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롱꾸언 (Lạc Long Quân)과 어우꺼 (Âu Cơ)

베트남에도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 주몽의 난생설화와 비슷한 신화를 가진 인물이 있다. 물의 신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하늘신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를 만나 정을 통하고 연을 맺은 뒤 압록(鴨祿)강가에서 함께 살았다. 그러다 해모수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유화가 부모의 중매 없이 연을 맺고 홀로 남겨져 살고 있는 것에 대노한 아버지 하백이 내린 벌로 입이 학처럼 길어져 말도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이를 금색 개구리 형상을 닮은 부여의 금와(金蛙)왕이 유화를 발견하여 궁궐에 들여와 낳은 알에서 탄생한 것이 주몽의 난생설화이다.
한 개의 덩어리에서 백 개의 알을 낳은 어우꺼
베트남 최초의 국가 씩꾸이(Xích Quỷ) 왕국(기원전 39년)을 세운 락롱꾸언(Lạc Long Quân;雒龍君, 또는 駱龍君貉龍君)과 그의 왕비 어우꺼(Âu Cơ)도 알을 낳는 난생설화(卵生說話)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주몽설화를 보면 유화가 알을 낳자 금와왕이 이를 불길하다 여겨 개, 돼지에게 알을 내어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고 길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고 밟지 않았으며 들에 버리자 새들이 날아와 품었다. 부수려고 해도 깨지지 않았는데 그 알에서 아기가 태어났고 활을 잘 쏴서 부여의 속담에 따라 주몽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내용이 있다.
씩꾸이 왕비 어우꺼는 결혼 한 지 1년이 지나자 붉은 막에 쌓인 커다란 덩어리를 낳았다. 그의 남편인 락롱꾸언은 이를 불길하다 하여 덩어리를 들판에 내다 버렸다. 하지만 동물들도 덩어리에 접근하지 못했고 7일이 지나자 붉은 막에 쌓인 덩어리에서 백 개의 알이 나왔다. 그리고 알 하나에 한 명씩 모두 백 명의 사내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난생설화 중에는 이와 같이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 국가를 세웠다는 일화가 많다. 고대에 김해 지역에 아홉 개의 부족이 강가에 모여서 발을 구르며 춤을 추면서 구지가를 부르자 하늘에서 자주색 줄에 매달린 황금빛 상자가 내려왔는데 그 상자 안에는 황금 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황금 알에서 여섯 명의 남자아이가 태어났는데 가장 먼저 나온 아이가 가락국을 건국한 김해김씨의 시조인 김수로 왕이었다. 남은 다섯 개의 알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각각 국가를 세웠는데 이들 여섯 명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금관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고령가야, 아라가야, 소가야라는 여섯 개의 나라를 세웠다.
베트남도 우리와 유사하게 난생신화로 최초의 국가를 설립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해모수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별하게 되는 유화처럼 바다의 용인 락롱꾸언과 어우꺼가 서로 갈라지게 되는 내용도 사뭇 비슷하다. 본명은 숭람(Sùng Lãm)이며, 낀즈엉브엉(Kinh Dương Vương, 涇陽王)의 아들인 락롱꾸언은 바다의 왕인 용의 후손이다. 반면에 왕비 어우꺼는 산신의 딸이다. 둘의 결혼 생활 중 락롱꾸언이 어우꺼에게 “나는 바다의 왕인 용의 후손인데 당신은 산신의 후손이니 우리는 오랫동안 같이 지낼 수가 없다. 당신과 나는 물과 불 같은 존재이니 당신이 50명의 아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고, 나는 나머지 50명의 아들을 데리고 남하이(Nam Hải) 바다로 가겠다”고 하여 헤어지게 되었다.
