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를 무찌르는 용감한 크메르 무사들의 전통무예, 보카토를 아시나요?

최근 우리나라 청주에서 열린 국제무예 연무대회에 캄보디아 전통무예를 대표하는 보카토 선수단이 출전했다. 유네스코가 특별 후원하는 이 대회는 우리나라 전통무예인 태껸을 비롯해 20개국 60여 단체 550명이 참가했다. 캄보디아는 2013년 첫 출전 이래 정부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불참한 2014년, 2017년 대회를 빼고 금년까지 총 4번 출전했다.
지난 2013년 첫 대회에서 캄보디아는 예상 밖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번 대회 역시 입상권 성적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노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그럼에도 보카토 선수단은 자국의 전통무예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모습이다.
‘보카토’라는 무술은 우리에게는 그리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캄보디아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전통무술이다. 9세기 앙코르제국이 건설되기 전부터 전승되어온 무술로 추정된다. ‘보카토’라는 크메르어로 ‘사자를 내동이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오래전 오직 칼 하나로 사자를 물리친 전설 속 영웅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동남아에서 맹수로 유명한 호랑이 대신 인도 및 서남아문화권에 사는 사자를 소재를 삼은 것을 보면, 과거 인도에서 전해진 힌두교의 영향 탓이 아닐까 싶다. 또 한 가지, 중국의 전통무술인 쿵푸처럼 원숭이나 코끼리, 호랑이 같은 동물들의 몸동작을 흉내 내 이를 무술로 발전시켰다는 점이 흥미롭다.
보카토 무술의 원형은 12세기 건립된 앙코르유적내 바이욘사원 부조벽화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당시 이 사원을 건립한 자야 바르만7세가 보카토 무술을 배운 무술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확실한 근거는 없다. 태국 등 동남아에서 인기가 높은 킥복싱과 달리 보카토는 고대전투 백병전에서 유용한 실전용 무술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 무술에는 창과 칼 등 전쟁무기를 사용하는 기술도 포함된다. 이 무술은 주먹과 발뿐만 아니라 턱이나 팔꿈치, 무릎 관절을 이용한 공격이 주를 이룬다. 언뜻 봐서는 태국의 전통무술인 무예타이와도 매우 흡사하다. 따지고 보면 무예타이의 원류가 캄보디아의 보카토라는 캄보디아인들의 주장이 제법 설득력을 얻는다.
보카토는 우리나라 전통무예인 태권도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태권도처럼 실력과 훈련 경력에 따라 다양한 끄로마 천 색상으로 등급을 매긴다. 초보 단계는 흰색, 그 다음은 초록색, 파란색, 빨간색, 갈색, 마지막으로 검정색 등 총 5단계다. 각 등급별로 총 10단계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단계인 검정색 끄로마 천을 허리에 차려면, 최소 10년 이상을 수행해야 한다. 그 외 황금색 끄로마도 있다. 최고 경지의 경지에 오르거나 위대한 업적을 쌓은 자에게만 자격이 부여된다. 과거에는 무려 8,000개~10,000개에 이르는 다양한 기술이 존재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술은 1,000~2,000가지 정도다.
대 앙코르제국 이전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고유무술이지만, 70년대 하마터면 명맥이 끊길 뻔 했다. 당시 폴 포트 공산정권은 보카토를 가르치는 무술인들을 일종의 지식인들로 간주해 무참히 탄압하고 학살도 서슴치 않았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부 무술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거나 외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뻔 했던 전통무술 보카토가 극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무예인의 공이 무엇보다 컸다. ‘낌 산 센’이란 이름을 가진 인물이다. 18살 젊은 나이에 보카토를 배운 그는 용케도 서슬 퍼런 킬링필드 시대에서 살아남았다. 1979년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곧바로 베트남 괴뢰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보카토를 되살릴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캄보디아에 주둔한 베트남인들은 캄보디아 전통무예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결국 그는 1980년 초 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가 처음 정착한 곳은 텍사스주 휴스턴. 이후 자국 난민 출신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 롱비치로 터전을 옮겼고 그곳 YMCA에서 보카토 대신 합기도를 가르쳤다. 마음 속으로는 사람들에게 보카토를 가르치고 싶었지만 자국 동포들조차 보카토가 뭔지 모르거나 대부분 관심조차 없었다.
