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서 좌절한 선수가 말레이시아서 날아오르기까지…

투자 위축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K리그에 국내 선수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신인 선수 같은 경우 프로 진출에 성공하더라도 좀처럼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상당수가 축구화를 벗기도 한다.
K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쉽지 않은 선수들에게 동남아시아의 축구 클럽들이 훌륭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현우(트렝가누, 28) 역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거쳐 동남아 최상위 리그로 평가받는 말레이시아 슈퍼리그(1부)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월 8일 서울 강남역 인근 카페에서 김현우 선수를 만났다. 아래는 김현우 선수와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 순탄치 않은 프로 생활
김현우는 2008년 광운대에 입학해 ‘2012 U리그’ 권역 무패 우승에 일조하며 알짜배기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대학 무대 활약은 프로 입단의 디딤돌이 됐다. 광운대 졸업 후 K리그 전통강호인 성남 일화(현 성남FC)에 입단하면서 프로 데뷔에 성공했다.
“성남이 리그 개막 후 1무 2패로 부진에 빠진 상태였습니다. 당시 성남을 이끄시던 신태용 감독님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신인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죠. 엔트리만 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대전시티즌전(8R)에 선발 출전했어요.”
이때까진 김현우에게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해부터 그의 축구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2012년 9월, 문선명 통일그룹 총재가 별세한 이후 성남이 속한 통일그룹이 스포츠 사업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팀은 핵심 선수들을 제외하고 구조 조정에 돌입했다. 성남을 떠나는 선수들 중엔 김현우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졸지에 무적 신분이 된 김현우는 군 복무를 마치고 2016년 내셔널리그 대전 코레일에서 재기를 노렸다. 리그 데뷔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감독이 추구하는 색깔과 맞지 않아 5경기 1골에 그치며 도태되고 말았다.

▣ 말레이시아에서 이뤄낸 인생 역전
“동남아 리그를 처음 갈 때요? 솔직히 말해서 가고 싶지는 않았죠.”
대전 코레일을 나온 김현우는 에이전트 사업을 하는 대학 동기의 도움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굳이 동남아까지 가서 축구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김현우는 재기 할 수 있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캄보디아 리그 프놈펜 크라운에 둥지를 틀었다.
동남아가 한국보다 낮은 축구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편견은 하루아침에 깨졌다. 과정을 중시하는 국내와는 다르게 무조건 골을 넣어야 한다는 점이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김현우는 “동남아에서는 과정이 좋아도 골을 못 넣으면 좋은 공격수가 아니다”라고 동남아 축구 스타일을 설명했다.
“동남아 리그는 스트라이커의 골 결정력과 피지컬을 중요시합니다. 상대 수비수 대부분이 피지컬이 우세한 남미, 아프리카 출신이기 때문에 기술보다는 몸싸움으로 돌파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불어 그는 “색안경을 벗고 동남아 축구를 바라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동남아 리그가 K리그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깔려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프라 측면에선 한국보다 뒤처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프로 리그 열기가 높은 편이라 경기마다 만원 관중이 들어서 집중을 안 할 수가 없죠. 용병 대우도 한국보다 수준 높다고 느낀 적도 많았고요.”
캄보디아 적응을 마친 김현우는 총 8경기에서 5골을 터트려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후 샨 유나이티드(미얀마)를 거쳐 지난해 여름 말레이시아 프리미어리그(2부) PKNP로 이적해 본격적으로 말레이시아 무대에 도전했다.
순조로운 시작은 아니었다. 데뷔전 이후 한동안 골 가뭄에 시달릴 정도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김현우는 캄보디아와 미얀마에서 뛰었던 경험을 떠올려 차분히 기회를 기다렸다. 적응이 끝난 그는 1·2부리그 팀이 함께 겨루는 말레이시아컵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8강전에서 만난 1부 소속 펠다와 경기에서 1골 1도움(1, 2차전 합계)을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아쉽게도 팀은 합계 4-5로 패해 4강 진출이 좌절됐지만, 자신감을 얻은 김현우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10월에만 4골 3도움을 쌓아 이달의 선수 후보에 올랐다. 시즌이 끝나고 그가 받은 성적표는 7골 5도움(15경기 출전). 눈에 띄는 성과는 1, 2부 통틀어 말레이시아 올해의 선수 후보로 선정되는 경사로 이어졌다. 내셔널리그에서조차 뛸 수 없었던 그가 이뤄낸 인생 역전이었다.

▣ 얼마 안 남은 만큼 더 최선을
새 시즌을 앞두고 김현우는 1부리그 소속 트렝가누와 1년 계약했다. 6개월 단기 계약이 주를 이루는 말레이시아에서 1년 계약은 그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기량을 인정받았다곤 하나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죠. 캄보디아, 미얀마를 거치면서 쌓은 내공이 있으니 조급하지 않고 보여줄 계획입니다. 몸 상태도 이상 없어 새 시즌도 기대해볼 만 해요.”
타국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국내 복귀를 바라지 않냐는 질문에 김현우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저도 어느덧 나이가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으니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죠. K리그에서 뛰면 좋겠지만 재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인정받으면서 오래도록 커리어를 이어가는 게 목표입니다.”
김현우는 인터뷰 말미에 “어딜 가든 꾸준히 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동남아 무대를 경험하면서 느꼈다”고 말했다. 높은 레벨의 무대를 누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운동장에서 얼마나 ‘꾸준히’ 뛰느냐가 선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오마이뉴스 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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