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무역특혜 전면 중단 검토 캄보디아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2013년 총선 당시 부정선거 관련으로 야당이 집회를 주도한 가운데, 프놈펜 봉제공장들을 중심으로 임금인상 파업이 수 개월간 이어진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훈센 정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61달러로 동결됐던 최저임금을 2013년 80달러를 시작으로 2014년 100달러, 2015년 128달러, 2016년 140달러, 2017년 153달러로 매년 20~25% 이상 인상시키며 근로자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애썼다.
총선이 끝난 이후에도 훈센 총리는 5년 후 치러질 다음 선거를 미리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총리는 1년 넘게 거의 매주 전국을 순회하며, 근로자들과의 소통과 스킨십을 강화했다. 출산휴가 수당 인상과 유급휴가를 늘리는 등 다양한 당근책을 내놓아 근로자들의 표심을 달랬다. 중국과 일본이 원조한 시내버스를 2년간 도시 근로자들이 무료로 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33년째 장기집권 중인 훈센 총리는 동시에 반대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고사·숙청 작업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야당의 예상 밖의 선전이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더 이상 좌시하거나 방치할 경우 다음 총선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비판세력들은 발본색원하는 한편 정적들을 향해서는 가차 없이 칼날을 휘둘렀다.
그걸로도 성이 차지 않아 같은 해 9월 제1야당인 구국당 총재 껨 소카를 한밤중 긴급 구속한데 이어, 세금 탈세를 빌미삼아〈캄보디아 데일리〉등 친야 성향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미국의 소리〉,〈자유라디오방송〉등 정부를 비판해온 현지 라디오방송국 20여 개 이상을 강제 폐쇄조치하고, 11월에는 새로 개정한 선거법을 악용해 제1야당인 구국당을 강제해산시켰다. 심지어 야당 정치인 118명의 정치활동을 향후 5년간 금지시키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결국 회유와 협박을 못 이긴 야당인사들은 대부분 해외로 도피해버렸다.
결국, 국민들의 눈과 귀가 먼 가운데 정치적 구심점마저 잃어버린 야당은 7월 총선에 출사표도 내지 못한 채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그 여파로 금년 7월 치러진 총선에서 훈센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인 인민당(CPP)이 125석 전석을 휩쓰는 사상 유례를 없는 압승을 거두었다. 캄보디아는 전세계 몇 안 되는 사실상 일당 독재국가가 됐고, 지난 1985년 33살 젊은 나이에 권좌에 오른 훈센 총리는 아시아 현존 최장수 장기 독재집권 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이 같은 결과에 실망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민주진영은 훈센 정부의 인권 및 언론 탄압과 반민주주의적인 독재정치를 비난하며, 뒤늦게 각종 제재에 나섰다. 앞서 미국 국무부는 정부 고위인사들의 미국 비자 발급을 중단시킨 바 있다.
내년 최저임금이 182달러로 확정된 지난 9월 5일, EU가 특혜관세혜택에서 캄보디아를 배제할 수 있음을 공식발표했다.
세실리아말스트롬EU집행위원은“캄보디아정부에 EBA(Everything but Arms·무기를 제외한 모든 것) 철회 절차 개시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다만, 향후 6개월 후에도 유럽연합측이 제시한 야당과 언론 탄압 등 반민주주의적 정치행태를 철회하는 등 상황이 명확하게 나아지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이에 대해 캄보디아 정부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외무부는 “편견에 기초하고 투명성이 결여된 극도로 부당한 처사”라며 비난했고, 마침 일본을 방문 중이었던 훈센 총리는 동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EU가 캄보디아에 부여하는 무관세·무쿼터 혜택(EBA)을 철회하고 관세를 내라고 하면 우리는 관세를 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협박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캄보디아 노동부 헹 수어 대변인 역시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캄보디아는 향후 국민소득 증가로 더 이상 특혜 관세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 기업들은 EU의 발표에 적잖이 당황하고 놀란 모습이다. 이중에서도 유럽수출 비중이 높은 섬유봉제신발 기업들이 가장 불안해하고 있다. 일각에서 베트남 등 주변 경쟁국과 비교 우위에 밀려 또 다른 주력 수출상품인 자전거와 신발, 쌀, 설탕 산업도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만약 유럽연합이 캄보디아에 대한 EBA를 철회하게 되면 당장 문을 닫는 공장이 늘 것이며, 이로 인한 실직자가 늘면 은행 빚을 갚지 못하게 돼 결과적으로 서민들을 상대로 소액대출을 해온 중소금융기관(MFI)들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 가장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캄보디아는 최근 수년 사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 기반한 중국의 집중투자로 인해 건설붐이 일어 호황을 맞고 있지만, 미중 간 무역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결과적으로 중국의 해외투자가 줄어들어 언제든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잠재적 위기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거기에 EU의 무역특혜철회로 큰 위기가 닥쳐 올 수 있고 이는 훈센 정부 입장에선 상상하기조차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지 상황에 정통한 경제전문가들은 그 같은 시나리오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한, EU의 경제제재조치가 사실상 흉내만 내는 솜방망이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섬유봉제의류신발업 대신 설탕이나 일부 농산물 등에 한해 형식적인 일부 제재조치를 하는 수준에서 멈출 것이란 주장도 일부 나온다.
한 전문가는 “국내외 일부 언론들이 EU의 무역관세혜택철회로 당장 한인기업들에게 피해가 갈 것으로 떠드는데, 이는 국제정치 세계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질타했다. 그는 덧붙여,“EU는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가 아니다. 21세기 들어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가난한 나라를 압박하거나 못살게 구는 게 자신들의 정치, 외교적 이득 뿐 만 아니라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데 있어서도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간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EU의 그 같은 제재 방침은 국제 여론과 인권단체들을 의식하거나 달래기 위한 일종의 제스쳐일 뿐 실제로는 아시아 최빈국을 상대로 그 같은 강력한 제제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캄보디아의 또 다른 거대수출대상국인 미국의 생각은 어떨까? 트럼프가 집권한 이래 자국이익 우선주의를 강화 중인 미국 입장에선 남의 나라 민주주의는 전혀 관심 밖 일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이 지역 주도권 싸움에서 중국에게 더 이상 밀리지 않으려면 캄보디아를 너무 구석으로 몰아붙이지는 않는 게 좋다고 판단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중국에만 의존하지는 않을 것”
미국의 대캄보디아 제재 조치 역시 EU와 마찬가지로 인권단체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매우 형식적인 수준에서 흉내만 내다 끝내거나 상호이익이 되는 적당한 딜을 성사시키며 관계개선에 나서는 등 미국이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외교정책을 펼칠 것이란 게 현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측이다.
정부자문관으로 일한 바 있는 한 경제전문가는 “EU와 미국 등 서방 진영와의 적당한 타협 대신 대캄보디아 제1 투자국인 거대 중국의 경제력에 의존해 일시적인 경제위기를 막고 또 다른 돌파구를 찾으려 할 것이란 일부 외신들의 분석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노련한 정치인 훈센 총리는 너무 한쪽 편에 쏠릴 경우 그가 치르게 될 대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겉으로만 큰소리를 치고 있을 뿐, 훈센 총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EU 및 미국과 물밑 조율에 나서는 등 관계개선을 통해 난국을 타개할 것”이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33년이나 장기 집권해온 훈센 총리가 자국 경제를 스스로 무너뜨릴 만큼 그렇게 어리석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