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한 캄폿 후추에 관한 이야기(3부)

총 3부에 걸쳐 연재하기로 약속드린 캄보디아 캄폿산 후추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지난 1부에서는 왜 캄폿 후추가 최고인 지에 대해 서문에서 설명을 드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캄폿산 후추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독자분들이 적지 않아 이번 제호에서는 캄폿산 후추에 관한, 아직 못다 한 이야기들로 지면을 할애할까 합니다.
먼저 캄폿 후추의 역사부터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캄보디아에서 후추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경으로 추정됩니다.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 바스코 다가마가 아프리카를 거쳐 인도항로 개척하기 약 200여 년 전이죠. 당시 관련 문헌이나 증거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후추가 어떠한 경로로 캄보디아까지 유입되어 재배되기 시작하였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13세기 말부터 정확히는 1298년 캄보디아 앙코르 지역을 다녀간 중국 원나라 외교사절 수행원이었던 주달관이 쓴 <진랍풍토기>에 후추에 관한 내용이 잠시 언급된 것으로 봐서, 최소 13세기부터 소규모로 재배되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왕래와 교역이 잦았던 중국 또는 힌두교와 연결고리를 가진 인도로부터 후추 종자와 재배법이 들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후추가 이 땅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는 프랑스 식민시대가 시작된 지 약 10년쯤 후인 1870년대부터로 보는 게 맞습니다. 당시 프랑스인을 포함한 유럽인들은 후추를 기르기 위한 적합한 땅을 찾아 전국을 헤맸고, 바닷가와 인접한 캄폿 지역 땅이 후추 생산을 위한 최적지임을 깨달았죠.
⊙ 후추 생산에 적합한 천혜의 땅을 찾아내다
이 지역의 토양은 지난 1부에서도 언급한바 와 같이, 최고 품질의 후추를 생산하기에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그런 땅이었습니다. 연중 적당히 불어오는 해풍은 후추생육에 좋은 미네랄을 품고 있었으며, 코끼리(덤라이)산맥 산자락에서 흘러내려 온 석영 부스러기가 섞인 붉은 토양 역시 최고 품질의 후추를 생산해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토양조건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일교차가 크고 적당한 강우량에 연중 따스한 햇볕이 내려쬐는 기후 역시도 최적의 재배조건을 제공해주었고요. 포도주의 주산지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가 세계 최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해 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겠죠?
일부 전문가들은 유럽인들이 후추를 재배하기 이미 오래전부터 현지인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적인 재배법으로 캄폿 지역에서 후추를 생산해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아직까지는 부족한 편입니다.
현재 가장 분명한 사실은 이 나라 후추가 유럽인들의 손에 의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는 사실뿐입니다. 이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1953년부터는 유럽인들로부터 후추재배방법을 전수 받은 현지인들이 후추생산을 꾸준히 늘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연간 1000톤가량의 후추를 생산할 정도로 수확량이 크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현재 8~90톤에 불과한 지금의 연간 생산 규모와는 감히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을 수확한 셈이죠. 게다가 다른 지역보다도 캄폿에서 생산된 후추는 당시에도 품질이 좋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어, 유럽 각지로 거의 전량이 수출되었다고 합니다.
⊙ 킬링필드와 함께 몰락하고 만 후추농업
하지만, 이러한 캄폿산 후추의 명성은 1975년 크메르루즈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잔학무도한 크메르루즈 게릴라군인들은 심지어 후추농장들을 불살라버리는 만행까지 저질렀다고 합니다. 왜 그 같은 일을 저질렀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습니다만, 여하튼, 인간들만큼이나 후추도 혹독한 킬링필드 시대를 몸소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이렇듯 명맥이 거의 끊겼던 캄폿산 후추가 다시 부활의 날개짓을 퍼덕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0년대 중후반부터라고 합니다. 내전이 끝나고도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죠.
