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도시 25. 재회 (2)

기서는 마리의 말을 듣고 마음 한편에 찔리는 것이 있었지만 능청을 떨어댔다.
“아, 내가 그랬던가? 난 우리는 항상 서로 속마음을 공유하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그래 보자고. 앞으로 계획은 어떤 데?”
“당분간 관망 중이야.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면 당신하고 상의할게. 난 이 땅에선 영원한 이방인이 고, 당신은 이재에 밝은 아버지를 닮아서 이미 바탐방 재벌 서열에 올랐잖아. 앞으로는 내가 다시 사업을 하면 당신을 고문으로 모셔야지.”
“나 삼롯에 500헥타르 농지를 계약했는데, 오늘이 중도금 지급하는 날이야. 같이 갔다가 바탐방으로 가자. 자기를 이 빠일린 산골에 버려두고 나 혼자 갈 수는 없잖아.”
“주유소 재벌이 이젠 농사도 지으시려나?”
“아니, 나는 농사의 농자도 몰라. 매도자가 현금이 급해서 헐값에 나온 매물이라 그냥 잡아둔 거야.”
기서는 마리와 함께 삼롯을 거쳐서 빠일린 시내로 향했다. 썸뻐으산을 지날 때 동굴에서 나온 수만 마리의 박쥐가 떼를 지어 저녁 하늘을 가르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기서는 마리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한 달 동안 장기 투숙을 예약하였다. 저녁이면 마리의 집에서 그녀의 두 딸과 함께 식사하였다.
“엉신, 나는 엉신이 우리 아빠 했으면 좋겠다.”
“다라야, 엉클 신이라고 똑바로 말해야지.”
“엉클 신은 어려워. 엉신이 훨씬 말하기 좋은데. 괜찮지, 엉신?”
“그럼, 나도 우리 다라가 엉신이라고 불러 주는 것이 더 좋은데.”
“그것 봐, 마미. 엉신이 좋다잖아.”
마리의 두 딸은 기서를 아빠처럼 따랐다. 특히, 다섯 살짜리 둘째 딸 다라는 한시도 기서 옆을 떠나지 않고 애교를 떨어댔다. 기서는 그런 아이들을 볼 때, 한창 재롱떨 나이에 받아줄 아빠가 없는 아이들의 허전한 구석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짠해지곤 하였다. 아이들이 잠들면 기서와 마리는 토론을 시작하였다. 마리는 서른다섯 살로 많지 않은 나이지만 이재에 밝은 아버지의 교육 탓인지, 그녀가 꺼내는 논쟁의 화두는 항상 경제나 사업이었다.
“자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작금의 이 국제적인 금융위기가 얼마나 오래갈 것으로 생각해?”
“글쎄. 아마도 10년은 더 지나야 세계 경제가 회복되지 않을까?”
“이 불황이 10년 이상 갈 것이라는 근거는 무엇인데?”
마리가 묻는 말에 기서는 대답하지 않고 잠시 지난날을 회상하였다. 1997년 7월에 태국과 8월에 인도 네시아에서 시작된 통화위기로 동남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가 30%~40%씩 평가절하되면서 신용경색을 일으켰다. 국제금융자본가들은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채권 회수를 서둘렀고. 그에 따라 아시아국가들이 단기외채시장에서 차입연장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IMF의 구제금융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그때 캄보디아는 내전으로 뒤숭숭한 시절이었으니까 마리는 이런 사실을 몰랐지만, 한국 정부도 그해 12월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3년 8개월 만인 2001년 8월에야 구제금융을 변제하고 IMF체제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인한 경제불황은 2003년 말까지 지속하였고 2004년에 들어서서야 한국 경제가 다시 숨쉬기 시작했으니까, 자그마치 6년이 걸렸다. 이것은 단지 한국의 경우이고, 동남아 시아 국가들의 불황은 그보다 더 오래 갔다.
“11년 전의 아시아 환란이 국지적인 태풍이었다면 이번에 일어난 국제적인 금융대란은 가히 쓰나미 격이야. 10년 이내에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는 절대 쉽지 않을 거야.”
“그러면 이 시기에 우리가 취할 행동은 무엇일까?”
“당신이 말하는 우리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데? 인류 전체? 또는 캄보디아 시민? 아니면, 당신과 나?”
“짓궂기는…. 당연히 나와 자기지.”
“이런, 몸 둘 바를 모르겠구먼. 나 같은 무산자를 당신 반열에 올려주다니.”
“자기는 내 사람이니까, 당연히 나와 함께 우리가 돼야 하지 않나?”
“듣기 싫은 말은 아니네. 하여튼 이 상황에서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취할 행동은 정반대되지 않을까?”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