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안을 안겨다 준 아름답고 소담한 해안도시

캄보디아 오지 마을에 정수기를 기증하기 위해 최근 한국에서 오신 왕년의 배구 스타 한 장석 감독과 일행 분들이 조용한 바닷가에서 남은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요청하시기에 진작부터 적합지로 자가 검증한 까엡(Kep)을 선택, 3일간을 기쁜 마음으로 함께 그분들과 했습니다. 모든 일정이 즐겁고 만족스러웠다는 답례 말씀에 감사드리며, 이번에는 ‘길따라 맛따라’ 미식 여행글 대신 까엡 지역 여행기로 갈음할까 합니다.
벌써 후텁지근해지는 아침 8시, 호텔 로비에서 만나 반가운 악수를 나누고, 제 회사에 들러 준비물들을 싣고서 4번 국도에 진입하니 예상대로 정체가 심합니다. 애써 여유를 부리며 앙 스누얼 지역을 지나 51번 국도로 들어서니 그제서야 시원한 주행이 가능해집니다. 바로 3번 국도로 가지 않고 4번 국도를 경유한 이유는 51번 국도에서 볼 수 있는 대자연의 선물인 이국적 풍경들을 보여드리기 위해 제가 특별히 준비한 코스입니다. 10여 분을 지나니, 가까이는 소들이 오가는 농경지 벌판 너머 멀리 낮은 산들이 푸르름을 뽐내고, 그 사이 사이로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 코코넛 나무들의 교통 정체로 답답했던 가슴에 사이다 한 잔처럼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줍니다.
최근 집중호우로 4번 국도의 교량파손 여파 때문에 대형차량들의 우회통행이 많았던지, 3번 국도에 인접하니 심하게 파손된 도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부구간만 조금 파였겠지 싶었는데, 정도가 점점 심해져 내려갈수록 설상가상이네요. 계속 흩뿌리는 비에 패여 나온 흙까지 뒤섞여 거의 비포장 수준입니다. 이런 연유로 도착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고 점심시간마저 지난지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길가 노점상에 차를 세웁니다. 솥단지 속 잘 익은 뜨거운 옥수수를 몇 개 발견하고는 5개에 1불을 주고 각 1개씩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줄줄 흐르는 뜨거운 옥수수 껍질 물을 참아내며, 고소하고 찰진 옥수수를 벗겨먹는 순간, 차안은 적막 그 자체입니다. 오직 옥수수를 씹는 찰진 소리만 들립니다. (웃음)
공항으로부터 약 130여 킬로미터의 거리를 거의 7시간만에 달려 초췌해진 상태로 도착한 최종 목적지는 남부 해안도시 까엡의 작은 해변 시장입니다. “오느라 욕 봤다”며 두 손 들어 반기는 이 고장 명물 꽃게와 정겨운 첫인사를 하고, 얼음 통에서 동면(?) 중인 왕새우 녀석들을 골라 담고 푹 삶아달라 주문한 뒤 시장 안 쪽으로 들어가 오징어와 구운 생선도 몇 마리 삽니다. 점심 장보기에 이리저리 뛰며 가격이 얼마냐며 “뽄만 뽄만”을 되풀이하는 제 뒤에는, 유창한 캄보디아어를 구사하며 제 흥정을 슬기롭게 마무리해주는 이 순간만큼은 더 예뻐 보이는 아내가 있습니다.(웃음)
흙탕물에 뒤범벅되어, 흡사 늪에 빠졌다 나온 멧돼지 같이 생겨버린 차를 몰고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3시가 넘은지라 다들 허기에 지칩니다. 모두들 삼복더위에 늘어진 호박잎 상태가 되었지만,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재빠르게 짐을 옮기고 각자 맡은 역할분담에 따라 번갯불에 콩 볶듯 점심식사를 마련합니다. 방금 사온 김이 폴폴 나는 삶은 게와 새우, 주방에서 살짝 데친 오징어를 메인으로, 그 옆에는 새콤한 초고추장과 미리 준비한 밑반찬과 상추 그리고, 풋고추, 구워온 고등어까지 곁들여지니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왕후의 만찬’이 부럽지 않습니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치고 허리띠를 풀어 놓을 때쯤, 가지고 온 열대과일들을 펼쳐놓고 일일이 설명하며 권하는 아내는 연신 기쁨에 가득한 표정에 빨리 먹고 풀장에 수영가자며 모두를 재촉합니다.
