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독립언론 ‘최후의 보루’ 무너지다

캄보디아 독립언론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영자신문 <프놈펜 포스트>이 최근 매각된 데 이어, 이 신문사 편집장마저 해고되고 말았다. 또 편집장의 해고와 새 인수자로 나선 경영진의 독단적 결정에 반발, 논란이 된 매각기사를 취재한 기자 2명과 번역 편집담당자를 포함한 기자와 편집인 13명이 집단사표를 내고 결국 사임했다.
<프놈펜 포스트> 카이 킴송 편집장의 해고는 이 신문사가 말레이시아 기업에 전격 매각됐다는 관련 소식과 함께 새 인수자로 나선 사업가 시바쿠마 가나파시가 훈센 총리와 모종의 유착관계를 갖고 있다는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내보낸 지 불과 하루 만인 지난 8일(현지시각)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신문은 또한 관련 기사에서 새 인수자로 나선 말레이시아 기업이 과거 1992년 발행되었다가 폐간된 친정부성향의 <캄보디아 타임즈>를 경영한 전례가 있다는 내용도 덧붙여 전했다. 새 인수자 입장에선 부담스런 기사내용임이 틀림없다.
문제가 된 신문사 매각 관련 기사는 같은 날 오후 자체 웹사이트 인터넷 뉴스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신문사 기자들에 따르면, 관련 기사는 새 회사 운영진들의 요구에 따라 삭제됐다.
해고된 킴송 전 편집장은 최근 <로이터 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관련 기사를 즉각 내리라는 새 인수 기업 측의 요구를 거절한 가운데, 사의를 표하자 회사 측이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경영자가 된 회사 측은 관련 기사를 삭제한 직후 낸 성명을 통해, “이 기사는 매우 불경스럽고 신문의 독립성 요구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이번 신문사 매각과 관련해 “국제인권단체들과 언론계에선 지난 1992년 설립된 이 신문사가 매각된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7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 이것이 캄보디아 독립언론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방콕포스트>가 전했다.
이로써, 이제 남은 영자신문사는 <크메르 타임즈> 뿐이다. 하지만, 이 신문은 말레이시아 기업이 운영권을 갖고 있으며, 전형적인 친정부성향 언론매체라는 평판을 받고 있기에 기존 독립언론과는 거리가 멀다.
<프놈펜 포스트>가 내놓은 매각 관련 후속기사에 따르면, <크메르 타임즈>는 훈센 총리의 둘째 아들 훈 마닛과 현지 카지노사업로 유명한 나가월드 측과 지분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신문은 지분관계 등 구체적인 증거자료는 내놓지 못했다.
한편, 새 인수자로 이름을 올린 가나파시는 과거 말레이시아 싸라왁주 정부신문 편집장 출신으로,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근거를 둔 ‘아시아 PR’이란 홍보컨설팅회사의 CEO로 알려져 있다.
이 신문은 “회사 자체 웹사이트에 캄보디아 정부와 연관된 회사프로젝트 중 하나로 ‘캄보디아’와 ‘훈센 총리의 정부 취임’이란 표현을 쓰는 등, 훈센 정부 측과 모종의 유착관계에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을 명시해 놓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 수백만 달러‘세금고지서’로 독립 언론에 재갈
이번에 매각된 <프놈펜 포스트>는 40년 가까운 내전이 종식되고, 평화시대의 서막을 연 지난 1992년 무렵, 미국 언론인 출신 마이클 헤이스와 캐슬린 오키페에 의해 설립된 캄보디아 최초 영자신문이다. 이후 지난 2008년 호주 광산기업을 운영하는 빌 클로우가 인수해 일간지로 바꿔 운영해왔다.
이 신문은 지난 2017년 강제 폐간된 <캄보디아 데일리>와 더불어, 그동안 캄보디아 국내에서 발생한 각종 부정부패 사건과 재벌들의 토지수탈, 불법벌목과 밀거래단속 등 각종 비리와 범죄를 파헤치는 등 이 나라 정치와 민주주의를 감시하고, 사회, 인권, 환경보전에 앞장서는 등 책임있는 언론으로서, 많은 기여와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하지만, 반대로, 33년째 장기집권중이며 7월 총선을 앞둔 훈센 총리와 집권여당 입장에선 독립언론들이 성가신 수준을 넘어, 그야말로 목안에 든 가시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때마침 지난 2017년 6월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야당에 44%나 표를 내주며, 금년 총선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 전개되자, 훈센 총리는 마침내 그해 9월부터 친야성향 독립언론들을 향해 칼을 뽑아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VOA)과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친야성향 방송 콘텐츠를 송출해온 30여 개 라디오 방송국들을 폐쇄 조치하기 앞서,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를 내보내온 신문언론매체부터 손을 보기 시작했다. 양대 독립 언론 중 한 축을 이루던 <캄보디아 데일리>가 그 첫 번째 타깃이 됐다.
이 신문사는 630만 달러에 달하는 정부의 세금폭탄공격을 감내하지 못하고 지난 2017년 9월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현재 이 신문은 국내언론사등록이 막히자, 해외에 서버를 두고, 인터넷뉴스를 통해 캄보디아 정치소식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부당국이 막아버려 기사제목만 구글에 검색될 뿐, 실제 기사들은 읽을 수 없는 상태다.)