수십 년 만에 다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자, 전쟁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후손들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재배법을 기억해 내 후추를 다시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내전으로 전국토가 황폐해진 가운데 이들 농민들은 후추 재배에 적잖은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십 수년 넘게 쓰러진 지주목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고, 빗물에 씻겨 내려간, 기름진 붉은 토양을 재정토해야 했으며, 반복된 홍수와 가뭄에 흔적조차 사라진 관계수로를 다시 파고, 재건하는 데만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열정과 땀의 노력에 하늘도 감복했는지, 마침내 후추농사가 작은 성공의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말 기준 고작해야 4~5톤 생산량에 불과하던 캄폿산 후추는 꾸준히 생산량이 늘어, 2017년 현재 무려 80톤까지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상태입니다. 불과 10여 개도 채 안 되던 생산 농가 수가 그 사이 320여 개 농가로 늘어났고, 재배농지가 180헥타르 땅까지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2010년 지리인증표시제 도입에 따라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인증마크를 획득하자, 캄폿산 후추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게 됩니다. 그 여파로 인근 땅값까지 덩달아 3~4배 이상 오르는 현상까지 일어납니다. (참고로 캄폿 지역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은 캄폿 지역 외에도 지리적으로 인접한 일부지역도 포함됩니다.)
현재 캄폿에서 생산되는 후추는 거의 8~90%가 유럽과 미국 등으로 수출됩니다. 과육이 숙성하기 전에 따 건조해 생산해 낸 검은 후추는 kg당 수출가격이 17불이 넘을 정도로 고가에 팔립니다. 잘 익은 붉은 후추는 이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가고, 겉껍질을 벗겨나야 하는 등 손이 훨씬 더 많이 가는 흰 후추는 이보다 최소 30% 이상 더 비싸게 팔린다고 합니다. 캄보디아 다른 지역 후추가 kg당 4불 수준에 팔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생산 농가 입장에선 정말 좋은 가격을 받는 셈이죠.
⊙ 캄폿산 후추가 유럽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는?
그렇다면 캄폿산 후추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후추에 비해 고가에 팔리는 이유는 뭘까요? 단순히 주요 소비시장인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아서만 일까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100% 정답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캄폿 후추는 다른 지역 후추와 차별화되는 특별한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100%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매우 안전한’ 후추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캄폿에서 생산된 모든 후추농산물이 캄폿산 후추로 팔려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캄폿’이란 지역 브랜드 이름을 달고 팔려나가기 위해선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통과해야만 합니다. 우선, 캄폿 후추협회(Kampot Pepper Promotion Association, KPPA)에 정식으로 회원가입 등록을 마쳐야 하며, 협회가 정해 놓은 까다로운 품질 검사 관리기준을 무사히 통과해야만 합니다. 화학비료나 약품 성분검사는 기본이고, 다양한 품질검사가 진행되며, 협회가 제시한 까다로운 생산관리기준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캄폿산 인증마크를 획득할 수 있고, 수출 및 판매도 가능해집니다.
캄폿이나 인근 에 가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재래시장이나 작은 기념품 가게에 가면 캄폿산 후추로 소개하는 후추 제품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역특산물이라서 당연 호기심이 이 가기 마련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GI 지리 인증마크도 없고, 유기농 제품이란 것을 입증할만한 아무런 단서나 표식을 제품에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가격도 수출 도매가보다도 쌉니다. 이런 후추는 수출용 캄폿 후추와는 감히 비교도 하기 힘든 싸구려 후추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유기농으로 생산한 제품이 아닐뿐더러 맛과 품질 역시도 보장하기 힘들죠. 아마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후추이거나, 협회로부터 인증받지 못한, 저급 후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됩니다.
이렇듯 캄폿 후추는 농약을 치지 않고, 100% 유기농으로 생산하기에 수확량도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단일품종임에도 지리적 자연적 특성 덕분에 맛과 품질에서 차별화된 덕분에 유럽시장에서 고가로 팔려나가는 겁니다.
⊙ 세계역사를 바꾸었다는 후추
많은 역사학자들은 후추가 역사를 바꿨다고 주장합니다. 신대륙 발견의 결정적 동기가 후추를 찾기 위해서였죠. 과거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운 이야기입니다만, 당시 생각으로 그깟 후추를 얻기 위해 유럽인들이 목숨을 건 탐험 여행을 떠난 사실이 좀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과거 귀한 진주나 금전 1냥 보다 더 비싼 대접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 역시도 도저히 믿기기 않았습니다.