우리 일행이 간 곳은 ‘베란다(Veranda)’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 리조트입니다. 해안가가 보이는 산기슭 울창한 숲 속 중심에 자리한 이 리조트는 숙박 시설은 물론 바다 전망이 보이는 식당도 꽤 괜찮고, 무엇보다 길이 50m짜리 풀장도 구비하고 있습니다. 지하수로 매일 물갈이를 하고 염소약품으로 소독해 마음 놓고 물놀이를 즐겨도 되는 곳임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터라 무척 안심이 됩니다. 일행 모두는 일명 ‘개헤엄’으로 우당탕 텀벙거립니다만, 유독 딱 한 분만은 마치 TV에서나 봤던 국가대표선수처럼 수영을 하시네요. 오호! 자세히 보니, 서울에서 17년차 메리츠화재 근속과 우수인증을 6년 연속 수상하셨다는 재무설계사님입니다. 허리 재활 차 틈틈이 배웠다는 수영 실력이라는데도 돌고래와 친구해도 될 수준급이네요. 바라보는 모두를 부럽게 만듭니다. 역시, 따봉 따따봉!!
저녁 시간이 되어 해수욕장에 나가 다소 거센 바람과 출렁이는 물결 속에 맨발을 담그니, 파도가 우리의 발등을 끈질기게 간질이며, 부부간 살콧한 대화마저 방해하려 듭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낀 팔장과 몸은 더욱 더 밀착되니 파도가 시샘이라도 하듯, 밤새 비바람까지 보내 방해를 하네요.
우기 때문인지 습습해진 날씨에 에어컨을 틀어 제습을 맡기고 어느 사이 깜빡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아득한 곳에서부터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 금세 눈을 뜹니다. 새벽시장 열리는 시간, 부랴부랴 산 아래 마을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차를 몰아 들어가니 밤새 잡힌 생선들이 아낙네들의 광주리 속에서 펄떡이며 “날 잡아잡슈” 합니다.
맛을 보여 드리려던 소라, 고동이 없어, 이내 허무한 발길을 돌리고는 선착장에 들러 낚시배를 예약하고 리조트로 돌아왔습니다. 아침식사 중인 일행들에게 “오늘은 배 낚시 하시죠!” 했더니 다들 “야호~”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처럼 좋아합니다.
준비해간 멀미약을 한 병씩 의무적으로 원샷하고 호기당당하게 폭 5미터, 길이 20미터 남짓의 나무배에 오르니, 높아진 파도에 서로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힘겹습니다.
앞에 보이는 섬을 목표 삼아 10여 분을 나아가니, 거세어진 높은 파도에 놀라 입었던 구명 안전조끼를 다시 조여매고 배 바닥에 웅크리고 앉지만 뱃전에 부딪쳐 올라오는 파도는 온몸을 때리고 간헐적으로 기습해오는 거칠고 큰 파도는 우리 배를 금세라도 뒤집을 기세입니다.
