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래기술 경연 CES 2019

■ 조촐했던 전시회가 최대 IT쇼로
52년 전인 1967년 6월24일 미국 뉴욕에서 가전업체 100여 곳이 참가한 조촐한 규모의 가전전시회가 처음 열렸다. 전시회는 ‘시카고 라디오 쇼’에서 떨어져 나온 소규모 가전 행사였는데, 4일간 행사장을 찾은 방문객 수가 1만 7천 500명에 불과했다. 전시회 이름은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반세기가 흐른 지금 전 세계 첨단 기술이 한자리에 모여 ‘지상 최대 가전·IT 전시회’라고 불리는 CES의 시작은 이처럼 약소했다. 1998년부터는 라스베이거스 연례행사로 전환됐으며 이후 CES는 해를 거듭하며 몸집을 불렸다.
최첨단 전자기기들이 CES를 통해 세상에 데뷔했고, IT업계 경쟁사들은 CES에서 저마다 기술력을 뽐내며 자존심 경쟁을 펼쳤다. 그러면서 전 산업 영역을 아우르는 ICT 경연장으로 세계 기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권위있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CES를 통해 소개된 신제품은 현재까지 70만 개가 넘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중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기술들도 적지 않다. 1968년에는 컴퓨터 마우스가 첫선을 보였고 1970년에는 VCR(비디오카세트리코더)이 CES를 통해 공개됐다. 이후에도 CD(1991년), DVD(1996년), HDTV(1998년) 등 전자·IT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새로운 기술 다수가 CES에서 세상의 빛을 봤다. 21세기에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와 플라스마TV(2001년), 블루레이 DVD(2003년), IP TV(2005년), 3D HDTV(2009년), 플렉시블 OLED(2013년), 3D 프린터(2014년), 가상현실(2015년) 등도 이곳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 한국산 미래기술을 선보이다
국내 대기업들도 CES에서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00년 이후부터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해 CES서도 전시회 주요 고객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전자는 CES 2019에서 최대 규모의 전시장을 꾸렸다.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IoT), 5G, AI와 협업의 리더십을 화두로 삼아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였다. 첫 선을 보인 QLED 8K 98평형 TV는 올해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또한 자동차 전장 전문기업 하만과 개발한 미래형 커넥티드카 조종석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을 공개했다.
LG전자는 ‘CES’의 꽃’이라 불리는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LG전자는 세계 최초로 화면을 둥글게 말았다 펴는 플렉서블 TV 시그니처 올레드TV R을 선보였다. 사용자가 TV를 시청할 때는 화면을 펼쳐주고, 시청하지 않을 때는 본체 속으로 화면을 말아 넣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IT전문매체는 물론 포브스,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언론들도 올해 CES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제품 가운데 하나로 ‘LG 시그니처 올레드TV R’을 거론하며 올해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최근 몇 년 전부터 CES가 미래 산업 전반으로 전시 테마를 확장하면서 이종업계인 국내 대기업들도 속속 CES에 참석하고 있다. 올해는 네이버가 처음으로 CES에 참석해 로봇과 AI·음성인식 기술을 선보였으며, SK그룹에서도 4개 계열사가 공동 부스를 꾸려 다양한 모빌리티 기술을 소개했다.
로봇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데니스 홍 UCLA 교수는 네이버가 선보인 로봇에 대해 찬사를 쏟아냈다. 홍 교수는“네이버가 만든 로봇팔 앰비덱스(AMBIDEX)는 예술의 경지”라며“기계적 디자인에서 감동을 받았다. 감히 얘기하자면 CES 2019에 나온 로봇 중에서 승자는 네이버랩스”라고 거듭 칭찬했다.
SK텔레콤은 CES에서 SM엔터테인먼트그룹과 음원 분리 기술을 비롯한 차세대 미디어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음원 분리 기술은 오디오 신호 분석 및 AI 기술을 결합해 음원에서 가수 목소리와 반주 등을 분리하는 기술이다. 두 회사는 AI 기반 음원 분리 기술을 시작으로 ICT 기술을 SM엔터테인먼트의 다양한 콘텐츠와 결합, 신규 사업을 개발·추진할 계획이다.
■ 자동차 신기술의 각축장
최근 들어 CES는 전시 기술테마의 영역을 무서운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2∼3년 전부터 의미 있는 자동차 관련 신기술이 CES를 통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CES는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는 별칭까지 얻게 됐다. 국내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GM·도요타·벤츠·포드·BMW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올해에도 전기차·수소차 기반의 자율주행 기술과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BMW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자율주행 차량으로 개조해 ‘배트맨이 사는 고담’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전시했다. 또한 차세대 컨셉트카로 i넥스트를 공개했으며, AI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교통 현황을 파악하는 기술을 선보여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우디는 순수 전기차인 아이콘(AICON)을, 메르세데스-벤츠는 미래지향적 콘셉트카인 비전 EQ 실버 애로우(VISION EQ SILVER ARROW)를 선보였다.
현대모비스는 미래 도심 자율주행 콘셉트카 ‘엠비전’(M.VISION)을 공개했다. 현대모비스가 레벨 4 이상의 미래차 콘셉트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모비스는 엠비전을 통해 차량 지붕에 모듈화한 자율주행 키트를 활용, 주변 360도를 정확히 인지하는 첨단 콘셉트를 선보였다. 라이다(LiDAR·레이저를 이용한 레이다) 센서 4개와 다기능 카메라 센서 5개를 한데 모은 자율주행 키트는 엠비전의 핵심으로 꼽힌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스위스 기업 웨이레이(Wayray)와 손잡고 개발한 홀로그램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을 세계 최초로 탑재한 제네시스 G80 차량을 선보였다. 현대자동차는 걸어 다니는 자동차 ‘엘리베이트’ 콘셉트카를 공개하고 축소형 프로토타입의 작동 모습을 시연했다. 엘리베이트는 바퀴 달린 로봇 다리 4개를 움직여 기존 이동수단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과 상황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신개념 모빌리티로, 로봇 다리를 이용해 무대를 걸어 다니다가 설치된 계단을 쉽게 오르내리는 모습과 다리를 접어 일반 자동차로 변신하는 모습 등을 선보였다.

