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에서 파견한 경찰관의 현장감식 기법, CCTV 분석 능력, 프로파일링 기법이 수사에 큰 도움이 됐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외국 대형 재난·사건 현장서도 인정받는 과학수사 역량

한국 과학수사의 역사는 왕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시대에도 중국 원(元)대 편찬된 형사사건 지침서 ‘무원록’(無寃錄)을 국내 실정에 맞게 주해를 달아 활용했는데, 여기에 시신 검시와 같은 법의학 기법이 포함돼 있다.

현대로 넘어오면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미 군정 시기에도 지문 등 수사기법을 담당하는 부서가 존재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1월 내무부 치안국(현 경찰청) 내에
‘감식과’라는 과학수사 관련 부서가 설치된다.

한국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에서 각종 범죄가 출현하자 정부는 ‘수사의 과학화’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수사기관에서 독립해 범죄 증거 감정을 전담하는 기관이 세워진다. 1955년 3월 설립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한국 과학수사는 선진국도 인정할 만큼 뛰어난 역량을 자랑하는 수준이 됐다. 국내의 주요 강력사건은 물론 외국에서 일어나는 대형 재난현장에서도 한국 과학수사 요원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연구소’에서 지금은 ‘연구원’으로 승격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04년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등 큰 재난현장에 인력을 보내 희생자 신원 확인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외국에서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구금된 한국인들의 무고함을 입증하고 석방하는 데도 한국 과학수사는 크게 기여했다. 온두라스에서 네덜란드인 살인 혐의를 받았다가 풀려난 한지수 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 씨는 2008년 8월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려고 온두라스에 머물다 한 네덜란드인 여성 사망사건에 연루됐다. 이후 이집트에서 생활하다 1년 후인 2009년 8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체포됐다. 네덜란드인 여성을 살해한 혐의였다.

한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온두라스 당국의 수사와 재판은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이런 사실이 언론 보도와 정치권의 문제 제기로 이슈화하자 정부는 현지에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유례없는 조처를 하기에 이른다.

당시 파견된 전문가 가운데 국과수 법의관이던 김형중 박사도 있었다. 김 박사는 숨진 여성이 목 졸려 질식사했다는 온두라스 검찰 측 부검보고서를 조목조목 반박해 2010년 10월 1심에서 한씨가 무죄를 선고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찰도 재외국민이 많은 필리핀에서 한국인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과학수사 전문가를 보내 현지 경찰 수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올해 2월 필리핀에서 박모(68) 씨가 살해됐을 당시 경찰은 프로파일러와 현장감식·CCTV 분석 요원·법의학자로 구성된 전문가팀을 투입,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나흘 만에 유력 용의자가 검거되도록 도왔다.

이전까지는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발생하면 한 달 안에 용의자를 검거하는 일조차 드물었다. 올해 5월 선교사 심 씨 피살사건과 함께 한국 과학수사의 역량을 현지 경찰의 뇌리에 뚜렷이 각인시킨 사례로 꼽힌다.

필리핀 교민 피살사건 CCTV 분석하는 경찰청 과학수사요원 [연합뉴스 DB]

필리핀 교민 피살사건 CCTV 분석하는 경찰청 과학수사요원 [연합뉴스 DB]

개도국 ODA의 한 축 ‘과학수사 한류’

한국은 과거 선진국 원조를 받던 빈국에서 지금은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는 국가로 위상이 변했다.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이 같은 공적개발원조(ODA)의 목록에 과학수사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과수는 방글라데시에 사이버범죄수사센터와 정보통신기술(ICT) 교육시설 구축을 지원해 현지 경찰의 수사 역량과 치안행정 효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하고, 국내에 연수생을 초청해 교육도 진행했다.

2017년까지 3개년으로 추진되는 스리랑카 ‘과학수사 역량 강화’ ODA는 현대 과학수사의 핵심으로 꼽히는 디지털 증거와 DNA 분석시설 구축, 장비 도입, 기술 교육 등으로 이뤄져 현지 수사당국의 역량을 높이는 사업이다.

IT 발달이 과학수사와 접목돼 남다른 강점을 보이는 디지털 증거 분석 분야는 국과수가 외국에 원조 또는 수출하려는 주요 ‘품목’이다.

CCTV 영상 분석과 화질 보정, 손상된 영상 파일 복구 등 국과수가 자랑하는 디지털 증거분석 기법은 개발도상국에 전수될 뿐 아니라 중동 산유국 등에서 큰 관심을 보여 기술이전과 수출이 추진되고 있다.

경찰청도 2013년부터 바레인, 과테말라, 아랍에미리트, 도미니카공화국 등에 과학수사요원들을 파견, 현지 경찰을 상대로 과학수사 기법을 교육하고 관련 기반시설 확충을 돕는 등 ‘치안한류’ 전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한국을 방문, 경찰청에서 과학수사 관련 교육을 받는 외국 경찰 관계자도 2013년에만 45개국 140명에 이르는 등 매년 여러 국가에서 한국 과학수사를 배우려는 발길이 이어진다.

배용주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은 “한국 경찰을 방문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과학수사 인프라가 빈약한 개도국이어서 한국의 앞선 수사기법과 체제를 부러워한다”며 “현지에서 직접 노하우를 전수해 달라는 요청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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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한 이사장은 다음 주 초 재외동포재단의 9대 이사장으로 취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내정자는 미국에 거주 중이지만 곧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재외동포 출신이 재단 수장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단 이사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87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했다. 1988년 미주한국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미국 소수계 언론 연합인 뉴아메리카미디어 부장 등을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 문제를 다룬 30여 회의 시리즈를 미주한국일보에 게재해, 2001년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비롯해 AP통신 기자상, 미국 내 비영어권미디어 최초 소수계 기자상을 받았고 퓰리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제변호인단을 조직해 일본 정부와 일본회사를 상대로 1999∼2006년 대일소송을 이끌기도 했다. 미주 한인 2세로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의 영웅이자 인도주의자로 이름을 떨친 고 김영옥 대령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9년 LA 공립학교의 ‘김영옥중학교’ 명명을 주도했고, UC리버사이드대 부설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와 국내 김영옥평화센터 설립에 앞장섰다. 김영옥의 전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과 ‘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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