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도 앞·뒤가 있다”

무역관에 새로운 현지인 직원이 들어왔다. 사회 초년생은 아니지만, KOTRA가 하는 우리 중소기업의 수출지원 업무는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업무와는 다른 경우가 많아 분명 생소할 터였다.
무역관의 모든 직원이 번갈아 가면서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와 노하우를 새 직원과 공유를 했는데, 나도 내가 하는 업무를 공유할 기회가 있었다. 새로운 직원이 나와 같은 지사화 담당이기에 지사화 사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가장 중요한 업무인 바이어 만나기에 대한 그동안의 노하우를 전달하려고 했다.
입사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지사화 기업을 하나 맡게 되어, 카탈로그와 샘플을 받고 제품에 대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무역관이 보유한 정보를 통해 몇몇 바이어를 추려서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씩 약속을 잡아서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만난 바이어 회사는 현지 대형 토목 및 부동산 업체인데, 대표의 딸과 약속이 잡혔다. 딸은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경영과 마케팅을 공부하고 부모를 돕기 위해 캄보디아에 돌아왔다고 하는데, 나의 KOTRA 소개와 제품과 한국 회사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마자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그 품목의 글로벌 브랜드는 어떤 게 있고, 그 중 캄보디아에 진출한 브랜드는? 한국에도 글로벌 브랜드와 경쟁을 하고 있을 텐데, 그들과는 어떤 차별성으로 경쟁하는지? 한국 회사는 지금 한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은 어떻게 되는지? 한국 제품의 가격과 품질 포지셔닝은? 이미 품목 불문하고 저렴한 중국 제품들은 캄보디아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데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차별성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질문과 바이어의 기백에 눌려 횡설수설하며 “글로벌 기업 제품은 비싸고 우리 제품은 품질은 뒤지지 않은데다가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중국의 저가 제품보다는 당연히 비싸지만 품질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라는 들으나 마나 한 대답을 했었다.
차분히 듣던 바이어가 몇 마디 꺼낸다.
“당신은 제품과 시장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당신이 추천하는 제품을 살 마음이 생기겠냐? 당신은 소개하면 끝이지만, 우리는 자원과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데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그로기 상태가 된 나는, 마지막 바이어의 돌직구로 인해, 흔히 말하는 멘붕(?) 상태가 되었다. 내 얼굴은 아마도 우체통보다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볼이 뜨끈뜨끈했고 셔츠 속에서 열이 나는 동시에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어색하게 분위기 속에서 더 잘 알아보고 다시 오겠다고 하며 미팅을 끝냈다. 돌아오는 길에 바이어의 팩트 폭력에 너무 부끄러워서 화가 날 정도였지만, 다 맞는 말이었다. 나야 바이어가 수입해서 실패해도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들에게는 회사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사항이 될 수도 있기에 최대한 자세히 알아보고 싶고, 질문하고 싶은 것이며, 이런 중요한 일을 면밀한 준비도 없이 찾아온 KOTRA 직원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싶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현듯, ‘어떻게 KOTRA 직원이 단기간에 제품과 현지 시장에 대해서 다 알 수가 있을까, 가능한 일이기는 한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했다. 어떻게 국제시장, 현지시장, 한국시장, 중국을 비롯한 경쟁제품의 동향 등 바이어의 모든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다는 말인가. 동종 업계에서 현직으로 일하고 있어도 짧은 시간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지사화 사업을 5년, 10년 할 것도 아니고 기업이 그만 큼 기다려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년짜리 사업인데 1달 만에 정보를 파악하고 바이어를 만나기 시작해야만 성과가 1년 안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니 오히려 해답이 생각났다. 100%는 못 하겠지만 최대한 바이어의 의문을 가질 사항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내가 생각한 해답이다. 바이어가 한둘이 아니고 각자의 사정과 제품을 보는 관점이 다른데, 미리 어떤 질문을 할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전략을 짠다면 중요한 바이어를 만날 때 바이어가 물어보지 않아도 미리 술술 얘기하는 게 가능하다. 학창 시절에 시험을 칠 때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것처럼 미리 질문 사항을 확인하는 것이다. 어떻게 확인하냐고? 거래 가능성이 낮은 바이어나 한국 기업이 일반적으로 원하지 않는 규모가 작은 바이어를 먼저 만나고 점차 규모가 크고 거래 가능성이 높은 바이어를 마지막에 만나는 것이다. 바이어마다 서로 관심사가 다르지만, 일반적인 시장 정보와 바이어들의 관심사는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의 시장과 제품 정보를 알게 되어 최종적으로 중요한 바이어를 만났을 때 현업에 있는 바이어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 바이어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바이어는 KOTRA에 신뢰를 가지게 되고 그 신뢰는 우리 기업과 제품에도 이어지게 된다.
상상해 보라. 전문가인 바이어와 미팅을 하면서 현지 시장이나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일방적인 질문이나 전달이 아닌,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얘기하는 것을. 만약 당장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차후에 다시 만나기도 마음이 편할 것이다. 제품이나 현지 시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바이어와 미팅이 걱정되는가? 거래 가능성이 낮고 규모가 작은 바이어부터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