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된 창신동 봉제 골목… 서울 도심‘타임머신 여행’

촉촉한 봄비에 봄기운 물씬 오른 3월 중순의 주말.
유난히 추웠던 겨울 뒤 봄인 만큼 남쪽으로 달린다 하더라도 봄꽃 구경하기엔 아직 조금 이르다. 이럴때 봄기운 살짝 풍기는 도심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동대문을 지나면 거기서부터 동대문구가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아니다. 여전히 종로구다.

종로구 창신동 골목.
한마디로 서울에서 가장 활기찬 골목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곳이다. 마치 부산의 자갈치 시장에서나 느낄 수 있는 활력이다. 그런 느낌을 갖고 싶다면 창신동 골목길로 나서보자.
미로처럼 얽힌 이곳을 걷노라면 묘한 반가움과 정겨움이 밀려온다. 지금은 잊고 있지만 그 옛날 우리네가 살아가던 모습이 마치 영화관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주인공들이 키스에 대한 ‘썰’을 풀던 곳이 바로 여기다. 드라마에서 ‘미생’ 장그래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양옥집도 창신동에서 찍었다 한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도 이곳에서 찍었다.
둘둘 말린 원단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나 소형 화물차가 골목골목을 누빈다. 이 골목은 좁다. 단 몇 분만 기다리면 원단 실은 오토바이를 구경할 수 있다.
창신동은 봉제공장 밀집지역으로 ‘봉제산업의 메카’로 불린 곳이다.
얼핏 보면 다가구주택들이 즐비한 곳처럼 보이지만 1970년대 형성된 봉제공장들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은 원래 동대문 노동자들의 주거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평화시장 임대료가 오르며 봉제공장들은 저렴하고 낙후된 골목으로 옮겨왔고, 지금의 거리를 형성했다.
가정집처럼 보이는 다가구 건물 앞에 귀를 세워 들어보면 ‘드르륵 드르륵’ 미싱 소리가 요란하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봉제공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모든 것을 다 바쳐 조국 건설의 역군이 된 미싱공들의 애환을 담은 1980년대 운동가요 ‘사계’가 떠오른다.

그 노래의 시작은 봄부터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여전히 잘도 도네 돌아가네’
예전 같지는 않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싱은 잘도 돌고 있다. 우리가 지금의 경제적 부를 누릴 수 있는 데는 이 산업일꾼들이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이 찔리고 찢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결국 개도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봉제공장은 베트남과 중국으로 떠났다.
종로구 창신동 봉제 골목은 명맥만 이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때 3천여 곳이 넘던 봉제공장은 요즘 700곳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특성 덕분에 이곳 거리 전체가 ‘창신동 봉제 거리 박물관’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
조금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기묘한 단어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큰 글자로 ‘마도메’란 간판이 붙어 있는 상점 문을 열었다. 하마터면 신발을 신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갈 뻔했다.
마도메라 쓰인 가겟집은 문을 열면 그곳이 그대로 방이었는데,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더니 의류의 마지막 손질, 즉 단추를 달거나 소매나 옷깃 등 마지막 작업을 하는 것을 마도메라 한다는 것이다.
일본어 전공자에게 물어보니 마도메란 총정리라는 뜻이다.
마도메뿐만 아니다.
다림질로 옷을 바르게 잡아주는 과정이란 뜻의 ‘시야게’란 단어부터, 원단을 자르고 감침질을 하는 미싱기를 다루는 것을 뜻하는 ‘오바사’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봉제 골목 곳곳에 붙어 있었다.
서울시는 이런 전통을 살리기 위해 서울 패션산업의 메카로 꼽히는 동대문시장 배후 생산지인 창신동을 봉제 거리로 지정했다.
또 다음 달이면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봉제산업을 이끌어왔던 종로구 창신동에 봉제 역사관 ‘이음피움’이 문을 연다. ‘잇는다’는 뜻과 ‘피다’는 뜻에서 따온 말이라 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새로운 미래를 피우기 위해서란다.
취재를 끝내고 나서는데, 한 싱가포르 여성 관광객이 쇼핑한 물건을 잔뜩 들고 복잡한 골목을 지도를 보며 올라오고 있다.
물어보니 박물관을 찾아간다고 한다.
“박물관은 다음 달 문을 연다. 하지만 이곳 거리 전체가 박물관이라 보면 된다”고 한마디 해주고 돌아 나왔다.

◇ 그밖에 볼만한 곳
창신동 길 건너긴 하지만 대로 상에 할머니가 운영하는 다방이 있다.
이곳에는 그 옛날 잊어버렸던 음료를 맛볼 수 있다. 바로 계란 노른자가 들어 있는 쌍화차. 펄펄 끓는 쌍화차 안에 노른자를 탁 터트려 먹는 맛이 그만이다.
창신동에는 수없이 많은 식당이 있지만 유독 호남 출신 출향인들이 하는 식당이 많다.
‘맛집’이라고 호들갑을 떨 건 아니다. 그러나 어디를 들어가도 실망하지 않을 맛을 낸다.
[연합뉴스 = 성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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