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C 망언’과 공공외교… 계속되는 반크의 도전

올림픽은 최고의 운동선수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스포츠 잔치일 뿐 아니라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마케팅 각축장이며, 각국 예술가들이 전시와 공연을 펼치는 축제이기도 하다. 특히 개최국은 자국의 전통·역사·문화·예술·과학·기술·관광자원 등을 널리 알려 지명도와 신인도를 높이는 호기로 삼으려 한다. 이 때문에 ‘흰 코끼리의 저주’란 말이 나올 만큼 올림픽 개최 도시가 빚더미에 오르는 일이 거듭되는데도 유치 희망국이 줄을 잇는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경제 발전상을 과시함으로써 한국을 ‘6·25 전쟁’과 ‘반정부 시위’로만 기억하던 외국인의 고정관념을 바꿔놓았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다이내믹 코리아’와 ‘IT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이제는 주로 선진국들만 개최해온 동계올림픽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냄으로써 국격을 한껏 높이고 한류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지고 있다. 개막 열흘을 넘기고 후반으로 치닫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지금까지 이런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개막식 때 일부 외국 언론이 보여준 한국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생각할수록 씁쓸하다. 미국의 지상파방송 NBC의 해설자 조슈아 쿠퍼 라모는 “일본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을 강점했지만 모든 한국인은 일본이 문화·기술·경제적으로 본보기가 됐다고 말할 것”이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10일자 신문에 남북한 선수단이 함께 들고 입장한 한반도기 사진을 싣고 동그라미 표시를 한 제주도에 ‘일본이 소유한 섬’이라는 잘못된 설명을 달았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12일 인터넷판에서 “라모가 방송에서 퇴출당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라며 “그의 해설은 중요한 진실의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논평을 했다.
한국에 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온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 언론사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충격은 더 크고 서운한 감정마저 든다. 어떤 누리꾼은 1900년대 초 영국과 미국이 각각 영일동맹과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일본과 맺어 일본의 한반도 침탈을 묵인한 역사를 들어 제국주의 근성을 꼬집기도 했다. 한 언론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도 주관방송사였던 NBC가 오만한 행태를 보였다고 상기시켰지만 사실 그것은 이미 30년 전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더욱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들 언론사에 비난 댓글을 퍼붓고 항의 메일 공세를 펼치는 것이 순간적인 화풀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NBC 망언에 격분한 50대가 주한 일본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폭파하겠다고 협박했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일도 있었다. 라모 발언 파문을 전하는 일본판 한국 기사에 일본 누리꾼이 달아놓은 “사실이 아니라면 저리 흥분할 필요가 있나”라는 댓글이 얄미우면서도 뼈아프게 느껴진다.
일본은 2015년 ‘전략적 대외홍보’를 3대 국가 과제의 하나로 정해 예산을 3배나 늘렸다. 2017년 일본 공공외교 예산은 5천500억 원으로 한국 160억 원의 30배를 넘는다. 공공외교 전문기관인 국제교류재단(코리아파운데이션)의 올해 예산은 577억 원으로 2017년보다 7.3% 줄었다. 해외 명문대 석좌교수직 개설이나 교류센터 건립과 같은 일회성 사업이 종료된 데 따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일본국제교류기금(재팬파운데이션)이 거액을 들여 미국의 싱크탱크와 학자들을 적극 지원해 숱한 ‘지일파’를 양성해온 것과 대조를 이룬다.
2001년 9·11 사태를 겪은 미국은 반미주의에 대응하는 새 외교 패러다임으로 공공외교를 강화하기로 하고 연간 1조 원의 예산을 들여 해외 여론 주도층에 미국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G2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중국 위협론’이 대두하자 책임대국론이나 평화대국론 등을 적극 전파하고 있다. 영국·독일·프랑스의 공공외교 예산도 미국에 근접한 수준이고 스웨덴도 우리나라의 5배나 된다. NBC 망언 파문이나 더타임스 오보 소동도 원인을 따져 들어가면 우리나라의 빈약한 공공외교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을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외국인들 스스로가 우리를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열정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이버 외교사절단으로 불리는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는 1999년 1월 출범한 이래 각국 교과서와 지도 등에 나타난 한국 역사나 독도·동해 표기 오류를 바로잡는 성과를 거두는가 하면 한국의 문화유산과 한류를 널리 알리고 한반도 통일과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달성에도 힘써왔다.
지난해 2월 부산국제고 2학년이던 최현정 양은 반크와 연합뉴스가 선발한 ‘제4기 청년 공공외교대사’로 활동하던 중 영국 미디어 사이트 ‘더스택닷컴’(Thestack.com)이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East Sea’(동해)가 아닌 ‘Sea of Japan’(일본해)으로 표기한 것을 발견하고 이메일을 보냈다. 최 양은 ‘일본해’ 명칭이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라는 점, 내셔널 지오그래픽·월드 아틀라스·론리 플래닛 등 세계적인 지도 제작사가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고 있다는 사실, 국제수로기구(IHO)와 유엔지명표준화회의 등의 권고를 설명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더스택닷컴은 답장을 통해 사과의 뜻을 표시하며 일본해 표기를 동해로 수정했다.
반크는 올해도 연합뉴스와 함께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제5기 청년 공공외교대사’ 발대식을 개최한다. 참가자들은 교육을 받고 한국 홍보 콘텐츠를 제작해 온·오프라인으로 국내외에 배포하는 활동에 나선다. 발대식에 이어 국립중앙박물관 나들길에서는 ‘우리가 바로 21세기 독립운동가’라는 주제로 ‘국가브랜드업 전시회’ 개막식이 열린다. 26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회에서는 국권 회복에 몸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와 함께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온 반크 회원들의 활동상이 선보일 예정이다.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의 뜻을 이어받아 ‘한국 바로 알리기’로 21세기 독립운동을 펼치는 반크 청년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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