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수도생활 50년 돌아보면 행복해요”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행복합니다. 시작할 때는 막연히 두렵고 끝까지 할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이렇게 왔네요. 누가 축하해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자축하고 싶어요.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지만, 하느님께 감사하고 우리 수도원 공동체와 독자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고맙습니다.”
이해인(72) 수녀는 19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성 분도 은혜의 뜰’에서 열린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샘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수도자로 살아온 지난 50년 세월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1968년 5월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온 그는 새해에 50주년을 맞는다. 그는 이 책의 첫머리에 “사랑으로 저를 키워주신 수도공동체와 언니 수녀님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썼다.
언니 수녀님은 그의 열세 살 위인 친언니로,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내가 어릴 때 언니가 먼저 규칙이 엄격한 수녀원에 들어갔어요. 모태신앙이긴 했지만, 언니를 통해 그런 생활이 있구나, 수녀원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언니가 늘 ‘나 혼자만 행복을 누리기엔 아깝다, 동생들도 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저는 원래 허영심이 많고 남학생들한테 인기도 좋았기 때문에(웃음) 단벌 신사로 이렇게 사는 건 상상도 못 하고 공주 같은 예쁜 집, 예쁜 옷, 세속적인 아름다움만 상상했거든요. 그러다 언니를 보러 수도원에 놀러 가기도 하면서 그곳을 좋아하게 됐어요. 또 전쟁을 겪은 세대로 모든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 번밖에 없는 청춘을 인류의 공동선과 좋은 일을 위해 바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나름대로는 인류애가 불탄 것 같아요.”
그 역시 처음부터 50년 수도생활을 자신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사실 불안하긴 했어요. 내가 언니처럼 착하지도 않고 끝까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그런데 50년을 이렇게 지내고 보니 스스로 대견하고, 중간에 포기했으면 누리지 못했을 물빛 평화, 담백한 평화가 내 안에 있으니 감사합니다. 먼저 떠난 언니 몫까지 착한 수도자로 마무리하고 떠나야겠다, 앞으로 더 기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해왔지만,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이날도 그의 목소리는 힘이 넘치고 말도 아주 빨랐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건강에 관한 질문을 받자 몇 차례 잘못된 소문이 퍼진 배경을 설명했다.
“계속 약을 먹긴 하는데, 면역력이 약해져 통풍과 대상포진 같은 후유증이 있어요. 그래서 입원을 해야 했는데, 자신을 가난한 사람과 똑같이 대우해달라고 한 ‘마더 테레사’를 흉내 내 보려고 성모병원이 아니라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6인실을 썼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어떤 걱정을 하며 살고 부부들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많이 듣고 알게 됐죠. 내가 부스럭대고 시끄럽다고 옆에서 ‘아줌마, 가만 좀 있어요’ 하는 구박도 받고 굴욕도 당해봤고요(웃음). 환자 이름이 본명으로 이명숙인데, 내가 이해인 수녀인지 사람들이 꿈에도 모르더군요. 퇴원하는 날 사람들이 어떻게 알게 돼서 사진 찍고 그랬는데, 그러고 나서 바로 소문이 났어요. 수원의 한 성당에서 강연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앞에서 전화 받으면서 ‘수녀님, 안 돌아가셨어. 우리 성당에서 강연하고 있거든’ 그러더군요.”
그는 힘겨웠던 투병 생활에 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암 투병 9년 동안 단 한 번도 병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았어요. 수술받기 전에 주치의가 보낸 문자메시지가 ‘수녀님, 몸을 크게 수리해서 더 좋은 몸을 가진다고 생각해주세요’ 였는데, 큰 용기를 받았습니다. 당시 병이 깊어 굉장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더 좋은 몸을 받기 위해 수리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힘이 났습니다. 언어가 주는 영향력을 그때 강하게 느꼈어요. 그 뒤로는 나도 사람들에게 아플 때 용기를 주는 말을 많이 해야겠구나 생각했죠. 약 먹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 노년의 외로움을 겪는 분들을 위한 기도 같은 걸 많이 썼는데,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그는 수녀이면서 ‘민들레의 영토’를 비롯한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내 대중적으로 사랑받기도 했다. 끊임없이 아름다운 글을 써내는 작가로서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글은 생각이 나니까 쓰는데, 생활이 별로 복잡하지 않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묵상과 기도를 하며 사는 삶 속에서 160권 가까운 일기랄까, 노트가 있는데, 짬짬이 몇 줄이라도 쓰다 보니까 뭐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사색해서 저금하듯이 생각의 조각들을 노트나 기억 속에 넣었다가 누가 글을 써 달라고 하면 빼서 쓰곤 합니다. 이런 게 글을 쓰는 원천이 되겠죠.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약간의 재능이라면 재능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자꾸 ‘수녀님이 수도원에 있으니까 이런 글이 나오고 인기도 있겠지’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수도원에 안 왔어도 괜찮은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어릴 때 백일장에서 상도 많이 받았는데, 왜 저렇게만 꼭 얘기해야 하나 서운했어요. ‘감성적, 소녀 취향’이라고 저를 깎아내리고 ‘디스’한다고 할까요, 그런 작가들도 많았는데, 그분들 만나고 나면 복수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웃음).”
그는 원로 종교인으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지 묻자 “우리의 문제는 무슨 일이 터졌을 때 내 잘못을 보기보다는 항상 탓을 다른 데로 돌리는 데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 자신도 전쟁을 겪고 북한과의 관계를 보면 딱하고 김정은이 밉고 성토하게 되지만, 어느 날 생각하다 보니 내가 진짜 저 사람을 위해 기도했나 반성하게 됐습니다. 또 요즘 사람들이 너무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주변에 큰일이 터질 때 모른 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으로는 “‘민들레의 영토’가 나온 지 40년이 됐으니 매스컴도 많이 타고 밖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공동체에 불편을 끼치고 나 자신도 고단하고 그래서 내년에는 주변 강의도 줄이고 차분하게 지내면서 수녀원 안의 수녀들을 챙길 생각”이라며 글은 다른 건 없고 영감이 떠오르면 예쁜 그림동화를 써서 내고 싶은 갈망이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 = 임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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