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세안간 정치안보 분야 협력


– 주아세안대표부 김지영 1등 서기관


아세안은 우리에게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이자, 중요한 파트너이다. 한국과 아세안간의 교역액은 작년의 경우 1,500억불을 초과하였고, 2008년 이후 아세안은 중국에 이어 우리의 제2위 교역상대이다. 또한, 2012년부터 아세안 지역은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해외 방문지로, 작년 한-아세안간 상호 방문객은 1,300만명에 육박하였다. 작년 11월 말 한 여론조사에서는 약 65%의 국민들이 우리나라의 경제, 외교, 안보를 위해 아세안과의 협력관계가 중요하다고 답변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우리나라에 대한 아세안의 중요성을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아세안과의 관계를 수출, 투자 등 경제 측면이나, 관광 및 인적교류 등 사회문화 측면에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아세안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격상한다는 우리 정부의 대표 외교정책인 “신남방정책”은 사람(People), 상호번영(Prosperity), 평화(Peace)의 3대 축을 기반으로 추진되고 있다. 아세안 역시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3대 분야에서 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경제 및 사회문화 분야에 비해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공동체 형성은 진전이 더디긴 하지만, 아세안의 당초 출범 계기가 역내 국가간 갈등, 역외 강대국간 패권 경쟁 속에서 동남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다는 정치안보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으며, 작년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 관점’ 채택에서 볼 수 있듯 지역내 평화와 안정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아세안은 중립, 비핵화, 주권 존중, 내정 불간섭을 아세안 헌장 및 역내 협약에서 핵심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남북관계, 한미동맹, 북핵문제 등에 직면하고 있어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 분야나 사회문화 분야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한-아세안 관계는 정치안보 분야에서도 분명히,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한국과 아세안간의 관계는 1989년 최초로 대화관계를 수립한 이래 30년간 지속 확대, 심화되어 왔다. 한국과 아세안은 1989년 무역, 투자, 관광 분야에서 대화‧협력을 하자는 “부분 대화관계”로 출발하여 불과 2년 후인 1991년 완전한 “대화관계”로 발전하였고, 2004년에는 포괄적협력동반자관계, 2010년 전략적동반자관계로 발전하였다. 그 과정에서 한-아세안 협력의 제도적 기반도 강화되었다. 한국은 아세안과 상품(2006년), 서비스(2007년), 투자(2009년) 부문에서 FTA 협정을 타결하고, 아세안과의 협력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국제기구인 한-아세안 센터를 출범(2009년)시켰으며, 또한, 점점 역할이 강화되는 아세안 사무국과의 업무 협의‧공조를 강화하고, 대아세안 외교를 전담하기 위해 아세안사무국이 소재한 자카르타에 주아세안대표부를 개설(2012년)하였다.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을 천명한 후에는 대통령 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외교부에 아세안국을 신설하고, 주아세안대표부를 4강 및 유엔 공관 수준으로 격상하여 조직과 인력을 확충하였다.


아세안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의 중요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아세안은 우리의 한반도 정책을 지속 지지해온 우호그룹으로, 아세안 외교장관‧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 주도 회의체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물론, 남북 및 북미관계 개선 노력에도 협력해왔다. 아세안 10개국은 모두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를 하고 있으며, 아세안이 주도하는 ARF는 북한이 참여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다자안보협의체이다. 과거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시에는 아세안 외교장관 또는 정상회의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도발 자제 및 대화 복귀를 촉구하였으며, 남북 정상회담 또는 북미 정상회담 등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때는 아세안 및 각 회원국이 한반도 비핵화 진전 노력을 평가하면서 아세안도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북미 정상간 역사적인 두 차례의 회담이 모두 아세안에서 개최되었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18년 아세안게임 당시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남북 공동입장 및 단일팀 구성을 지지하고, 개막식에 남북한 고위 대표단을 동시에 초청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은 또한 ARF, 아세안 확대국방장관회의(ADMM+)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2017년 이후 매년 서울안보대화 계기 아세안과 국방차관회의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대화 채널을 통해 역내 안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전투기, 잠수함 수출 등 아세안 국가와의 국방‧방산협력도 추진되는 등 전통적인 안보‧국방 분야에서의 협력도 점차 확대되어 나가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간 보다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는 사이버 테러, 자연재해, 테러리즘, 초국가범죄 등 국경을 초월하여 영향을 미치는 비전통 안보 분야이다. 이러한 비전통 안보 분야는 아세안이 정치안보 공동체 형성 과정에서 높은 관심을 갖고 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2015년 방콕 사원 테러, 2018년 인도네시아 폭탄 테러 사건,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의 마약 유통 및 관련 범죄 발생 등 아세안 국가들은 테러 및 초국가범죄에 높은 관심을 갖고 아세안 법무장관회의, 마약관련장관회의, 초국가범죄장관회의, ARF 등의 협의체를 통해 공동 대응방안을 오래 전부터 마련해왔다. 이러한 아세안의 높은 관심을 감안, 초국가범죄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모색하고 아세안의 법 집행 역량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작년 한-아세안 초국가범죄 장관회의를 신설한 바 있다. 또한, 지진, 쓰나미 등 자연재해, 재난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 재난관리 전문가를 양성하고, 아세안 회원국 담당 공무원 연수 사업 등 한-아세안간 다양한 협력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연초부터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는 한-아세안간 보건 및 인간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게 되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들에게 진단키트 등 의료물품을 지원하였으며, 코로나19 방역 경험을 공유하고, 감염병 예방‧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웹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미중간의 경쟁 격화, 전세계적 보호무역 추세, 코로나19로 인한 외교 및 업무방식의 변화 등 대한민국을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은 결코 녹록치 않다. 아세안은 지리적, 경제적으로, 그리고 안보 차원에서도 우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운명공동체이다. 한국과 아세안이 공동으로 직면한 도전들은 역으로 한-아세안간 협력과 공조를 강화는 동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과 아세안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면서 진정한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로 나아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