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 앞둔 부산 유엔기념공원

◇ 허허벌판서 세계유산 등재 후보로
유엔군사령부는 1950년 10월 중국 공산군이 참전하면서 전쟁의 양상이 장기화하고 유엔군 전사자가 늘어나자 현재의 위치를 유엔묘지 대상지로 정했다. 부산항에 인접한 해안가에 있고 거주민이 적은 데다 당분간 시가지로 개발될 가능성이 작다는 점 등이 대상지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
유엔군사령부는 1951년 4월 5일에 묘지를 완공했다. 개성, 인천, 대구, 대전,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된 전사자 유해가 이장되기 시작했다. 1951년부터 1954년 사이에 안장된 유엔군 전사자 유해는 21개국 1만1천여명이었다.
국회는 1955년 11월 7일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부지를 영구히 유엔에 기증하고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했다. 유엔은 그해 12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결의문 제977(X)호’를 채택했다.
유엔과 한국 정부는 1959년 11월 6일 유엔군 장병의 희생을 기리고 유엔묘지의 존엄성이 인접토지의 사용으로 인해 손상되지 않도록 ‘유엔기념묘지 설치 및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 간의 협정’을 체결했다.
부산시는 유엔묘지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그 주변에 수목원, 조각공원, 박물관, 평화공원을 조성해 보호하고 있다. 허허벌판에 비목 하나만 있던 유엔묘지 터는 오늘날 국제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21개 국가가 한국 시각으로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맞춰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묵념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에 동참하고 있다.
턴 투워드 부산은 캐나다 참전용사 커트니 씨가 2007년 세계에서 유일한 유엔군 묘지인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묵념하자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행사는 2008년 정부 주관으로 격상됐고, 2014년에 참가국이 21개국으로 늘어 국제적인 추모 행사로 확대됐다.
김형찬 부산시 창조도시국장은 “유엔기념공원은 8개 (세계유산) 잠정목록 중에서 유엔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핵심 시설”이라며 “유엔군 참전용사가 목숨 걸고 나선 평화수호의 진정한 가치를 전 세계에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 60개국 유엔군 이름으로 참전, 그리고 유엔묘지
6·25전쟁은 유엔 회원국 60개국이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참전해 지원한 전쟁이다. 그 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용사들의 유해가 잠든 곳이 유엔묘지다.
유엔은 국제평화 수호를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가 잠든 유엔묘지를 유엔의 유일한 추모시설로 인정한다. 현재 유엔묘지 관리 주체는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국제관리위원회다.
태국의 깐짜나부리 묘지와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묘지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숨진 연합군 병사 700명∼1천명이 잠든 곳이지만 유엔 차원에서 관리하는 곳은 아니다.
유엔묘지는 현충원 등 국내 국립묘지와 비교하면 구성 자체가 사뭇 다르다. 유엔묘지에는 유해가 안장된 주묘역, 참전국과 유엔기가 게양된 상징구역, 유엔군 위령탑, 전몰장병 추모명비, 추모관과 정문 등의 기념물이 있다.
대통령, 독립유공자, 병사 등 생전 신분 혹은 계급에 따라 묘역의 위치와 규모를 달리하는 현충원과 달리 주묘역은 각각 규모와 구성이 똑같다. 묘역을 달리하는 우리의 국립묘지는 어쩌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정신과 배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엔묘지는 누구나 평등하다.
A4용지 한 장보다 조금 큰 동판에는 전사자의 국적과 이름, 소속, 생년월일, 전사 시기 등의 정보가 담겨있고 그 옆에는 꽃 한 송이를 놓는 공간이 있을 뿐이다. 주묘역이나 상징구역에 처음 와 본 참배객들은 ‘여기에 계신 분은 특별하거나 전투 공적이 있는 분이냐’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유엔군 최연소(만 17세) 전사자인 호주 출신 도운트 상병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110m 길이의 ‘도운트 수로’(水路)가 있을 정도다.
박은정 유엔기념공원국제관리위원회 홍보과장은 “전사하신 참전용사 대부분이 유엔묘지에 도착한 순서대로 안장돼 있다”며 “지위고하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피란수도 부산 세계유산 등재 2025년 최종 결정
유엔묘지가 처음부터 피란수도 부산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됐던 건 아니다.
부산시는 유엔묘지를 관리하는 유엔기념공원국제관리위원회의 동의를 얻으려고 회의 결과를 기다렸지만, 회의 일정이 늦어지자 유엔묘지를 제외한 임시수도대통령관저 등 14개 유산을 선정해 2016년 12월 문화재청에 잠정목록 등재를 신청했다.
기대와 달리 문화재청의 1차 심의에서 ‘연속 유산의 선정논리’ 등을 보완하라는 결정이 나와 잠정목록 등재가 보류됐다.
부산시는 1차 심의 이후 유엔기념공원국제관리위원회의 동의를 받았고 공공협력과 국제협력의 유산 8개소를 다시 선정해 조건부 잠정목록 등재 결정을 끌어냈다.
부산시는 6·25전쟁 기간 1천129일 중 1천23일간 부산이 피란수도로서 정치·외교·행정·교육·경제·문화의 집결지라는 점과 유엔의 정신을 실현한 현장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최근 ‘한국의 서원’과 ‘한양도성’이 잇따라 세계유산 등재에 실패한 상황에서 유엔묘지는 8개 목록의 화룡점정과 같다.
김한근 부경근대역사연구소장은 “한국전쟁 참전국과 관련해 당시 건조물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유엔기념공원”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60여년 전에는 유엔기념공원 자리가 변두리였으나 이제는 도심의 중심이 됐다”며 “이번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계기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주변을 성역화하고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계유산 최종 등재 여부는 2025년 유네스코 회의에서 결정된다.

Leave a Reply

avatar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