■ 로봇과 AI 선진기술을 한눈에
글로벌 IT업계 최강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로봇사업에 진출했다는 점은 로봇산업 발전이 가속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삼성봇을 공개하며 연내 출시를 공언했고, LG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가정용, 상업·공공용, 산업용, 웨어러블, 엔터테인먼트 등 5대 축으로 로봇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구상을 밝혔다.
로봇과 함께 인공지능(AI)도 올해 CES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이 확인됐다. 선두주자는 역시 세계 최대의 인터넷 업체 구글이었다. 올해 구글은 지난해보다 3배 큰 부스를 세우고 내부에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와 호환되는 다양한 가정용 제품들을 전시해 가전업체를 방불케 했으며 화려함 면에서 대형 가전업체에 뒤처지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전시장에 스마트홈 콘셉트의 부스를 꾸리고 사물인터넷(IoT)으로 연동된 TV·냉장고·세탁기·공기청정기·에어컨 등이 AI 생태계 안에서 음성명령으로 작동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연스럽게 리모컨은 사라졌다. 하이센스·창훙·하이얼 등 중국 가전업체들도 일제히 스마트홈 전시장을 꾸렸다. 다만 국내 기업보다 제품군 규모가 작았고, 시연 도중 음성명령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등 아직은 다소 미흡한 수준이었다. AI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하드웨어 생산업체에 AI 플랫폼을 제공하는 구글·아마존의 CES 내 위상은 올해 더욱 커졌다.

CES는 올해 전시 테마로 ▲5G와 사물인터넷(IoT) ▲오토모티브 ▲홈·패밀리 ▲로봇·기계지능 ▲e스포츠 기술 등이 소개될 ‘스포츠’와 ▲3D프린팅 기술 등이 다뤄질 ‘디자인·제조’ ▲가상현실을 비롯한 ‘실감형 엔터테인먼트’ ▲헬스 ▲블록체인 ▲광고 및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스타트업 등 총 11가지를 선정한 바 있다.
한편 글로벌 전자·IT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 기업들은 이번 CES에서 기가 한풀 꺾인 모습을 보였다. 올해 CES에 참여한 중국기업 수가 크게 줄었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선 미·중 무역 전쟁의 불똥이 세계 CES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까지 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참가한 중국 기업 중에서는 디스플레이 업체인 로욜이 선보인 휘어지는 디스플레이가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글_한혜진, 자료_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