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훈의 골프산책> 내셔널타이틀 명칭 무색한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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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충남 천안 우정힐스 골프장에서 대한골프협회가 개최한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 2라운드가 끝난 뒤 선수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날과 달리 핀 위치가 한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핀 위치는 스코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코스 난이도 조절에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도 하다.
핀 위치 조정으로 1라운드 평균타수는 1라운드보다 3타가량 높아졌다.
1, 2라운드 합산으로 컷이 결정되는 프로골프 대회에서 날씨 등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인위적 조절로 이렇게 난도가 달라지는 건 이례적이다.
자칫하면 형평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1, 2라운드에서는 출전선수 모두 오전과 오후에 나눠 경기한다. 1라운드 때 오전 티오프한 선수는 2라운드에서는 오후에 티오프한다. 첫날 오후에 쳤다면 둘째 날은 오전에 치른다. 오전과 오후는 바람, 습도, 코스 컨디션이 각각 다르다.
한국 골프장은 대개 오후에 바람이 강하다. 그린 경도도 높아지고 그린 컨디션도 나빠진다. 오전에 경기를 치르는 선수가 다소 유리하다는 게 통설이다. 이 때문에 1, 2라운드 코스 난도는 가능하면 똑같이 유지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이번 한국오픈 때는 이런 상식이 무너졌다. 많은 선수가
“프로 선수로 뛰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식 파괴의 배경은 충격적이다.
1라운드에서 선두 선수가 8언더파를 치는 등 무더기 언더파 스코어가 쏟아지자 우정힐스 골프장 대표는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회에 몇몇 홀 핀 위치가 너무 쉽다면서 난도 높은 지점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쉬운 골프장으로 여겨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회는 골프장 대표의 요구를 수용했다.
더 황당한 일은 이런 중대한 사안에 대해 대한골프협회가 납득할만한 설명이나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기위원장을 비롯해 대한골프협회 임원 가운데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선수들은 왜 2라운드가 그렇게 어려웠는지 알 길이 없었다.
지난해 대한골프협회가 개최한 한국여자오픈 때는 대회장 진행요원들이 법으로 정해진 급료를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식사나 휴식 공간 없는 열약한 여건에서 일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때 기자실로 달려온 사람은 한국여자오픈 메인 스폰서인 기아자동차 마케팅 담당 임원이었다. 그는 사과하고 시정을 약속했다. 이때도 대한골프협회 임직원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은 대한골프협회 주최 대회다. 단순한 대회가 아니라 내셔널타이틀 대회다. 대한골프협회는 대한체육회 가맹단체이자 국가 예산을 받는 한국 골프의 으뜸 단체다.
US오픈을 여는 미국골프협회(USGA)나 디오픈을 주최하는 영국 R&A와 비교해 세계적 영향력은 적어도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들과 위상은 동급이다.
USGA 경기위원회는 US오픈이나 US여자오픈 때 벌타 논란이나 코스 난도 논란이 벌어지면 책임자가 나서서 설명하고 해명한다. 미디어의 지적에 당당히 맞서기도 하고, 때로는 사과도 주저하지 않는다. 대회 때 그들은 전면에 나서서 대회 전반을 장악하고 책임진다.
하지만 대한골프협회는 한국오픈이나 한국여자오픈에서 존재가 없다. 메인 스폰서 코오롱, 기아자동차, 그리고 개최 코스 임직원만 보일 뿐이다.
골프 대회 특성상 150명이 넘는 출전선수 정보를 미디어가 다 갖고 있기가 어렵다. 대회 주최 측은 선수 이력을 포함한 기본 정보를 정리해뒀다가 필요할 때 제공한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투어 대회 때면 이런 일을 수행하는 직원을 배치한다.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 현장에도 이런 역할을 하는 직원이 있긴 있지만, 대한골프협회 직원이 아니다.
KPGA와 KLPGA가 파견한 직원들이다. 이들은 대회 기간에 대회장에 상주하면서 출전선수 정보를 미디어에 제공한다. 심지어 기자회견 진행을 이들이 맡을 때도 있다.
이들은 그러나 별도의 업무 공간조차 없다. 이들의 여비와 식비, 일비는 모두 KPGA와 KLPGA가 부담한다.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은 대한골프협회 주최 대회라서 그렇다. 직원을 파견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하지만 두 단체는 ‘회원’이 다수 출전하는 대회라는 이유로 무료 봉사에 나선다.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은 내셔널타이틀 오픈 대회라 출전선수 가운데 KPGA나 KLPGA 회원 선수는 일부다. 올해 한국오픈 우승자 정이근(24)은 KPGA 회원이 아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중국 투어를 거쳐 아시아투어에서 뛰고 있다. 또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에는 국가대표 등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다. KPGA와 KLPGA 직원들은 정보가 없는 선수들이다.