금와왕의 일곱 명의 아들이 장남인 대소(帶素)를 중심으로 주몽을 죽이려고 하자 자신을 따르는 오이, 마리, 협도와 함께 졸본의 비류수(沸流水)로 도망쳐 초막을 짓고 나이 스물 둘에 나라를 건국해 고구려(高句麗)를 세운 것처럼 훙브엉(Hùng Vương)은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어우꺼를 따라가 반랑왕국(Văn Lang, 文朗王國)을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
베트남 민족의 시조 락롱꾸언과 어우꺼, 건국의 아버지 훙브엉
오늘 날 베트남 사람들은 락롱꾸언과 어우꺼를 그들의 시조로 생각하고 훙브엉은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오늘 날까지도 베트남은 모계가 강하며, 어우꺼의 이야기를 문화예술의 소재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의 지역명과 시설 이름으로도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한편 청동기 시대의 반랑왕국은 베트남 북부지역에 있던 왕조로 대표적인 유물로는 청동으로 만든 북인 동고(銅鼓)등이 남아있다. 베트남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0일을 우리나라의 개천절과 같은 ‘흥브엉의 날’로 지정해 국경일로 삼고 있다. 또한 이 날 락롱꾸언의 유적이 있는 하이즈엉(Hải Dương, Bình Đà) 성에서는 락롱꾸언 추모행사를 진행한다. 이 때 제물로 백 명의 아들을 상징하는 백 개의 바인쯩(bánh Chưng)과 바인재오(bánh Dẻo), 그리고 의자 백 개를 준비한다. 뿐만 아니라 북부 푸토성(Phú Thọ)에 있는 훙왕 사원에서는 베트남의 모든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게 사은을 드리며 시조를 기린다.
54개 형제 민족 베트남
베트남은 우리와 난생설화만 닮은 것만이 아니다. 베트남도 우리처럼 고조선이 5천 년 전에 세워지던 비슷한 시기에 나라가 세워져 5천 년의 역사를 가졌다. 또한 베트남도 우리 못지않게 오랜 기간 동안 외세의 침략과 지배로 고난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힘을 합쳐 물리치고 싸워서 이겨온 나라였다는 것 또한 닮았다. 그래서인지 특히 전쟁영웅에 관련된 신화가 유난히도 많다. 우리와 다른 점은 베트남이 다민족 국가라는 점이다. 어우꺼의 신화에 나오는 백 명의 아들이 곧 백 개의 부족이라고 볼 수가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민족이지만 나라의 운명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똘똘 뭉쳐서 외세침략과 맞서 싸워가며 나라를 지켜냈다. 이는 바로 락롱꾸언과 어우꺼가 다른 민족이지만 같은 시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고 훙브엉을 건국의 아버지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항상 ‘54개 형제 민족’이라고 주장하며 서로 단결하여 평화롭게 지내오고 있다.
한편 다른 주장에는 락롱꾸언이 중국 신화에 나오는 신농씨(神農氏)의 후손인 띠밍(帝明)의 아들이라고 한다. 더구나 락롱꾸언의 아들 ‘훙브엉(雄王)’이 세운 ‘반랑(文郞)’의 모든 왕조와 정권이 이(李), 진(陳), 호(胡), 여(黎), 막(莫), 정(鄭) 원(阮)처럼 중국의 성씨(姓氏)를 갖고 있다. 이는 베트남의 각 왕조의 시조 대부분이 중국 본토의 지방관리였던 중국인 또는 중국계 이주민이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베트남인은 중국에서 유입된 이주한인(移住漢人)과 남방의 오랑캐라는 뜻의 만이(蠻夷)라 불린 베트남 토착민의 후손들이라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외세에 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주한인과 자신들의 생계터전을 지켜 내려는 베트남 토착민 만이는 서로 견고하게 결합하여 끝까지 격렬하게 저항하고 싸워서 이겨내 역사를 지켰다. 이것이 오늘날 특유의 자존심 강한 베트남 국민성을 만드는 거름과 이유가 됐다.
이런 베트남 사람들의 특유의 자존심은 역사를 살펴봐도 금세 알 수가 있다. 베트남은 건국 초기부터 한(漢)무제, 진(晋)시황제, 오(吳)의 손권과 청(淸)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치며 눈치를 봐야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내부적으로 자신들을 남국(南國)이라 칭하며, 중국은 북국(北國)라는 생각했다. 또한 베트남 왕은 스스로를 남국의 황제인 남제(南帝)라고 칭하며 중국과 대등한 독립국가의 황제로 행세했다. 이처럼 베트남은 오랜 역사동안 대단히 강한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지니고 있다. 물론 이런 베트남 왕조의 강한 자존심은 중국의 베트남 길들이기 전쟁의 전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잡초가 밟으면 밟을수록 일어서는 것처럼 중국의 끊임없는 침략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사람들의 자존심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민족적 단합과 단결을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민족적 자존심은 결국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이기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구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