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캔버스 2 제2화 약취와 저항

영국의 왕이 된 크누드 1세는 호전적인 성격으로 덴마크를 정복하는데 몰두하였고, 이에 전쟁자금을 마련하고자 세금을 늘렸습니다. 이런 크누드 1세의 가혹한 세금 징수는 영국 농민계층의 몰락을 가져오게 됩니다. 자영농으로 영주의 땅을 빌려 소작만 하던 농민들이 가혹한 세금징수로 인해 노예상태인 농노의 신분으로 굴러 떨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된 것이죠.
레오프릭 영주가 다스리고 있던 마을 코벤트리에서는 영주가 왕의 신임을 얻고자 더욱 가혹하게 세금을 부과했다고 합니다.
이에 코벤트리의 주민들은 자고나면 오르는 세금에 매우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지요. 이때, 절망한 주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찾아오게 됩니다.
바로 레오프릭 영주의 아름다운 아내인 고디바 부인이 주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서게 된 것이죠! 고디바 부인은 주민들을 위해 남편인 레오프릭에게 과중한 세금정책을 개선해 줄 것을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왕의 신임을 얻고자하는 야망이 가득했던 레오프릭 영주는 이런 그녀의 간청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의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고디바 부인의 끈질긴 요청으로 인해 레오프릭 영주는 그녀에게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고, 이를 이행하면 세금을 감면해줄 것을 약속하게 됩니다.
그 조건은 주민들의 대한 그녀의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 진실을 몸으로 직접 보이라는 것으로,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오라는 것이었죠.
이 조건을 받은 고디바 부인은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도 나체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당시 신분 높고 신앙심 깊은 백작 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명예를 중시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러나 그녀는 결국 영주민들을 위해 남편이 내민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영주와 약속한 날, 긴 머리를 풀어내려 그것을 옷 대신으로 삼고, 정말로 알몸으로 말을 탄 채 도시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이었을까요?
시끌벅적해야할 코벤트리 광장에는 그 누구도 나와 있지 않고 조용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창문을 닫고 커튼을 무겁게 내려 누구 하나 밖을 내다보지 않았죠.
이는 고디바 부인의 결심을 알게 된 주민들이 그녀의 희생정신에 감동하여 다같이 그녀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 그녀가 지나갈 때까지 창과 문을 굳게 닫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는데요. 덕분에 고디바 부인은 명예를 지킨채 영주가 내건 조건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조건을 정말로 실행한 고디바 부인의 용기에, 남편인 레오프릭 영주 또한 깜짝 놀라게 되는데요. 하지만 약속은 약속인 법! 결국 주민들을 생각하는 고디바 부인의 마음에 그는 백기를 들고는 세금을 낮추게 됩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삶은 안정될 수 있었죠.
한편, 고디바 부인을 지켜주기 위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창문을 걸어 잠궜을 때, 양복재단사였던 톰만이 아름다운 영주 부인의 나신이라는 매혹적인 말에 이끌려 그만 커튼을 슬쩍 들추어 고디바 부인을 훔쳐보는 일이 발생했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나신을 훔쳐본 그 순간 톰은 신의 벌을 받아 장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톰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관음증 환자들을 일컫는 ‘피핑 톰(Peeping Tom: 엿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관음증 환자)’이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저항은 잉글랜드의 와트-타일러의 난, 프랑스의 자크리의 난 등으로 확대 발전되어 전개된다.
11~12세기의 유럽 세계에서 특기할 사건은 노르만의 영국 정복을 비롯하여 세속적 왕권 대 교황권의 대립과 회교도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교 국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는 것 등입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종교계의 지배자인 가톨릭 교황의 권력이 강대해졌으며, 이에 세속계의 최고 권력자인 신성 로마 황제와의 사이에 권력투쟁이 전개되었습니다. 성직의 서임을 둘러싸고 그레고리 7세와 하인리히 4세 사이에 벌어졌던 정면충돌은 그 일예입니다.
이 충돌의 결과로 헨리 4세는 카노사에서 그레고리 7세에게 항복하게 되었습니다(카노사의 굴욕). 이 사건이 있은 다음부터는 교황권이 절대적인 것으로 된 반면에 속세의 황제권은 점차 쇠퇴되었으며, 이와 같이 강대한 교황권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권 국가가 회교권 국가에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 십자군의 원정으로 나타납니다.
회교도들에게 점령된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과 동로마 구원의 명분을 가졌던 십자군 원정은 후세의 정치·경제·교통 등 여러 면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여러 영향은 중세 대학인 볼로냐 대학, 파리 대학, 옥스퍼드 대학 등이 끼친 여러 방면의 영향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참고: 국세청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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