<캄보디아 데일리>가 폐간된 이후, 마지막 남은 <프놈펜 포스트>는 독립언론으로서 유일한 희망이란 기대를 모은 가운데, 기자들은 과거 명성과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은 권력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취재를 했다. 하지만, 이 신문도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작정하고 나선 정부의 날선 칼날을 끝내 피해가지 못했다. <캄보디아 데일리>가 당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신문사 역시,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무려 390만 달러가 넘는 세금고지서를 받아야 했다.
많은 현지정치 비평가들은 세금문제는 구실에 불과할 뿐, <캄보디아 데일리>와 마찬가지로 정부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지만, 신문사 입장에선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결국 경영상의 어려움에 세금납부 압박을 견디지 못한 채, 호주출신 경영진은 승산없는 법정싸움을 거는 대신, 매각이란 수순을 밟기로 결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당지지자는 “그동안 권력자들과 재벌기업들의 비리를 파헤치고, 진실을 밝혀온 독립언론이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앞으로의 진실과 정의는 무덤속에 파묻히게 되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연합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원조 중단과 관세혜택철회 등을 무기삼아, 독립언론 탄압을 멈출 것과 인권보호 및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을 캄보디아 정부 측에 수차에 걸쳐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대부분 묵살해버렸다.
게다가, 언론매체는 물론이고, 개인이 올린 페이스북 내용까지 규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바람에, 독립언론 출신 기자 20여 명이 구속되고, 정부를 비난한 글을 쓴 페이스북 유저들이 경찰에 체포되는 일도 다수 발생했다.
최근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국제언론자유지수는 전체 조사국 180개국 중 142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에 비해 10단계나 낮아진 순위다.
>>> 국제언론자유지수 조사국 180개국 중 142위,
10단계 하락
<뉴욕타임스>는 이번 매각과 관련해 “훈센정부가 서방 원조를 얻어내는 조건으로 그동안 자국내 언론 자유를 눈감아온 일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고 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최근들어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중국정부를 겨냥한 말로 해석된다.
훈센 총리 입장에선 지난 2017년 11월 제1야당이었던 구국당(CNRP)의 강제해산에 이어, 국가 전복 기도 혐의로 최대 라이벌이었던 야당지도자 켐 소카마저 구속시킨 마당에, 마지막 남은 독립언론마저 없애버림으로써, 집권 이래 가장 부담없는 선거를 치르게 됐다. 대부분의 정치평론가들도 같은 의견이다.
그런 가운데, 정부의 구속협박에 굴복해 지난 2015년부터 해외도피생활 중인 삼 랭시 전 야당총재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라는 캄보디아중앙선거관리위원회(NEC)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총선 ‘보이콧’ 을 회유하며 외로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이 예전만 훨씬 못한 게 현실이다. 장기집권에 대한 누적된 피로감에 정권교체를 바래왔던 친야성향 유권자들의 희망과 기대도 꺾인 상태다. 수년째 반복된 해외도피생활에 야당지지자들도 실망감에 상당수 돌아선 데다, 일반 유권자들의 뇌리속에서도 강인한 야당지도자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가 깔린 구속체포영장을 피해 현재 프랑스에서 머물고 있는 야당지도자 삼랭시 총재. 그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자국 유권자들에게 7월 총선 보이콧을 호소하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5년 전인 지난 2013 총선 때만 못하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정치전문가는 “지난 2013년 총선 때와 달리 야당이 해산되고 야당지도자가 구속된 이후 야당지지자들을 결집시킬 구심적 역할을 맡을 정치인물들은 모두 사라진 상태다. 게다가, 등록마감을 앞둔 지금,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군소정당 중 선명야당의 기치를 내세운 정당은 거의 드물고, 그나마 대안이 될 만한 일부 정당은 대중적 인지도가 너무 약해 과거처럼 야당바람을 일으키기는 매우 어렵다”며 다가올 총선결과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분위기 탓에, 굳이 뚜껑을 열어보지 않더라도, 이번 총선이 집권여당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란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부여당관계자들도 지난 2월 상원의원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약 9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전체 58개 의석 모두를 석권한 사실에 고무돼, 7월 총선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다.
>>> 세계최장기 집권을 꿈꾸는 캄보디아 총리
하지만, 노련한 정치 9단인 훈센 총리만큼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건강이상설’ 등 악소문에도 불구, 총리는 수개월째 전국을 순회하며, 유권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는 등, 총선승리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박빙의 승부 끝에 간신히 승리를 거둔 탓에 수개월간 야당시위와 노조파업으로 이어져 정치인생에 최대 위기를 맞았던 과거의 전례를 다시는 되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선거에 관한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던 훈센 총리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금씩 여유를 보이며, 총선승리에 강한 자신감을 은근슬쩍 내비치기 시작했다. 최근 한 연설에서도 총리는 앞으로 10년 이상 더 집권할 생각이란 과거 발언을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세계최장기 집권자의 반열’에 오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현재 분위기로만 봐선, 훈센 총리의 소망대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집권여당이 완승을 거둬, 지난 1985년부터 33년째 이어온 총리직을 5년 더 연임할 것으로 점쳐진다.
만약, 이번 7월 총선에서마저 승리를 거둔다면, 훈센 총리의 재임기간은 도합 38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미 아시아 최장기 집권 기록을 이미 갈아치운 상태다. 참고로, 생존인물 중 세계 최장기집권 권력자는 지난 1979년 유혈 쿠데타로 38년째 집권중인 적도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75) 대통령이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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