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예술이 녹아있는 베트남 민화

● 왕조의 역사와 지역 특징을 사조에 담다
베트남의 민화에는 조상숭배 관습과 자연을 신성시하는 믿음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민화는 수 세기 동안 베트남의 목판 조각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이 제작되었다. 리 왕조(Ly Dynasty, 12세기) 시대에는 목판조각이 가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쩐 왕조(Tran Dynasty) 말기에는 지폐를 찍어내기 시작하였다. 레 왕조(Le So Dynasty) 초기에는 중국의 날염술이 베트남에 보급되었는데, 하노이 역사박물관과 미술박물관에 당시의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막씨 왕조(Mac Dynasty, 16세기) 시대에 민화는 널리 발전하여 탕 롱(Thang Long) 귀족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특히 18~ 19세기에 눈에 띄게 발전했다.
민화는 화가의 예술적 스타일과 그림 그리는 기술,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특징지어 졌는데, 주로 그 그림이 제작된 장소에 따라 하나의 미술 사조로 구분되었다. 스타일은 각기 다르지만, 모든 민화는 선을 이용해 경계를 구분 짓고 형태를 잡는 던 뚜엔 빈 도(Don Tuyen Binh Do, 단순한 선과 디자인)에 바탕을 둔다.
또 다른 그림 형식은 투언 따이 하이 맛(Thuan Tay Hay Mat, 그리기 쉽고 감상하기 쉽다)이다. 이 기법에서는 원근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신(神)은 그림의 높은 곳에 크게 표현되는 반면, 사람은 작은 크기로 그려지고, 동물과 자연경관은 그리는 이의 감정이나 의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데, 이러한 독특한 기법을 통해 인상적인 그림이 탄생하는 것이다.
베트남의 민화는 전통적 특성은 유지·발전시키면서도 문화교류를 통해 다른 회화의 영향을 받아 그 종류가 더욱 다양해졌다. 그 중에서 동호판화(Dong Ho paintings) 미술은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고유한 특성을 간직한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 중화권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 민화
베트남의 민화는 인접한 중국의 민간연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북부와 중부 지역의 민화가 민간연화와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도문명의 영향을 받은 남부와 추옹송산맥이 국경이 된 캄보디아와 라오스 접경 지역에는 중국 민간연화와 관련 깊은 민화가 없다. 중국 민간연화 권역의 서쪽 끝 경계선인 것이다.
음력설은 동아시아 국가의 대표적인 풍속이다. 베트남에서 음력설은 뗏(Tet)이라 한다. 뗏이란 원래 대나무의 마디를 지칭하는 것으로, 가족간의 연결, 살아있는 이들과 조상과 연결, 과거와 현재의 연결, 인간과 자연의 연결을 의미한다. 베트남에서는 음력설에 그림을 구입해 집안을 장식하고 새해를 축하하는 풍속이 전해온다. 음력설을 위해 제작된 회화, 즉 뗏 회화는 시기를 정확히 추정할 수 없지만 일찍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베트남이 중국과 이미 한나라 때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한나라 때부터 시작된 역사적 관계 속에 베트남 문화에는 중국 문화가 깊숙이 침투하게 되었고 중국의 문신(門神)이나 연화(年畵)의 풍속이 일찍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베트남의 민화는 15-16세기에 시작되고, 그것이 성행한 것은 18-19세기라 할 수 있다.

● 지역의 특성에 따른 대표 민화
베트남은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 후에를 중심으로 한 중부, 호치민시의 남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민화는 북부와 중부에 집중되어 있다. 남부는 참파왕국의 힌두교 유적이 상징하듯 중국문화보다는 인도문화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한자문화권의 중국식의 민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북부에서는 수도인 하노이의 항총(Hang Trong) 거리, 그리고 하노이 인근의 동호(Dong Ho)에서 민화가 제작되었고, 중부에는 후에 인근인 신(Sinh)이라는 향촌마을에서 제작되었다.

항쫑회화 (Hang Trong Paintings)
항쫑회화는 판화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채색을 한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 톈진의 량류칭 민간연화와 유사한 제작방법이다. 채색은 음영법과 선염법을 구사하는 고급 채색법을 사용한다. 항쫑회화의 채색은 매우 강하다. 베트남의 민화 가운데 가장 강렬한 색감을 보여주고 있다. 북경 인근인 톈진의 량류칭 민간연화도 채색이 강한 점을 보이는데, 이는 수도나 수도권 같은 도시 회화의 특징인 것으로 파악된다.
항쫑회화는 민간을 위한 그림 외에 때로는 사찰의 기둥이나 벽면을 단청하는 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조선말기 민화가들이 사찰 단청 작업을 도와준 일과 유사하며, 일본의 오츠에도 사찰 앞에서 불화를 팔다가 발달한 민화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민간 회화가 불교사원, 도교사원, 민간 신앙사원 등 사찰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항쫑회화는 그 기능으로 볼 때, 새해를 축하하는 그림, 집안을 장식하는 그림, 그리고 제사 때 붙여 사용하는 제례용 그림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동호판화와 비교하면, 제례용 그림도 많이 제작되고 동호판화보다 크기가 크며 판화와 회화를 겸하는 특징이 있다. 주제로는 등의 그림이 제작되었다.
항쫑회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어망월(鯉魚望月)>을 꼽을 수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잉어의 위용과 세련된 채색법, 그리고 강렬한 청색 등에서 민간 회화라고 보기에는 기술이 뛰어나고 조형상 활력이 넘치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항쫑회화가 부유한 도시민을 상대로 발달한 회화이기 때문인 것을 보인다.