앉아 있기도 어려운 흔들림과 온몸을 때리는 물보라를 겨우 뚫고, 40여 분을 더 달려 섬에 도착하고서야 안도는 하지만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이 바람에도 낚시를 하겠냐는 선장의 질문에 “당근”이라고 말했더니, 선장은 잠시 후 섬을 등진 옆 켠에 배를 고정하는 닻을 내립니다. 하지만, 수심이 얕고 바닥 걸림도 있어서 포인트를 이동해야 하는데, 바람 때문에 다른 곳에는 갈수도 없는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전개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준비해온 미끼가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낚시에 도전해봅시다”
사람들을 독려하며 10분에 10cm짜리 열대어가 겨우 한 마리 올라오는 지루함을 견디면서 1시간여 노력 끝에 10여 수의 조과 중 월척급 돔 한 마리를 잡고서야 기운이 납니다. 즉석 회를 뜨니 그 맛은 “거 참 좋은데, 너무 좋은데,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죠?ㅎㅎㅎ)
잠시 낚시줄을 감고, 배를 섬에 접안시켜 물놀이 하다가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기에 고개를 들어 살피니, 바다 저편 멀리에 시커먼 초대형 먹구름이 비를 뿌리며 무섭게 몰려오는 게 보이네요. 결단을 내릴 시간이 온 겁니다.
‘뭍에 올라 비가 지나가길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일정을 접고 육지로 귀환할 것인가?’
구름의 크기를 보아하니 ‘쉽게 지나갈 사이즈가 아니다’라는 일치된 의견에 너무나도 아쉽지만 모든 걸 접고 되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급하게 닻을 올린 채 육지 쪽으로 2개 엔진을 전속력으로 달려 긴박한 회항을 단행합니다. 비싼 값에 계약했는데, 접고 되돌아오려니 낚시를 무척 좋아하는 저로서는 안타까움이 절절 끓습니다만,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는 도리 없는 선택이죠. 육지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들이닥친 폭우와 바람은 입은 옷들을 흠뻑 적시고도 모자라네요. 다행히 우리 모두는 이미 육지에 올라와 있습니다. 이 정도의 시간과 횟감의 허락과 안전을 주심에 한없이 감사해하며 또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입니다. 어제 오후에 알게 된 리조트 뒤편의 국립공원 둘레길 걷기에 나섭니다. 배낭 가득 물과 과일, 소시지를 담고 각자 간편한 차림으로 발걸음도 가벼이 신나게 출발합니다. 약 8Km의 산허리를 도보로 2-3시간 예상하고, 입장료 1인당 1불을 지급하고 관리소에 명부를 기록한 뒤 들어선 고즈넉한 숲길. 왼쪽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마주 오는 상쾌한 바람은 콧노래가 절로 나오게 하는군요.
오른쪽 산 속에는 태초의 정글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수종이 다양한 자세로 서 있고, 듬성듬성 우람한 괴목들이 수호하듯 서있습니다. 나뭇가지에는 원숭이를 비롯한 산짐승들과 산새들이 우리를 따라 동행합니다. 낮은 언덕에는 이른 아침이 겨운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밤새 덮었던 이슬 맺힌 담요를 털어내는 화사한 날갯짓에 분주하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은 각자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울 정도로 경이로운 초대형 자연 박물관이 따로 없습니다. 1시간 반을 걸어 원점에 도착할 쯤 완주를 축하라도 하듯 매미를 단장으로 한 풀벌레 합창단의 멋들어진 화음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허리와 발바닥에 통증이 있는 아내와 저는 몸은 힘들었지만 비경에 취해 가져간 간식도 잊고 즐겁고 행복했던 까엡 국립공원 탐방을 멋지게 끝냈습니다.
마지막 날이 밝은지 오래지만 모두들 여유를 부리며 늦은 아침을 먹고 1번 국도를 지나 동쪽 국경 쪽 마을로 일찍 출발해야만 하기에 미리 짐들을 꾸리고 수영장에서 담소로 시간을 나누며 아쉽고도 즐거웠던 여정들을 마음 속에 차곡차곡 정리합니다.
고국이나 캄보디아도 무더웠던 8월이 곧 지나고 추석이 있는 9월이 되었습니다. 모두 살림살이 더 풍성해지고 고국 오가는 길 행복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