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석가탄신일 맞아 마음속 등불 켜자

태국의 불교 신도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에서 펼쳐진 연등행렬에 참가한 뒤 조계사에 도착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태국의 불교 신도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에서 펼쳐진 연등행렬에 참가한 뒤 조계사에 도착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3일(음력 4월 8일)은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의 탄생 기념일이다. 불교계에서는 사월 초파일을 부처님오신날로 부르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한 명칭은 석가탄신일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을 비롯해 29개 종단으로 구성된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석가’가 ‘샤카’라는 고대 인도의 특정 민족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어서 맞지 않고, 부처님오신날이 한글화 추세에도 적합하다며 지난 2월 인사혁신처에 명칭 변경을 요청했다. 그러나 6글자로 너무 길고 ‘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다른 종교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

흔히 크리스마스로 부르는 예수 탄생 기념일도 정부의 공식 명칭은 기독탄신일이다. 이를 성탄절이라고 일컫는 것에 맞춰 석가탄신일을 석탄절이나 불탄절이라고 하기도 했으나 어감이 좋지 않고 ‘불에 탄 절’을 떠올리게 해 잘 쓰이지 않고 있다. 석가탄신일은 미군정 당시인 1945년부터 공휴일이 된 기독탄신일보다 30년 늦게 공휴일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와 중국·대만·홍콩 등 동아시아에서는 음력 4월 8일이 석가탄신일이지만 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말레이시아·스리랑카 등 대부분의 동남아시아·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음력 4월 15일을 기념한다. 인도력으로 둘째 달인 베삭(Vesak)월 보름에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린 전통에 따른 것으로, 이날을 베삭데이(Vesakday)라고 부른다. 1956년 11월 네팔에서 열린 WFB(세계불교도우의회) 제4차 총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통일하기로 했다가 무산됐고, 1998년 스리랑카 총회에서도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로 바꿨으나 이 역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유엔본부는 스리랑카 총회 결의대로 양력 5월에 드는 음력 15일로 치는데, 대부분 음력 4월 15일과 일치한다. 네팔은 네팔력으로 1월 15일에 봉축행사를 열고, 일본은 양력 4월 8일에 ‘하나마쓰리’(花祭)를 열어 불단에 꽃을 바친다.

AKR20170428070300371_08_i

지난달 30일 서울 조계사 앞 우정국로에서 열린 연등회 전통문화마당에서 베트남 불자회원들이 자국의 전통 불교의식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WFB 4차 총회에서는 그때까지 각기 다르게 쓰던 불기(佛紀)도 2천500년으로 정했다. 서기(西紀) 2017년인 올해는 불기 2561년이다. 불기는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한 서기와 달리 석가모니 입멸(入滅) 연도에 맞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천641년 전인 기원전 624년, 석가모니는 히말라야 남쪽 기슭 네팔(당시에는 인도)의 룸비니 동산에서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석가모니는 ‘석가족의 성자(聖者)’라는 뜻이며, 어릴 적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였다. 35세 때 보리수 아래서 우주의 원리와 생사의 이치를 꿰뚫어 ‘깨달은 자’, 즉 부처(佛陀·Buddha)라고 불렸다.

코끼리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마야부인은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잡고 선 채 옆구리로 싯다르타를 낳았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 따르면 브라만(성직자)은 머리, 크샤트리아(귀족)는 옆구리, 바이샤(평민)는 다리, 수드라(노예)는 발바닥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싯다르타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오른손으로는 하늘,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 걸을 때마다 발자국에서는 연꽃이 피어났으며, 아홉 마리의 용이 감로수를 뿜어 싯다르타를 씻었다. 이 전설에 따라 부처님오신날에 아기부처 모양의 탄생불을 목욕시키는 관불식(灌佛式)을 치르고 연꽃 모양의 등을 다는 풍습이 나왔다.

석가모니의 탄생게(誕生偈)를 글자 그대로 풀면 ‘하늘 위아래에 오직 내가 존귀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서 ‘나’는 자신만이 아니라 뭇 생명을 가리킨다. 올해 봉축행사 표어는 ‘차별 없는 세상 모두가 주인공’이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인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봉축사에서 “모든 존재가 자유롭고 평등한 불성(佛性)의 소유자이고 스스로 온전하며 소중한 존재”라면서 “시비분별을 멈추면 본래부터 완전한 자성(自性)이 모습을 드러내고, 자성이 청정한 줄 알면 온 중생을 부처로 마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난달 23일 서울 조계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대웅전 앞마당에 설치된 오색 연등이 불상 앞의 유리창에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난달 23일 서울 조계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대웅전 앞마당에 설치된 오색 연등이 불상 앞의 유리창에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3일 서울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에서는 아기부처의 탄생을 기뻐하고 석가모니처럼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봉축 법요식이 열린다. 지난달 29일 밤에는 봉축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연등행렬이 서울 동대문에서 종로를 따라 보신각까지 펼쳐졌다. 태국·대만·네팔 등의 불자회 회원들도 오색등을 들고 행진했으며 수만 명의 외국인이 이를 지켜봤다. 30일 우정국로 전통문화마당에서는 다채로운 체험 행사가 마련돼 내외국인과 남녀노소가 즐겁고 뜻깊은 한때를 보냈다. 이 가운데 외국 스님과 함께하는 참선수행 부스와 각국 불교를 소개하는 코너 등이 설치된 국제마당도 큰 인기를 끌었다. 서울의 연등회는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에게는 꼭 봐야 할 축제로 꼽히고 있으며, 때맞춰 한국을 찾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사위국에 머물 때 그곳의 국왕과 귀족 등 많은 사람이 각기 신분과 부에 걸맞게 음식, 등, 꽃, 향 등을 석가모니에게 바쳤다. 가난한 여인 난타는 온종일 구걸해 얻은 동전 두 닢으로 작은 등과 기름을 사서 석가모니가 지나가는 길에 불을 밝히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밤이 깊어가고 세찬 바람이 불어 사람들이 밝힌 등이 하나둘씩 꺼지는데도 난타의 등은 꺼질 줄 몰랐다. 여기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고사성어가 유래됐으며 연등회의 뿌리로 이어졌다.

석가모니는 권력과 부귀를 벗어던진 채 출가해 수행을 거듭한 끝에 큰 깨달음을 얻어 인류의 스승이 됐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평등사상을 주창했으며, 눈앞의 현상에만 매달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고통과 번뇌를 끊을 수 있다고 갈파했다. 2천600년 전의 가르침인데도 만세(萬世)를 관통하며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석가탄신일을 맞아 각기 소망을 담아 마음속에 등불을 켜보자. 그리고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권력이 있든 없든 마주치는 모든 사람 가슴속에서 반짝이고 있을 등불을 향해 합장해보자. 세상이 훨씬 밝고 따뜻해질 것이다.

Leave a Reply

avatar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