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대화: 1997년 하노이, 미국과 베트남의 3박 4일 저자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 서각수 옮김 출판사 원더박스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어제의 적이 수십 년 만에 만나 나눈 나흘간의 진솔한 대화를 책으로 엮었다. 1997년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나흘 동안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에서는 아주 특별한 회의가 열린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20여 년이 지난 시점, 전쟁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최고 책임자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노이 대화’로 알려진 열띤 토론을 벌인다. 20세기 최대의 비극 중 하나인 베트남 전쟁을 사전에 피할 길은 없었는지, 이미 시작되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끝낼 수는 없었는지 찾아 나선 그들은, 점점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비극을 초래했다는 점을 깨닫고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함을 확인한다. 이 책은 ‘하노이 대화’와 그 전후 맥락을 취재한 NHK 다큐멘터리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베트남 전쟁?적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했다.
‘하노이 대화’가 보여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상대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벗고 상대의 의지와 목표 등을 정확히 이해하면, 그를 통해 성공적인 협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최고 지도자끼리의 지속적인 대화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베트남 전쟁에 대한 평가를 넘어, 오늘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프로세스에도 적용 가능하다.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접근법이다. 베트남에 개입한 미국의 경우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소련과 중국의 손길로부터 인도차이나를 지켜줄 은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정작 베트남인들에게는 프랑스를 몰아냈더니 그 자리에 들어온 외세에 지나지 않았다. 베트남의 경우 본인들은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최고 가치로 내세웠으나 미국에는 중국과 소련의 앞잡이로 인식되었다. 자신의 역사에만 함몰되지 말고, 상대의 시각에서 자국이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북폭과 비밀 협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힘의 과시를 협상의 무기로 쓸 때의 위험성도 인지해야 한다. 특히 어떤 행위의 시그널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용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은 북폭이 북베트남이 대화에 임할 명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베트남으로서는 오히려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칠까 대화에 임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노이 대화’의 현장과 그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이 책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각국 간의 대화가 난항에 빠질 때마다 반드시 살펴봐야 할 필독서임은 물론이고, 전쟁이 아닌 대화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