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뢰(信賴), 이 말만큼 인간관계를 명쾌하게 규정짓는 단어가 있을까? 신뢰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Trust는 독일어 Trost(편안함)에서 왔다고 한다. 신뢰가 없다면 불편하다는 의미와 다름없다.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인 중국어와 일본어 모두 신뢰(信賴)로 쓰며, 베트남어도 ‘신뢰, 신임, 신용’을 의미하는 표현을 Tin cậy. Tin tưởng. Tín dụng 등으로 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서로 믿고 의지함’을 의미하는 신뢰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자기자신에 대한 신뢰(Self-Confidence)를 근본으로 가족 간의 신뢰는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다. 비즈니스도 정치도 경제도 투자도 과학도 심지어 사기꾼도 자기들끼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저 사람을 믿어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다. 아주 현실적이면서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이라면 ‘돈이 될까’ 하는 생각부터 한다. 사실 누군가를 믿기로 할 때 우리는 자기 운명의 일부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신뢰와 관련된 선택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운명이 될 수도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신뢰할 수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은 인간관계가 워낙 복잡하고 많이 속고 살다 보니 사람보다 통계나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AI)에 의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투자, 회계, 검진, 수술, 재판, 변호, 중매, 저작, 예술, 종교 등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람의 역할을 AI가 대체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생각이다.
나라 안팎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고도의 정치 행위인지 모르겠지만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들어선 새 정부의 적폐청산이 줄기차다. 과거의 정치(행정) 행위에 대한 폐습 철폐라고 하지만 전반적인 불신에 기인한 건 아닌지 생각하는 국민도 많다. 대외적으로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파워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북한도 썩 믿을만한 나라(지도자)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이런 나라 정부 지도자들이 하는 행위도 믿음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을 키워 막아보려는 방어기제(防禦機制, Defense Mechanism)가 작동하면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여기저기 팽배하다.
경제분야도 마찬가지다. 믿을만한 투자처와 상품을 찾기 위한 갖가지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최소한의 또는 윤택한 삶을 위한 개인들의 몸부림도 처절하다. 기업은 일부 업종을 제외하곤 생존의 기로에서 존폐의 문턱을 넘나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한마디로, ‘죽느냐, 사는냐. 이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다. 그리고 이 어려움의 기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경쟁과 신뢰 문제’로 요약할 수 있겠다. 사실, 경쟁은 자연계에선 생존전략이다. 생명체는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 신뢰는 다 같이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신과 다른 생명체의 공생관계를 정의한다. 어려움은 극복되어야 한다. 갈등(葛藤)은 글자 그대로 칡과 등나무처럼 엉켜만 있어선 안되고 어느 정도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려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신뢰가 그 바탕이다.
신뢰는 자기 자신감, 종교적인 신념, 부모 자식 간, 동물의 어미와 새끼 간이 아니면 무한신뢰가 아닌 일정한 조건이 있다. 신뢰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자신에 대한 자기신뢰가 가장 우선이고, 남을 믿는 순서로 나아가야 한다. 타인과는 서로에 대한 믿음의 정도(程度), 깨졌을 때의 벌칙, 자신이 행할 행동 등을 미리 정할 필요가 있다.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 it)’, 이 말을 따르기가 쉽지 않지만 인생을 살면서 배운 지식과 지혜 경험 그리고 개인의 성찰에서 온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뢰는 인간관계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즉 믿음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바로 설 수 없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가족, 동료, 정치인, 지도자, 기업, 조직, 국가 등 믿지 못할 사람과 믿음 없는, 믿지 못하는 세상은 어떻게 펼쳐질까? 정답은 나도 알고, 여러분도 잘 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