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포스트 차이나’아세안 창립 50년

▲ 한-아세안센터는 아세안 창설 50주년을 맞는 올해 5월과 6월을 ‘아세안의 달’로 정해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 한-아세안센터는 아세안 창설 50주년을 맞는 올해 5월과 6월을 ‘아세안의 달’로 정해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7년 8월 8일,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 5개국 외교장관이 태국 방콕에 모여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창립을 선언했다. 국경을 뛰어넘어 공동 안보를 실현하고 경제·사회·문화적 협력을 추구해 나가자는 이른바 ‘방콕 선언’이었다. 1961년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 3개국이 결성한 동남아시아연합(ASA)에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가 가세하며 규모를 확대하고 조직의 틀을 바꾼 것이다. 당시는 미국이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하고 베트남과 국경을 맞댄 캄보디아와 라오스로도 전선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던 시기여서 군사적 의미가 더 컸다.

동남아 각국이 집단안보 체제 구축에 나선 것은 1954년 창설된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The Southeast Asia Treaty Organization)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 하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인도차이나반도 전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고자 미국이 주도해 만든 것이다. 이름과 달리 동남아 국가는 태국·파키스탄·필리핀 3개국에 불과했고 나머지 5개국은 과거 식민지 종주국이던 영국과 프랑스, 인근 대양주의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이었다. 1949년 미국의 주도로 창설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흡사했으나 1973년 베트남전 종전으로 유명무실화됐다가 1977년 해산됐다.

▶ 지난 4월 2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아세안 회원국 정상들이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아세안 회원국 정상들이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토(SEATO)와 달리 아세안은 냉전이 종식되고 블록 간 경쟁이 가속하면서 가입국도 늘어나고 협력 관계도 긴밀해진다. 브루나이가 198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6번째 회원국이 된 데 이어 베트남(1995년), 라오스·미얀마(1997년), 캄보디아(1999년)가 차례로 합류해 10개국으로 늘어났다. 또 유럽 각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체(EC), 유럽연합(EU) 순으로 연대의 틀을 발전시킨 길을 따라가려는 듯 2015년 12월 31일에는 아세안공동체(ASEAN Community)를 출범시켰다.

아세안의 인구는 6억3천만여 명(2015년 기준)으로 중국·인도와 함께 ‘빅3’에 꼽히고, 전체 면적은 444만㎢로 남한의 45배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은 약 2조5천억 달러로 미국·중국·일본·독일·영국에 이어 세계 6위(2016년 기준)에 해당하는 거대 단일 시장이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5.3%로 안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투자 유입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전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의 7%(2015년 기준)인 1천210억 달러를 유치했다. 35세 이하가 60%를 넘는 인구 구성 비율도 투자국이나 교역 대상국으로선 매력적이다.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중국보다 성장 가능성과 잠재 구매력이 훨씬 커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에 인종·종교·문화 등이 다양하고 회원국 간 소득 편차가 큰 데다 역사적 애증관계와 경제·외교적 이해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사력이나 첨단기술 등에서도 아직은 강대국과의 격차가 크다.

한국은 아세안과 1989년 대화 관계를 수립한 것을 시작으로 1997년 한-아세안 정상회의 개최, 2004년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 선언, 2007년 FTA 상품협정 발효, 2009년 FTA 서비스·투자협정 발효, 2010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2012년 주아세안 한국대표부 설립 등 빠른 속도로 상호관계를 발전시켜왔다. 아세안은 한국의 두 번째 교역·투자 대상이자 건설 시장이고,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이며, 한류의 거점이다. 또 남북관계와 한중·한일 등 국제관계에서 우리의 든든한 지지세력으로 만들어야 할 중요한 외교 파트너이기도 하다. 최근 사드 배치 문제로 한중관계가 흔들리자 대안으로 아세안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2016 서울국제식품산업전’에서 아세안 10개국의 참가자와 요리사들이 각국의 상품과 전통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해 11월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2016 서울국제식품산업전’에서 아세안 10개국의 참가자와 요리사들이 각국의 상품과 전통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아세안은 한국뿐 아니라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에도 놓칠 수 없는 협력 대상이다. 한국과 아세안의 파트너십 강화를 위한 채널로 한-아세안센터가 2009년 설립된 것처럼 이들 나라도 중-아세안센터와 일-아세안센터를 두어 상호 교류협력을 지원한다. 특히 아세안공동체 출범을 전후해 아세안을 향한 중국과 일본의 구애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실크로드기금을 통해 아세안에 200억 달러 차관 제공을 약속하고 메콩강 유역국가에 3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라오스·캄보디아와의 투자협정 체결에 속도를 내는 한편 아세안 원조 규모를 170억 달러로 늘리고 미얀마와 필리핀에 4억 달러 차관을 제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국은 시장 규모나 지리적 인접성 면에서는 중국을 따라갈 수 없고, 경제력과 기술력에서는 일본에 못 미친다. 그러나 아세안 회원국들은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 경험을 잊지 않고 있으며, 최근 노골화되는 중국의 패권주의도 경계한다. 이들 나라와 달리 한국은 식민지 침탈과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고 민주화를 성취한 개발도상국의 롤모델이다. 또 태국과 필리핀은 6·25 때 유엔 깃발 아래 함께 싸운 우리의 혈맹이고, 베트남·필리핀 등은 많은 여성을 한국에 시집 보낸 ‘사돈의 나라’이기도 하다. 비록 한국이 중국과 일본보다 원조·투자 규모가 적고 정치·군사적 영향력이 뒤진다 해도 강점을 잘 살리고 국민 각자가 진정성 있게 아세안 회원국 국민들을 대한다면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아세안의 최고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지난 2월 1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9차 한-아세안센터 정기 이사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 2월 1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9차 한-아세안센터 정기 이사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한국과 아세안 정상들은 2014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창설 50주년을 맞는 2017년을 ‘한-아세안 문화교류의 해’로 정했다. 한-아세안센터는 5월과 6월을 ‘아세안의 달’로 지정해 음식축제, 세미나, 강좌 시리즈, 퀴즈대회, 사진전 등 다채롭고 풍성한 행사를 펼친다. 아세안 창설 50주년을 계기로 한-아세안 관계가 한층 발전하고 아세안 국민과 한국민의 우정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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