동호판화 (Dong Ho Paintings)
동호는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시골의 조그마한 마을이다. 1960년대에는 300여 명의 마을사람 가운데 약 70%가 농한기에 동호판화를 제작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세 집만이 그 전통을 잇고 있다. 동호판화에는 베트남인들의 감정이나 소망이 담겨있어 민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고 베트남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호판화는 항쫑회화와 달리 색판화를 위주로 한다. 조(Do)라는 나무로 종이를 만들고 그 위에 조개 가루인 꼰띠업(Con Tiep)을 칠해 화판을 만든다. 이 지역에서 나는 티(Thi)라는 나무를 사용해 판목을 만들고, 판화의 안료도 자연산을 사용한다. 쟘(La Cham)이라는 나뭇잎으로 녹색, 소이 손(Soi Son)이라는 돌로 갈색, 조개 가루인 꼰띠업으로 백색, 화 호에(Hoa Hoe)라는 꽃으로 황색, 그리고 대나무 잎을 태운 재로 흑색을 만든다.
다색판화의 찍는 순서는 매우 흥미롭다. 내부의 색을 먼저 찍고 윤곽선과 글자의 흑색선은 맨 나중에 찍는다. 흑색의 단색판화도 제작되는데, 이 경우에는 목판을 찍은 뒤 붓에 흑색을 묻혀 가장자리는 진하고 가운데는 옅게 칠하는 선염으로 음영을 넣는다. 이 선염법은 항쫑회화만큼 정교하지는 않다.
동호판화의 주제를 보면, 영웅을 그린 그림, 전통축제를 묘사한 그림, 생활을 풍자한 그림, 문자도, 제사용 그림 등이 다루어졌다. 또한 풍속화가 많이 포함되어 있고, 사회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불공평한 문제를 고양이, 쥐 등 동물로 대신하여 우화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이 등장한다. 조선후기의 풍속화나 민화처럼 풍자와 해학이 번뜩이는 작품들이 많다.

신판화 (Sinh Paintings)
신(Sinh)이 있는 후에(Hue)는 베트남의 중앙에 위치한 대표적인 역사도시이다. 신은 후에에서 북동쪽으로 7km 떨어진 조그만 시골마을이다. 이곳에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판목을 찍고 그 위에 간단하게 손으로 채색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채색이 항쫑회화처럼 세밀하지 않고 해바라기 대에 매단 솜방망이에 물감을 찍어 휙 갈기듯이 칠하고 있다. 한 시간 정도 쓰고 불태워 버리는 신판화의 용도를 생각하면 그렇게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판화는 집안을 장식하는 판화가 아니라 제사 때 부적으로 사용하고 불태워 없애버리는 종교적인 회화이다. 이를테면 남자상의 경우, 어떤 남자든 평생에 한번 나쁜 액이 들어올 때 이 남자상의 판화를 구입하여 제단에 놓고 제를 지낸 다음 태워버리면 액땜을 한다는 것이다. 탑이 묘사된 판화는 제사 때 제를 지내고 태워주면 큰 집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탑은 분명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신앙의 대상인 탑이지만, 신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재산을 늘려주는 기원의 대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설날에는 색지에 용 그림을 새긴 부적을 가지고 제례를 지냈다.
신판화를 계승하고 있는 챤티남 할머니의 집에는 세 개의 제단이 있는데, 현재 주택의 거실에 해당하는 집의 중심 공간에는 나무로 만든 반터라는 큰 제단이 놓여 있고 오른쪽 대들보 위에는 나무로 만든 작은 반터가 있으며, 마당에도 콘크리트로 만든 반터가 세워져 있다. 집안의 반터는 조상 제사 때, 대들보 위의 반터는 혼인식에, 마당에 있는 반터는 자식이 죽을 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그만큼 이 지역에는 민간신앙이 깊이 퍼져있는데, 판화의 내용을 보면 고대 베트남의 신비로운 자연신앙뿐만 아니라 고대 베트남의 도교의 신, 불교의 신이 혼합된 양상을 보인다.
[글·정리 한혜진] 자료 출처_베트남 관광청, 베트남 민화연구 서설(2012, 정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