이러다 보니 KPGA나 KLPGA 회원이 아니면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어렵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지만 대한골프협회는 손을 놓고 있다. 비용도 대지 않으면서 다른 단체 직원들에게 맡겨놓고 모르쇠다.
두 단체는 “대한골프협회의 요청은 없지만 우리가 자발적으로 나선다”면서 “후원 기업에서 직원 파견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대한골프협회는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 명칭만 빌려줄 뿐인 셈이다. 대회 운영은 후원 기업 몫이다.대한골프협회 주최 대회라는 사실은 그저 대회 이름 뿐이다.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은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선수권대회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간판급 선수는 거의 출전하지 않는다. 해외 투어에서 뛰는 정상급 선수가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을 외면한 것은 아주 오랜 일이다.
최경주는 2002년 이후 한국오픈에 나온 적이 없다. 미국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최경주는 한국오픈을 철저히 외면했다.
박세리도 2002년 이후 한국여자오픈에는 발길을 끊었다.
최경주, 박세리뿐 아니라 상당수 정상급 선수들은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에 좀체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대한골프협회의 설명은 늘 똑같다. “나오라고 해도 안 나온다. 거액의 초청료를 비롯해 과한 요구를 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빠질 수 없는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하더라.”
그리고 반드시 뒤따르는 푸념이 있다. “키워준 은공을 모른다.”
한국오픈이나 한국여자오픈에 나오지 않는 해외 투어 선수들은 말을 아낀다. 대한골프협회 쪽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확인이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에는 해외에서 뛰는 정상급 선수 대다수가 불참하는 것이다.
선수는 거액의 초청료도 좋지만 먼저는 정성이라고 한다. 타이거 우즈가 돈만 갖고 불러올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대한골프협회 수뇌부가 해외 투어에서 뛰는 선수에게 한국오픈, 한국여자오픈에 나와달라고 어떤 정성을 기울였는지는 그동안 출전선수 면면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일본오픈이나 호주오픈, 남아공오픈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뛰는 해당 국가 간판선수들이 총출동하는 게 선수들이 다 심성이 착하거나 거액의 초청료를 받아서가 아니라는 점은 대한골프협회 임원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오픈이 열리는 동안 현장을 책임진 대한골프협회 최고위급 임원은 날마다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술판을 벌였다.
일과가 끝나고 현장에서 수고한 직원을 격려하거나 유관 단체나 후원기업 인사들과 우의를 다지는 식사 자리에서 반주를 곁들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날 경기가 종료되지 않은 시간부터 술잔을 돌리기 시작해 해가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만취한 모습도 보였다.
1라운드에 비해 턱없이 코스 난도가 높아져 선수들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쏟아낸 2라운드 때도 그는 해가 기울기 전에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진상 파악 따위는 관심 밖으로 보였다.
지난해 한국여자오픈 때도 그는 대회 기간 저녁이면 술자리를 가졌다.
골프 대회는 낮에 치러지지만, 대회 조직위원회는 밤샘 작업이 다반사다. 선수들 성적을 정리해 기록을 입력하고 통계 자료를 만드는 등 경기 후에 일이 몰린다. 코스 상태도 선수들이 빠져나간 뒤에야 점검과 보수가 가능하기에 코스 관리팀 역시 밤을 새우기 일쑤다. 코스 난도 조정 작업도 대개 경기가 끝난 뒤에야 이뤄진다. 어떤 현안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현장 책임자는 밤늦게까지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환경인 셈이다.
그가 대회 기간 내내 마시는 술값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지도 궁금하다. 대한골프협회 공금이라면 기가 막힐 일이고, 누군가의 접대를 받는 것이라면 더 기가 막힐 일이다. 자신의 개인 돈이라도 문제는 문제다. 놀러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골프협회는 내셔널타이틀 대회의 권위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다. 내셔널타이틀을 빌려주는 게 그들의 역할일 뿐이다. 전통과 권위를 지키고 세우려는 노력은 뒷전이고 노력없이 얻은 알량한 권위에 기대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US오픈과 디오픈의 권위와 전통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그걸 지키고 드높이려는 USGA와 R&A의 눈물겨운 노력과 분투가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결과다.
이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를 지녔지만, USGA와 R&A는 US오픈과 디오픈 준비와 운영에 전 조직의 역량을 쏟아붓는다.
그들의 권위와 명성을 부러워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들처럼 되려는 노력은 왜 뒷전인지 묻고 싶다.
현장에서 본 한국오픈과 한국여자오픈은 어쩌면 코오롱 오픈, 기아자동차 여자오픈으로 부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연합뉴스-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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