그런데, 후추의 진짜 맛을 뒤늦게 알아버린 요즘에 와서야 유럽인들이 후추를 목숨과도 바꿀 만큼 소중한 가치로 여긴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15세기 베네치아 상인들이 후추를 가리켜 ‘천국의 씨앗’이라고 부른 것도 그리 과장된 표현은 아닌 듯 싶습니다. 물론, 후추가 동네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는 흔하디흔한 일반 향신료로 전락해버린 지금, 과거의 명성을 다시 되찾기란 거의 불가능해졌지만, 후추는 여전히 모든 음식 맛을 살려주는 구세주와도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인류가 멸망하지 않은 한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후추의 역할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 부활을 꿈꾸는 캄폿산 후추
인도가 주산지였던 후추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지금은 이웃 나라 베트남이 최대생산지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연간 총생산량 15만 톤 중 약 40%가량을 베트남이 생산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하지만, 품질만큼은 캄폿산 후추를 감히 따라잡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상무부 조사에 따르면, 후추가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 사이에서도 캄폿산 후추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합니다. 스테이크 등 서구화된 음식을 자주 먹다 보니 후추의 수요까지 덩달아 늘어가고 있는 셈이죠. 캄폿산 후추의 명성은 이제 유럽과 미국을 너머 일본, 대만에도 알려지기 시작한 상태입니다.
근래 들어서는 캄폿 지역 일부 후추농장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후추농장체험상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캄폿을 여행하는 유럽 출신 배낭족들 사이에서 후추농장체험 투어가 단연 인기상품입니다. 그만큼 국제적으로도 캄폿 후추의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죠.
저 역시 후추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한 독일인이 운영한다는 캄폿 지역 후추농장에 가봤는데, 다양한 후추 제품 뿐만 아니라, 통후추를 넣어 많은 스테이크를 먹고 그 맛에 흠뻑 빠진 적이 있습니다. 건조한 뒤 분쇄해 가로로 만든 오뚜기 후추만 먹어본 저 같은 향신료 문외한(?)에게 통후추의 맛은 후추를 찾아 나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와도 같은 짜릿한 감동을 혀 끝에 선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현지식당에서 기름에 달달 볶은 바닷게요리나 소고기 볶음요리에 들어간 매콤한 통후추의 맛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제가 느낀 맛의 감동을 충분히 공감하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렇듯 캄폿 후추의 위상과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다 보니, 최근 재배 농가들도 계속 늘고 있고, 한국인 사업가들도 관심을 갖고 투자를 시작했다는 소문도 들러옵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과거 60년대처럼 연간 1000톤 생산도 충분히 시대가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 봅니다.
좋은 품질의 캄폿산 후추의 생산이 늘고, 수출도 늘어난다면, 가난한 이 나라 농민들의 소득뿐만 아니라, 이 나라 국가경제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듯 싶습니다. 우리나라 하면 ‘삼성 스마트폰’을 떠올리듯, 후추 하면 캄보디아가 떠오를 만큼 이 나라 정부가 나서 캄폿산 후추를 국가브랜드로 잘 좀 키워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소비자 입장에서도 좋은 품질의 캄폿 후추를 더욱 자주 식탁 위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최근 가족들과 모처럼 함께 집에 모여 소고기 스테이크를 구워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1년에 한 통이면 충분하던 후추가 반년도 안 돼 이미 동이 난 걸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검은 후추만 먹어봤는데, 이번에는 숙성된 열매를 건조해 만들었다는 붉은 후추를 도전해볼까 합니다. 숙성된 맛이 일품이라고들 하니 내심 기대가 됩니다. 오뚜기에서 만든 가루후추밖에 몰랐던 제 입맛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여러분도 캄폿산 후추의 맛의 매력에 한 번 빠져보심은 어떨까요? [박정연 기자]

Leave a Reply

avatar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