1992년 내전이 종식되고 평화시대가 정착되자 그는 그리던 자신의 조국으로 되돌아 왔다. 어느 날 우연찮게 만난 노로돔 시하누크 국왕으로부터 보카토를 부활시켜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용기를 내 수도 프놈펜에 작은 도장을 차리고 젊지만 가난한 청년들에게 보카토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보카토 전투기술의 원형을 제대로 복원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길고 긴 내전에서 살아남은 보카토 고수들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보카토 무술인들은 고작 네다섯 명 남짓. 하지만 이마저도 대부분 연령대가 60~90대의 고령인데다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자신들이 보카토 무술인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으며, 일부는 공개적으로 나서 보카토를 가르치는 일 자체를 꺼렸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그는 보카토 전통무술의 원형을 복원했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록으로 남겼다. 보카토를 복원하고 오늘날의 현대적인 무술로 계승 발전시킨 건 오로지 그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는 2012년경 그가 운영하는 프놈펜 외곽의 작고 허름한 도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무렵 한인체육대회를 앞두고, 캄보디아 전통무예인 보카토 축하 시범공연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기자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보름 후 펼쳐진 행사 날 멋진 보카토 공연을 교민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후로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우연히 현지신문을 통해 그가 이듬해인 2013년 씨엠립으로 옮겨 도장을 새로 차렸다는 기사를 접했다.
현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씨엠립으로 이주한 이유에 대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관광지가 캄보디아 전통무예를 알리기 적합한 장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장을 운영하는데 드는 경비는 대략 월 3천불 정도가 든다고 했다. 가난한 젊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무예를 가르치기에 늘 예산 부족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그에 따르면, 그를 도운 건 미국에서 알고 지난 친구들과 지인들이었다. 이 나라 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었다.
그의 열정 덕분에 보카토가 캄보디아 국민들로부터 조금씩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 뒤늦게나마 캄보디아 문화예술부도 전통문화계승차원에서 보카토 지원에 나섰다. 전국체전 등 국가단위 문화행사에 보카토가 빠짐없이 초청되기 시작했다. 2023년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제28회 아세안게임에도 보카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전망이다.
급기야 지난해 정부는 보카토를 세계문화무형유산에 등재시키기로 결정해 관련 서류를 유네스코에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2020년까지 심사가 연기된 상태다. 캄보디아 올림픽위원회 참 로운 사무총장에 따르면, 현재 다른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무술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등재유산이 없거나 적은 나라들을 우선 배려해 심사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2년 후로 정식심사가 늦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캄보디아는 보카토 말고도 현재 압사라 전통무용(2003)과 그림자연극인 스베이백(2006) 전쟁무용극인 테안 쁘랏(2015), 지난 2016년에는 캄보디아 전통기타연주인 짜페이 동 벵이 유네스코 지정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보카토는 이제는 캄보디아 액션영화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비롯한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초청 및 수상되며, 화제를 모은 바 있은 캄보디아 리얼 액션 영화 제일브레이크(Jailbreak) 격투신에도 보카토가 주된 무술로 등장, 눈길을 끈다.
때 마침 올 3월 프놈펜 짜토목국립극장에서 열린 캄보디아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우연히 그와 조우했다. 거의 6년만이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그의 머리는 백발에 가까웠지만, 다행히도 기자의 얼굴을 금새 알아봤다. 그가 무술 지도를 맡은 <제일브레이크>라는 영화를 봤다고 하자, 그는 무척이나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악수를 청했다. 과거 한인회 체육대회 때처럼 태권도와 나란히 보카토 시범을 보여줄 수 있냐는 농담 반 진담 반 질문에 그는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만들며 언제든 불러만 달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의 일대기와 보카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거의 마무리단계라며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자국의 전통무술, 보카토를 되살리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에 다시 한번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박정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